‘정의로운 전환’, 우리는 얼마나 준비됐나?
‘정의로운 전환’, 우리는 얼마나 준비됐나?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1.03.11 09:28
  • 수정 2021.03.11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석탄발전 감축 위해 신발 끈 고쳐 맨 정부
에너지전환 과정에 ‘정의로운 전환’ 5대 요소 잊지 말아야

[리포트] 째깍째깍 빨라지는 에너지전환 시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판 뉴딜 중 그린뉴딜을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공언한 바 있다.

지난 연말 공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석탄발전 감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성윤모)와 환경부(장관 한정애)의 올해 계획에서도 에너지전환은 핵심 정책으로 분류된다. 에너지전환의 시계는 점차 빠르게 가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 대안적인 고용 및 재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사회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노동문제에 얼마만큼 준비하고 있을까?

보령화력 전경 ⓒ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 전경 ⓒ 한국중부발전㈜

전력수급기본계획 톺아보기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기사업법 제25조에 따라 수립하는데, 통상 2년마다 한 번씩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립·공개된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전력수급의 기본방향에 관한 사항 ▲전력수급의 장기전망에 관한 사항 ▲발전설비계획 및 주요 송전·변전설비계획에 관한 사항 ▲전력수요의 관리에 관한 사항 ▲직전 기본계획의 평가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돼야 한다. 2013년 전기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부합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지난해 12월 28일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가장 최근에 공개된 내용이다. 산자부는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발전부문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는 이유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방향을 석탄발전의 과감한 감축으로 잡았다.

구체적으로 가동 후 30년이 지난 석탄발전기는 모두 폐지하고 이를 LNG발전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인 1억 9,300만 톤 달성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자부는 2020년 35.8GW 규모의 석탄발전량을 2034년 29GW까지 19%가량 줄이겠다고 밝혔다.

2022년까지는 노후 석탄발전기 6기가 폐지될 예정이다. 전력량으로는 총 2.6GW로 원자력발전기 2기가 생산하는 발전량을 조금 넘는다. 이미 한국중부발전의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는 지난 연말 폐지됐다. 2023년부터 폐지되는 석탄발전기는 LNG로 연료를 전환한다. LNG로 연료를 전환하는 발전규모는 12.7GW다. 통상 3KW 가정용 발전기 기준, 1GW의 전력을 33만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기에 400만 가구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 LNG발전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석탄발전량이 줄어드는 대신 신재생에너지발전량은 2020년 20.1GW에서 2034년 77.8GW까지 387% 늘어난다. 이중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은 각각 45.6GW와 24.9GW로 둘을 합하면 2034년 신재생에너지발전량 전체의 91% 수준에 달한다. 지난달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 신안군의 해상풍력단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했다. 해상풍력단지에서는 2030년까지 완공될 예정으로, 8.2GW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2034년 예상 풍력발전량의 33%를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하는 셈이다.

줄줄이 폐지되는 석탄발전,
석탄이 밥줄인 사람들

현재 우리나라의 석탄발전은 대부분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5개 발전사(한국동서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에서 담당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ALIO)에 따르면, 5개 발전사의 2020년 정규직은 1만 3,471명이다. 비정규직과 파견·용역직, 자회사, 사내하도급 등 소속 외 인원까지 합하면 1만 9,000여 명에 달한다.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2019년을 기준으로 집계한 인원은 2만 3,000여 명이다.

2만여 명 안팎의 사람들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야기한 석탄발전 폐지에 따라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연말,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와 함께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가 폐지돼 여기에서 일하던 330여 명의 고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충청남도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된 다음날,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 조기폐쇄에 따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양승조 충청남도지사는 2022년까지 폐쇄 설비 운영과 인력 재편, 도내 타 발전소 이동 등을 통해 전원 고용 유지 및 타 지역 전출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9일, 양승조 충청남도지사가 보령화력 1·2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 충청남도
지난해 12월 29일, 양승조 충청남도지사가 보령화력 1·2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 충청남도

그러나 이태성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는 “전원 고용 유지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석탄발전에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진 노동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성 간사는 “경상정비나 연료·환경·운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 폐지 후 인근에 건립 중인 신서천화력으로 갈 수도 있고, 하다못해 민간발전소로 이동할 수 있다”며 “그렇지만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태성 간사는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의 폐지로 100여 명의 청소 및 경비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았다. 정규직 역시 석탄발전 폐지에 따라 정원을 반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참여와혁신>이 지난해 5월, 5개 발전사노조와 함께한 좌담회에서 김성관 한국동서발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여수에 있는 호남화력이 폐지될 예정으로 150명 정도 되는 인원을 반납해야 한다”며 “정원 반납 이후 새로운 발전소 가동까지의 공백에 대한 고민이 크다”는 우려를 전했다. 신동주 한국중부발전노동조합 위원장 역시 “중심 사업소인 보령화력 1호기, 2호기, 5호기, 6호기 정지를 앞두고 있는데, 보령화력의 4개 발전소 정지에 따른 인원 감축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2020년 기후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공정한 전환’을 위한 한국적 맥락 탐색 : 석탄발전 부문을 중심으로》에서도 발전사 정규직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발전사노조 관계자는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의 정원이 142명인데, 정원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며 “정원을 반납하면 인건비에 대한 예산을 기획재정부로부터 승인받지 못하고 142명만큼 줄어든 인건비를 다 같이 나눠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석탄이 밥줄인 사람들은 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석탄발전 폐지로 노동자가 도시를 떠나면, 지역경제 역시 휘청거린다. 2017년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가동 중단과 2018년 2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철수로 2만여 개의 일자리를 잃고, 6,500여 명의 인구감소를 경험한 전북 군산시의 사례는 타산지석이다. 2018년 4월, 정부는 군산시를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했고 지난해 3월에는 이를 2년 연장했다.

당장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가 폐지된 충남 보령시의 인구감소에 따른 지역경제 침체 우려에 양승조 도지사는 “발전소 폐지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비용과 피해가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 전가되면 안 된다”며 보령화력 1호기와 2호기 조기폐쇄에 따른 종합대책에 지역산업 체질 전환을 위한 신규 사업 유치 및 특별지역 지정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해 발표했다.

에너지전환은 숙명, ‘정의로운 전환’은 필수

‘정의로운 전환’은 미국의 노동 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처음 제기한 개념이다. 환경정책으로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가 산업 전환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산업 전환 결과가 노동자와 사회에 바람직하고 이익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1998년 캐나다의 환경 노동 운동가 브라이언 콜러는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며 5대 요소를 강조했다. ▲공정성 ▲재고용(대체고용) ▲보상 ▲지속가능성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은 산업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고용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고용이 산업 전환 이후에도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계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지난해 11월에 전력산업정책연대가, 12월에는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에너지전환과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각각 열었다. 이태성 간사는 “에너지전환은 세계적인 추세이자 정부의 정책으로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송민 한국남부발전노동조합 위원장 역시 “에너지전환이 시대적 대세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는 에너지전환 사회보장법 제정을 통한 고용보장 대책마련, 전환노동자 교육훈련, 지역경제 침체 재생방안 등을 강구할 방침이다. 송민 남부발전노조 위원장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발전사의 한전 수직재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익성을 이유로 언제든지 사업을 종료할 수 있는 민간부문과는 달리 공공부문이 주도해 에너지전환을 만들어낼 때,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지역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발전사들을 한전으로 재통합해 발전과 송·배전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환경부 업무보고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은 한정애 환경부 장관에게 “환경부의 주요 업무 추진계획 중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관련해서 노사가 참여하는 논의기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한정애 장관은 “탄소중립위원회에 8개 분과를 만들 예정으로 그 중 하나가 바로 정의로운 전환 분과”라며 “노동자, 중소기업 등 대상이 되는 업종의 당사자 의견이 정책 추진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문성현)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 기후변화와 노동연구회가 제안된 상황이지만, 아직 정식 출범 논의는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산자부 역시 최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환경부는 올해 6월까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도출한다. 환경부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도출한 이후 각 정부부처는 탄소중립에 따른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달 22일 국무조정실은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령을 입법예고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산업,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탄소 중립을 추진하고 저탄소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지역이 없도록 공정한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된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는 18개 정부부처 장관 중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15개 정부부처 장관과 방송통신위원장, 금융위원장, 국무조정실장이 참여하며 그 밖에 대통령이 위촉하는 관련 경험과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참여할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에너지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12월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주최한 탈석탄 정책에 따른 고용정책과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토론회에서 편도인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총괄과장은 “‘정의로운 전환’은 산업 전환 과정과 산업 전환 결과가 모두 공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고용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에 산업 정책의 관점에서만 산업 전환을 바라보던 것에서 이제는 고용의 관점에서 점검하고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편도인 과장의 말처럼, 에너지전환 과정을 노동의 관점에서 산업 전환 과정에 직면한 노동자에게 고용 전환의 기회와 이를 위한 프로그램 제공이 전제될 때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 우리사회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