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은 쌈짓돈이 아니다
성과급은 쌈짓돈이 아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4.03 00:05
  • 수정 2021.04.05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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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마음대로’ 주던 성과급에 노동자들 의문제기
​​​​​​​성과급 논란, ‘돈’보다는 ‘투명성’에 방점

[리포트] 격려용 성과급은 이제 그만! 성과급은 노동의 대가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전 계열사 인센트브 추가지급'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게시했다. ⓒ 참여와혁신DB

성과급 논란이 올해 초 국내 주요 대기업을 휩쓸었다. SK하이닉스 입사 4년차 노동자가 성과급 지급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사장을 포함한 사내 전 구성원에게 공개적으로 띄웠다. 이 사건은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화제가 됐다.

성과급 논란은 이내 SK하이닉스를 넘어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넥슨, 넷마블 등 주요 게임업계와 SKT, 카카오 등 IT업계에서는 연봉을 인상하거나 우리사주 등 각종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대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임금이 짜기로 유명했던 LG전자도 올해 3월 2일 임단협에서 기본급 9% 인상이라는 전례 없는 수치에 합의했다. 성과급 논란이 임금 인상으로 귀결한 것이다.

여론에서는 이번 성과급 논란 아래 MZ 세대로 불리는 ‘요즘 애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희박하고 자기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성과급’보다는 ‘불투명 경영’에 있다. 이제 성과급은 초과이윤이 났다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노동의 대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성과급 지급 기준도 당연히 투명한 게 맞다. 회사가 시혜적으로 주는 쌈짓돈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이다.

‘깜깜이’ 성과급에 분통

SK하이닉스는 2021년 1월 28일 2020년 분 성과급(초과이익분배금, Profit Sharing, PS)을 기본급의 400%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연봉 대비 20% 수준이다. 이 같은 결정에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동종업계인 삼성전자의 성과급 수준(연봉의 50%)에 비해 떨어진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표했다. ‘삼성전자로 이직할 것’이라는 분노 섞인 말도 공공연히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2019년 분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경영실적 하락이 이유였다. 대신 기본급의 400%에 해당하는 미래성장 특별기여금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2019년 대비 무려 84%나 증가했다. 성과급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성과급이 작년의 특별기여금과 똑같은 선에 그치면서 SK하이닉스 노동자의 실망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이 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2월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M16 공장 기공식에서 본인의 연봉을 반납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돈보다는 성과급 지급 기준을 투명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SK하이닉스 노사는 2월 10일 성과급 지급 기준을 기존 EVA(경제적 부가가치·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것)에서 ‘영업이익’으로 변경했다. 더불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관련 업계 노동조합은 SK하이닉스에서 벌어진 성과급 논란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지회장 오세윤)는 2월 6일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메일을 발송했다. 네이버의 2020년 실적이 큰 폭으로 성장(전년 대비 매출 +21.8%, 영업이익 +5.2%)한 데 반해 성과급은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과급 지급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표했다.

이수운 네이버지회 홍보국장은 “성과분배에 대한 정보가 없다. 관련 기준 공개가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라면서, “연봉 대비 몇 퍼센트나 인센티브로 지급했는지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그조차 네이버에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이수운 홍보국장은 연봉인상률조차 명확하지 않은 네이버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나마 노조 설립 이후에 연봉인상률은 정해졌어요. 다만 그것도 트릭이 많은 게 평균 연봉인상률이에요. 예를 들어 연봉인상률이 7%라고 할 때, 지난해 100억 원의 인건비가 나갔으면 내년에는 107억 원인 식이에요. 그런데 네이버는 조직별로 재원이 다르고 또 개인별 평가에 따라서 차등을 두는 경우가 있어서 정말 깜깜이식이에요.”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위원장 유준환)은 LG전자의 성과급 제도도 마찬가지로 깜깜이라고 지적했다. 유준환 위원장은 “올해 LG전자 HE사업부는 영업이익은 높은데 매출액이 적다는 이유로 경영성적이 C등급이 나왔다”면서 “기준은 미리 제시돼야 하지만 성과급 기준과 성과급 액수를 동시에 발표한다”고 토로했다.

인사고과도 깜깜이

성과급 산정 기준뿐만 아니라 인사고과도 전반적으로 깜깜이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해성 LG전자사무직노조 부위원장은 암암리로 운영되는 수시 인센티브 제도를 지적했다.

“(LG전자에는) 연말에 개인고과별로 받는 개인 인센티브와 연초에 조직별로 받는 경영 성과급, 그리고 수시로 받는 수시 인센티브가 있어요. 수시 인센티브는 그야말로 ‘팀장님 재량’에 따라 주는 인센티브예요. 재원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존재조차 모르는 직원이 대부분이에요. 내부적으로 금액 등급이나 기준이 있겠지만, 인센티브를 주면서 ‘누구는 못 받아서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 말하지 마’라고 전하는 게 투명하지 않다고 느껴져요.”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성과급 논란에 적극 공감하면서 성과급 차등 지급의 기준이 되는 인사고과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삼성전자에서는 5개 등급(가~마)으로 인사고과가 매겨지는데 각 등급은 할당제로 운영된다. 하위 고과자가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 노동자의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50%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여기서 인사고과평가에 따라 성과급 수준이 결정되는데, 그 기준이 부서장 개인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비판이다.

“삼성은 연봉제 노동자에게는 1년에 한 번, 월급제 노동자에게는 1년에 2번 부서장이 인사고과평가를 진행해요. 이 고과는 진급과 연봉에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요. 연봉 상승이나 승진 여부를 오로지 부서장의 고과 하나로만 판단해요. 그런데 문제는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있는 비중이 지극히 낮다는 거예요. 소수 몇 명의 부서원만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삼성전자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서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게 진윤석 위원장의 설명이다. 현재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관련 연구기관과 함께 동일 업종의 기업별·국가별 인사고과제도에 대해 연구 분석을 진행 중이다. 추후 회사에 대안적 인사고과제도를 제시할 예정이다.

2021년 2월 8일 서울시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그룹노조연대 2021 임단투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2021년 2월 8일 서울시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그룹노조연대 2021 임단투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격려금’식 성과급 비중 줄여야

다른 한편으로 전체 임금에서 성과급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6년 500대 기업(170개 기업 응답)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총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미만(43.9%) ▲10~20%미만(30.3%) ▲20~30%미만(14.3%) ▲30~40%미만(10.3%) ▲40%이상(1.2%) 순으로 나타났다.

진윤석 위원장은 “성과급은 비정기적인 급여다. 성과급으로는 계획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면서, “기업이 정기적으로 급여를 줌으로써 노동자가 삶을 영위해나가게 해준다면, 예측가능하게 급여를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태용 네이버지회 수석부지회장도 “격려금 형식의 인센티브는 연봉에 산입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사용자의 시혜적인 일시금은 장기적으로 노동자 개인에게 인생계획을 세울 수 없도록 한다. 애초에 연봉에 일정정도 성과급이 산입됐다면 문제없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노동조합들은 성과급 및 인사고과제도에 대한 문제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교섭석상이나 여러 채널을 통해 이전부터 수차례 회사에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논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지회는 2018년 출범 당시부터 성과급의 객관적인 지표와 지급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윤석 위원장은 회사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성과급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그동안 노동조합이 이 문제에 대해 떠들지 않은 게 아니에요. 회사가 노동조합과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좋은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데 꼭 문제가 터지고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진 뒤에야 개선하는 것이 안타깝죠.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노동조합은 단 한 곳도 없어요. 우리도 삼성전자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어요. 그런데 회사가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여론에 좌지우지된다면 노동조합도 여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성과급은 노동의 대가”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성과급은 기업의 지불 여력과 퍼포먼스와 관련된 문제이자 노동자의 성과를 돋우기 위해 취하는 전략이다. 정답은 없다”면서도 “노동자가 공정성을 바라보는 잣대와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본다. 노동자의 변화에 기업은 적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여태까지 노동자들은 성과급을 ‘회사에서 덤으로 주는 돈’으로 생각하고, 다른 기업에서 받는 성과급 액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블라인드의 등장으로 기업 간 비교가 활발해지고, 공정성 이슈가 대두된 만큼 성과급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수운 홍보국장은 “회사의 성장을 소수의 경영자의 성과로 인식하지 않는다. 회사의 성장에서 내 노동의 가치를 동등하게 분배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서, “예전에는 성과급이 회사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계택 소장은 “앞으로 성과급 결정에 있어서 공정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사관리, 임금관리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무엇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