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노조 :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노동조합
[언박싱] 이 주의 노조 :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노동조합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4.30 16:33
  • 수정 2021.05.03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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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연구직노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조대호 현대차그룹 인재중심 사무연구직노동조합 부위원장(왼쪽)과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중심 사무연구직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번 주 월요일(26일)에는 노동계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현대차그룹의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것입니다. 정식명칭은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노동조합’입니다. 29일 서울고용노동청으로부터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으면서 이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기업별노조가 아닌 그룹사노동조합을 지향하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들은 “항상 회사는 어렵다는데 임원연봉은 꾸준히 상승하고, 노동자들의 연봉은 매년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며 “사전계획과 구체적 달성 방법에 대한 제시 없이 ‘무조건 부딪혀서 해보라’는 기업문화”가 노동조합 설립의 주요 동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기존 노동조합이 생산직·기능직 노동자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사무연구직 노동자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한 점도 설립의 주요 배경이 됐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지난 3월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처음 노조설립 논의가 진행된 이후 두 달여 만에 설립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설립신고를 한 26일, 이건우 위원장(현대케피코 소속)과 조대호 부위원장(기아 소속)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에 도움을 준 김경락 대상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 최근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설립이 줄을 잇고 있어요. 25일 창립총회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위원장님과 부위원장님은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가요?

이건우 : 그렇죠. 하하. 통화는 여러 번 했어요. 카톡도 계속하고요.

조대호 : 3월쯤 블라인드에 내용이 올라왔었어요. 그때 좋게 보고 ‘잘하겠구나’ 생각해서 먼저 요청을 드렸죠.

- 노조 설립 계기가 궁금해요.

이건우 : 사무연구직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창구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게 저 혼자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다른 분도 그렇게 말씀해주셨고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 모두가 공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 노동조합 이름에 ‘인재존중’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요. 그렇게 지은 이유가 뭔가요?

이건우 : 현대차그룹 핵심 5대 가치가 있어요. ‘고도소인글’이라고 많이 외웠거든요. 고객 최우선, 도전적 실행, 소통과 협력, 인재존중, 글로벌 지향이에요. 인재존중이 그룹사의 5대 가치 중 하나인데, 뭔가 조직에서 소통이 되지 않고 사무연구직의 지식노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 것들로 인재를 존중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죠. 그룹사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이 저희의 목표와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 위원장님은 현대케피코에 다니고 있다고 들었어요. 혹시 입사 몇 년차이신가요?

이건우 : 1년차입니다.

- 헉. 1년차요? 직장생활 하면서 불합리하다고 느끼신 때가 있나요?

이건우 : 제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이미 먼저 들어와 계신 분들이 많이 느끼죠. 먼저 입사하셔서 오랫동안 열심히 한 분들이 대우를 못 받는 게 아쉽습니다. 부위원장님은 어떠세요?

조대호 : 이게 괴리가 있어요. 특히 우리 MZ세대들이 들어올 때는 대기업이라서 들어왔는데, 실제로 연말에 성과급을 보면 다른 회사랑 많이 차이가 나니까요. 더욱이 작년에 임금동결이 되면서 연 평균 직원 급여가 9,600만 원에서 8,800만 원으로 떨어졌어요. 회사가 어려우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품질비용 들어가 버리고 직원한테는 돌아오는 게 적어지고요. 또 기아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기존 대리급이랑 과장급 간의 임금역전이 발생하는 해가 될 것 같아요.

이건우 : 2016년 기점으로 매년 성과급이 줄어들고 있어요. 현장에서는 올해는 작년보다 줄고 내년은 올해보다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고요. 물가 상승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 부위원장님은 기아에서 근무하고 있으시죠? 기아에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가 조직돼 있는데, 혹시 조합에 가입한 적이 있나요?

조대호 : 기아 같은 경우에는 대리까지는 유니온숍제도로 운영되고 있어요. 과장이나 책임을 달면 자동으로 탈퇴가 돼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리 이후에도 개별적으로 금속노조에 직가입 했어요.

- 기존 노동조합에서 사무연구직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조대호 : 대의원대회 해봤자 1년에 하루밖에 안 돼요. 정기대의원대회 하루인데 참석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워낙 큰 조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 그럼에도 직가입 형태로 노동조합에 참여하고 있었으니까 노조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셨군요?

조대호 : 절실히 느껴요. 사실 7년 전에 간부사원 130여 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30명이 채 안 돼요. 계속 가입해 있어도 혜택이 없으니까요. 보험식으로 가입했는데, 사실 저희도 적게 받는 게 아니니까. 하나둘 탈퇴하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사회적 분위기가 맞아 떨어졌어요. 일단 출발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7년 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못 했으니까요.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노동조합 형태를 그룹사노동조합으로 지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건우 : 처음에는 기업별로 규정도 상이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도 다르니까 그룹사로 합치는 게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기업별로 가입원서를 받았는데 가입인원이 많은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고, 또 적은 곳도 있어서 이러저러한 고민 끝에 그룹사의 형태로 가기로 했어요.

김경락 : 현대차그룹자체가 사용자단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집단교섭을 할 수가 있어요. 일단은 노동조합 가입원서가 어느 정도 들어오는지 파악해서 향후 대응할 예정이에요. 현재 500명이라고 하지만 LG전자사무직노조도 4,000명까지 금방 올라왔어요. 현대차그룹은 더 크기 때문에 얼마만큼 가입할지 모르겠어요.

추이를 확인하고 교섭형태를 집단교섭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각각의 계열사별로 교섭할지가 나올 것 같아요. 기존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고, 계열사별로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저희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거죠. 다만 현장에서 지부가 세워져야 하는데, 그 기간이 많이 남았어요. 진영을 정비하고 판단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 그렇다면 조합 가입대상의 범위가 어떻게 되나요?

이건우 : 정규직, 별정직, 계약직까지 다 포함해서 현대차그룹의 사무연구직에 해당하는 분을 다 망라하고 있어요.

- 가입 대상이 엄청 넓네요. 어림잠아 15만 명은 되겠어요. 마지막으로 교섭이 이뤄졌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이건우 :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체계요. 아직까지 평가기준이 투명하지 않다보니까 보상에 대한 공정성 측면에서 자꾸 문제 제기가 되고 있어요. 동일 산업 내에 다른 회사와 비교하는 대외적 공정성, 상대적 직무 가치에 따른 조직적 공정성, 그리고 같은 직무를 하고 있더라도 직급에 따른 개인적 공정성과 관련한 부분도 기준이 불명확해요. 보상적인 측면에서 기준을 투명하게 하고 싶어요.

또 생산직과 기능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소통창구가 있는데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은 없잖아요? 사무연구직의 지식노동도 회사의 성장·발전에 도움이 됐음에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요. 노동조합이 소통창구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