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숨진 택배기사··· 로젠택배, “7월 이후 정부 새 방침 철저히 따를 것”
또 숨진 택배기사··· 로젠택배, “7월 이후 정부 새 방침 철저히 따를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3.16 21:43
  • 수정 2021.03.17 0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일, 일하다 쓰러진 로젠택배 기사 이틀 만에 뇌출혈로 숨져
대책위, ‘장시간노동+과도한 배송구역’으로 인한 과로사 추정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6일 오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일하다 숨진 택배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묵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 13일 토요일 오전, 로젠택배 경북 김천대리점에서 일해온 택배노동자 김 모(51)씨의 차가 멈췄다. 터미널에서 약100m 떨어진 장소였다. 오후 4시 배송을 마친 동료가 집하를 위해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 고객과 잠깐 통화 중일 거라 예상했던 김씨의 차가 그대로였다. 차 안을 들여다보니 김씨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의 3분의 2가 피로 차 수술이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다. 의식불명 상태로 숨을 유지하던 김씨는 15일 밤 숨졌다. 

16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박석운·강규혁·김태완 공동대표, 이하 대책위)는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쓰러졌다”며 “로젠택배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회적 합의 이행에 즉각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젠택배 측은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합의문의 주요사항들에 대해 타사와 상이한 로젠 사업구조의 특성을 고려해 합의문 취지에 맞춰 충실히 노력하고 있다”며 “산재의 경우 올해 7월 이후 정부의 새로운 방침을 철저히 따르고 지켜 이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오는 7월은 질병·육아휴직 등 불가피할 때만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허용하고, 이전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한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시기다. 택배노동자의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조항이 포함된 생활물류법이 시행되는 때이기도 하다. 

장시간노동+과도한 배송구역
택배노동자 사망 원인으로 지적

대책위는 김씨의 죽음을 장시간노동과 과도한 배송구역에 따른 과로사로 보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씨는 주6일 하루 평균 10시간 일했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약 6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노동을 이어온 셈이다. 반면 로젠택배 측은 “고인은 일 배송물량이 최근 3개월 평균 35개로, 주중에는 저녁 6시 정도, 토요일은 오후 1시~2시 이전에 퇴근하셨다”며 “배송물량 및 배송시간을 고려하였을 때 과로의 확률은 희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배송면적은 경북 김천시 대덕면과 지례면을 합한 152㎢로 서울 면적의 4분의1 정도였다. 배송구역이 넓으니 하루 평균 배송물량은 30~40개였다. 민간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약 310개의 물량을 소화한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측에선 오지배송 지원비 70만 원을 따로 지급했으나 김씨의 손에 떨어지는 한 달 순수입은 200만 원이 채 안 됐다.

진경호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수없이 많은 택배기사들의 경험을 들어왔지만 고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업환경에 노출된 상황이었다”고 비판했다. 

정부 전부조사 하겠다던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 ‘결함’
고용노동부 “전수조사 못 됐다고 봐야”

대책위는 김씨가 지난해 7월 작성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도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점장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사실상 강요했을 뿐 아니라 신청자의 자필로 작성해야 하는 ‘본인 신청 확인란’이 공란으로 제출됐기에 고인의 신청서는 “명백히 무효”라는 것이다.

로젠택배는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제출은 해당 지점장의 강요가 없었고 고인이 직접 서명 후 제출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지난해 7월 제출된 일해온 로젠택배 기사 김 모씨의 산제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자필로 작성해야 하는 본인 신청 확인란이 비어있다.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또한 대책위는 “지난해 10월 사망한 택배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가 대필됐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뒤 대통령 지시로 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했다”며 “그럼에도 결함이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노동부의 전수조사가 형식에 그쳤거나 허위보고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측은 현실적으로 전수조사를 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당시 전수조사가 못 됐다고 봐야 한다”며 “지난해 11월 1차적으론 근로복지공단 지사와 노동부 관할 지방관서가 대리점을 방문하며 대면조사를 실시했지만, 조사시간 등의 한계로 지난해 12월 2차 조사는 모바일로 대신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에 대해선 “관련 내용은 추가로 확인할 예정”이라며 “본인이 직접 제출한 것이든 아니든 문제가 확인되면 법규에 따라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로젠택배, 사회적 합의 이행에 동참해야” 

대책위는 특히 “이번 사건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며 과로사 문제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로젠택배의 무관심·무대책이 부른 참사”라며 “(로젠택배는) 즉시 사회적 합의 이행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대책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로젠택배는 상하차 작업 비용뿐 아니라 터미널 지대료와 주차비까지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있다.

김인봉 택배노조 사무처장은 “노조의 문제제기로 이번 달부터 상하차비를 폐지한다는 본사의 입장이 나왔지만 동서부천지점 같은 경우는 지금도 월 17만 원씩 걷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젠택배 측은 “회사는 이유 여하와 내용 여부를 불문하고 함께 일했던 분에 대해 심히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으며 다시 한 번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며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게끔 관계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