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초등돌봄 주체 둘러싼 ‘평행선’ 갈등
① 초등돌봄 주체 둘러싼 ‘평행선’ 갈등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4.03 00:00
  • 수정 2021.04.06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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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자 간 이견으로 갈등 깊은데···
정부는 양적확대 목표 달성 급급

초등돌봄정책 짚어보기① 평행선 달리는 갈등

정부의 방과후학교 정책에 포함돼 운영을 시작한 초등돌봄교실은 올해로 시행 18년차를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의 나이에 가까운 초등돌봄정책이지만, 아직도 이를 둘러싼 많은 논란은 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온종일 돌봄체계’를 마련해 방과후돌봄의 양적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그 첫 시작인 학교돌봄터 사업도 이해당사자 간 갈등으로 삐걱댔다. 초등돌봄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풀지 않는 이상 정부의 돌봄 정책 추진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난해 11월 6일, 교육공무직본부가 초등돌봄전담사 파업을 선언하고 전국 각 거점에서 파업대회를 개최했다. 파업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상시전일제 쟁취를 요구하는 스티커를 교육부 담장에 붙였다. ⓒ 교육공무직본부
지난해 11월 6일, 교육공무직본부가 초등돌봄전담사 파업을 선언하고 전국 각 거점에서 파업대회를 개최했다. 파업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상시전일제 쟁취를 요구하는 스티커를 교육부 담장에 붙였다. ⓒ 교육공무직본부

‘초등돌봄 절벽’
여성 경력단절의 원인

돌봄은 한국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 겪는 불평등 문제의 총체다. ‘M’자형 곡선을 그리는 한국여성의 연령대별 고용률 그래프가 대표적 예다. 그래프를 보면 한국여성의 고용률은 20대까진 증가하다가 30대 초반에 1차로 꺾인다. 30대 후반에 2차로 한 번 더 꺾인다. 40대 후반엔 회복했다가 정년에 가까워지면서 고용률이 줄어든다.

일하던 30대 여성들은 주로 돌봄 때문에 가정을 택한다. 통계청의 지난해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의 65.0%는 “육아와 가사가 부담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일하던 30대 초반에 결혼과 출산으로 퇴직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30대 후반 여성들도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일터를 떠난다. 여성들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가정 내 성 역할의 압박을 받고, 노동시장에서 보통 더 안정적인 남편 대신 돌봄을 맡게 되는 것이다.

자녀의 영유아기를 넘긴 여성이 다시 경력단절을 감수하게 되는 배경엔 ‘초등돌봄 절벽’이 있다. 자녀가 영유아기 땐 오전 9시부터 퇴근 시간까지 그나마 어린이집·유치원 등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초등학생이 된 순간부터 돌봄장소가 부족해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를 둔 직장여성은 2017년 2~3월 신학기 전후에만 1만 5,841명이 퇴사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초등돌봄교실이 보통 오후 5시까지다. 그때까지 남아있는 아이들도 별로 없지만, 일하는 엄마가 오후 6시에 정시 퇴근해도 돌봄공백이 생긴다”며 “그 빈 시간을 어떻게든 메우려 일·가정을 힘겹게 병행하던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결국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이야기했다.

정부는 초등돌봄 공백 문제를 풀기 위해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초등돌봄교실 정책 대상과 돌봄교실 수를 확대해왔다. 현재 정부의 방과후돌봄 체계는 학교돌봄과 마을돌봄 두 축으로 교육부(초등돌봄교실), 보건복지부(다함께돌봄센터·지역아동센터), 여성가족부(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 돌봄의 질, 분절돼 운영되는 부처별 연계성 부족 등으로 방과후돌봄 욕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 돌봄 인프라 확충 약속

문재인 정부도 여성의 경력단절과 저출생의 주요 원인인 초등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온종일 돌봄’ 정책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2018년 4월 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양적 확대 측면에서 학교와 마을에서 제공되는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약 33만 명(‘17)의 아이들을 2022년까지 각각 10만 명씩 늘려 총 53만 명으로 확대하겠단 목표를 잡았다. 이를 위해 학교돌봄은 초등돌봄교실 이용인원을 7만 명 더 늘리기로 했다. 여기에 학교 내 활용가능교실을 지자체가 초등돌봄교실로 운영하는 형태로 3만 명을 더 채워 총 10만 명을 학교에서 수용하겠단 계획이다. 마을돌봄은 지역아동센터·다함께돌봄 등을 통해 이용인원을 10만 명 더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정부는 학교돌봄과 마을돌봄 두 축 간 연계·협력체계에서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하겠단 구상을 세웠다. 등교 전, 저녁, 방학 때 발생하는 돌봄공백을 지역아동센터와 도서관 같은 지역공공시설을 돌봄 자원으로 활용해 채우자는 것이다. 지자체가 중심이 돼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돌봄자원 간 연계와 조정을 맡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 집중돼 있던 초등돌봄의 무게중심은 지자체로 옮겨가게 된다. 2019년 기준 초등돌봄 수용인원 42만 명 중 초등돌봄교실이 약 29만 명(68%), 마을돌봄은 약 13만 명(32%)을 담당하고 있다.

학비노조는 8일 오전 '시간제 폐지!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중단!초등돌봄교실 돌봄전담사 농성돌입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지난해 9월 8일, 학비노조가 국회 앞에서 ‘시간제 폐지!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중단! 초등돌봄교실 돌봄전담사 농성돌입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돌봄교실 운영주체 둘러싼 갈등 심화

이 가운데 초등돌봄교실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터졌다. 지난해 5월 19일 교육부가 초등돌봄의 약 70%를 담당하는 초등돌봄교실 등 방과후학교 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부터다. 그간 방과후학교 운영은 초·중등교육법이나 시행령에 명시되지 않은 채 교육부 고시로 운영되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이 “돌봄은 학교가 아닌 지자체 몫”이라며 교육부에 법안 철회를 요구하자, 교육부는 이틀 만에 입법을 보류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돌봄전담사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교원단체들의 ‘교육=학교, 보육=지자체’ 주장과 교육부의 졸속 추진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발의됐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등돌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학교 내 초등돌봄에 집중돼있는 돌봄교실 주체를 지자체나 범정부 차원의 통합 체계로 구축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온종일 특별법)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공공 돌봄의 시행 계획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온종일 특별법이 발의되자 교사들과 초등돌봄전담사 간 갈등이 심화됐다. 학부모단체도 목소리를 냈다. 갈등의 핵심은 돌봄교실의 운영 주체를 현행 교육당국 중심에서 지자체로 넘길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돌봄전담사 “책임 지자체에 쏠리면 안 돼”

초등돌봄전담사들은 공적돌봄의 책임이 지자체로 쏠리는 법안의 방향을 반대했다. 학교돌봄과 마을돌봄 두 축 모두 자기 역할을 강화하는 가운데, 두 축 간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성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현재 초등돌봄의 70%는 학교돌봄이 책임지고 있어서 교육당국이 책임을 유지하고 강화해나가야 한다”며 “또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마을돌봄의 양태를 보면 대부분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가 학교돌봄까지 가져가면 민간위탁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공적돌봄의 위상은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미라 전주서일초등학교 돌봄전담사도 지난해 9월 초등돌봄전담사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전북 돌봄 선생님들은 사장이 4번째 바뀔 위기에 처해있다”며 “학교장에서 사회적기업 대표로, 6개월 이상의 힘든 투쟁 끝에 마지막으로 교육감을 사장으로 안정을 되찾은 줄 알았지만 또다시 사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불안을 토로한 바 있다.

최은희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국장은 “돌봄교실은 대표적인 공적돌봄으로, 각 교육청이 주관해 운영하고 있어 질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지자체로 이관되면 재정자립도에 따라 돌봄의 질은 천차만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돌봄전담사의 84% 정도가 시간제로 채용돼 보육업무 외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보니 교사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돌봄전담사들은 초등돌봄교실의 민간위탁 우려를 해소하면서 교사들의 돌봄 업무부담도 줄이려면, 지자체 이관이 아니라 상시 8시간 전일제 돌봄전담사 중심으로 돌봄교실을 학교 내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원단체 “지자체로 이관해야”

반면 교원단체들은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보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노시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교사들은 학교를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전문가인 교사를 임용했다. 돌봄이 교육이라면 돌봄교실에 교사들을 추가로 임용해 학교장 책임하에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에게 책임을 맡겨야 할 것”이라며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길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회적으로 보육을 교육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교사들은 학교가 교육과정에 충실하기 위한 구조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교사들이 돌봄강사채용 등 인사업무, 돌봄교실 운영 총괄 등 돌봄업무에 치여 수업준비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노시구 전교조 정책실장은 “온세상 일을 학교에 맡겨온 게 지금까지의 문화였다”며 “돌봄이면 돌봄, 세월호사고 이후엔 수영교육, 학교폭력 문제가 커지자 재판을 하라는 등 학교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해당 나이대에 일어나는 일이라며 학교에 그냥 맡겨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사들은 행정실 사례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행정실은 교사가 가르치는 일을 잘하도록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곳인데, 학교문화는 교사가 행정실을 지원한다”며 “이런 경험이 50~60년 동안 교사에게 축적됐기에 돌봄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거라고 인식하는 거다. 교사들의 요구가 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역사가 있는 요구인 셈”이라고 이야기했다.

학부모단체 “학교가 가장 안전한데… ”

학부모들은 대체로 지자체 이관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영미 서울혁신교육지구학부모네트워크 대표는 “마을돌봄도 중요하다지만 요즘 안 좋은 사건도 계속 일어나고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학교 안에서 돌봄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서울혁신교육지구학부모네트워크가 전국 학부모 1,005명을 대상으로 초등돌봄서비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와 지자체 간 책임 소재, 아이들 안전 문제, 학교와 연계성 등의 우려로 반대한다’는 응답이 39.9%로 가장 많았다. 돌봄전담사들의 주장처럼 ‘지자체가 민간에 위탁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돌봄 민영화가 우려돼 반대한다’는 응답도 25.9%로 뒤를 이었다.

사립유치원 비리로 유치원3법 투쟁을 해온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활동가는 “공적돌봄이 민간에 맡겨져 공공성을 제대로 확보한 경우가 없다는 것을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며 “국가가 책임지고 가장 공적인 영역에 있어야 할 아이돌봄이 민간위탁에 떠넘겨져 온갖 사고와 비리의 온상이 되는 사립유치원, 공립어린이집의 사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교의 주인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라며 “교원단체들이 그간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조직력으로 공적돌봄을 함께 분담하지 않으려 한다면 교육자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갈등이 커지자 온종일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돌봄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도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와 교육청, 교원단체와 돌봄전담사단체, 학부모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였지만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코로나19로 돌봄공백을 메워오며 버텨온 돌봄전담사들은 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초등돌봄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풀지 않는 이상 정부의 돌봄교실 양적 확대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눈에 보는 초등돌봄정책 변화>

1995년
- 교육부, 교육개혁방안 발표에 따라 방과후 아동지도를 위한 방과후교실 도입

1996년
- 보건복지부, 상암초등학교와 안산초등학교에 돌봄교실을 설치

1997년
- 교육부, IMF 이후 특기적성교육이라는 명칭으로 방과후교실 운영

2003년
- 복지부 지역아동센터, 지역사회 내 빈곤가정 아동 대상으로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하던 공부방을 아동복지시설로 법제화

2004년
- 교육부, 방과후교실 28개교 시범 도입

2005년
- 여성가족부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방과후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한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도입

2006년
- 방과후돌봄교실, 방과후학교로 명칭 변경

2010년
- 학교돌봄, 맞벌이 부부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양적 팽창 시작
- 초등보육교실을 초등돌봄교실로 명칭 변경

2011년
- 교육부, 방과후에만 운영되던 돌봄교실을 아침, 오후, 저녁 시간대에도 운영하는 ‘엄마품 온종일 돌봄교실’ 확대해 시범 운영

2012년
- 부처별 분산추진에 따른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돌봄서비스 관계부처 간 업무 협약 체결
- 초등돌봄, 방과후교실, 에듀케어교실, 보육프로그램, 보육교실 등으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다가 초등돌봄교실로 명칭 통일

2013년
- ‘방과후 돌봄서비스 연계체계 구축·운영 매뉴얼’ 제작

2014년
- 초등돌봄교실, 초등학교 1~2학년 희망학생으로 운영대상 조정

2015년
- 학교돌봄 대상 초학교 3~4학년까지 확대해 ‘방과후 연계형 돌봄교실’ 신설
- 초등돌봄전담사들 투쟁 끝에 학교장 고용에서 교육감 직고용으로 전환

2016년
- 전학년 돌봄 교실 확대

2017년
-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온종일돌봄 체계 구축 확정

2018년
- 문재인 정부, 온종일돌봄 구축 계획 발표

2020년
-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온종일특별법) 각각 발의

2021년
- 정부, ‘지자체-학교 협력 돌봄 기본계획-학교돌봄터사업’ 발표
 

(자료 : 교육공무직본부 보도자료, 정부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