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직장 내 ‘꼰대 갑질’ 여전하다
“라떼는 말이야” 직장 내 ‘꼰대 갑질’ 여전하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5.03 17:54
  • 수정 2021.05.03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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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크게 대답하고 빨리 뛰어와”… 상명하복 군대 문화 여전
직장 내 괴롭힘 체감하는 20대와 50대 온도 차 극명해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직장 내에서 “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를 일삼는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가하는 ‘꼰대 갑질’이 여전하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2일 직장갑질119는 꼰대 갑질 사례를 공개했다.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꼰대 갑질’ 사례

사례 1. 상사는 상명하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회식 때마다 모두 술을 먹으라고 하고, 먹는지 안 먹는지 지켜본 뒤 잔에 술이 그대로 있으면 억지로 먹게 합니다. 업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이건 지시야”라며 토 달지 말라고 하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저녁 친구와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가 중요해? 친구가 중요해?”라며 소리쳤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젊은 직원들에게는 “개념 없는 90년대생”이라고 말합니다. “버릇이 없다” “부르면 크게 대답하고 빨리 뛰어와라” “상사가 들어오면 일하다가도 멈추고 일어나서 인사를 해라. 그게 예의다” “조직에서는 상명하복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런 말들을 합니다. 정말 힘듭니다.(2021년 3월)

사례 2. 상사가 윗사람 개념을 강조하고, 군대 같은 수직적 구조를 원합니다. 업무 통화 중에 처리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너는 윗사람도 없어? 윗사람한테 얘기도 안 하고 네 맘대로 결정해?”라며 윽박지릅니다. 어느 날 강압적인 태도로 잘못을 지적하기에 다음부터는 말씀드리겠다고 하니 “다음부터 그렇게 하면 다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상황에 대해 공유를 해달라고 말씀드리니 “니가 내 윗사람이야? 내가 왜 너한테 보고해? 니가 체크해서 해야지”라고 했습니다. 공유를 해주셔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뭐 이런 싸가지 없는 X이 다 있어 진짜”라며 욕을 했습니다. 불면증이 생기고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떨리고 불안한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2021년 4월)

사례 3. 공공기관에서 일합니다.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도 저에게만 시킵니다. 과다한 업무 강요로 밤 12시 퇴근한 적도 많습니다. 실장이 직원들과 점심에 소주 2~3병을 드시고 저녁에도 매일 술자리를 갖고 부하 직원들을 부릅니다. 밤이건 새벽이건 동틀 무렵이건 상관없이 전화를 합니다. 업무추진비나 회의비가 많은데 대부분 술값으로 씁니다. 무시하고 모욕주고 괴롭혀서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 뉴스만 보면 몸이 떨릴 지경입니다.(2021년 3월)

사례 4. 상사가 업무보고를 30분마다 하라고 합니다. 10분마다 해야 하는 걸 30분으로 줄여준 거라고. 업무보고 하느라 다른 일 하기가 어렵다고 했더니 “나는 옛날에 1분마다 업무보고서를 작성했어”라면서 ‘라떼는’을 시전하시네요. 정작 가르쳐줘야 할 내용은 하나도 안 가르쳐주면서 30분마다 업무보고를 하라고 억지 부리는 상사 때문에 일 처리가 너무 힘들어요. 상사는 저의 편식하는 것까지 간섭하고, 어릴 때부터 왼손잡이를 바꾸라고 해도 고집이 세서 끝까지 왼손을 사용해서 왼손잡이가 됐다며 면박을 줬습니다.(2021년 1월)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10개월이 됐지만, ‘꼰대 갑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대 51.8%가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한 반면, 50대 63.7%는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체감하는 온도 차가 극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20대 응답자의 51.8%와 30대 중 49.0%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40대(60.3%)와 50대(63.7%)는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오는 10월 14일부터 시행되지만, ‘꼰대 갑질’이 사라진 조직문화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 괴롭힘에 대한 제재 규정, 사용자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 등이 신설되고, 사용자 조치 의무가 강화됐다.

직장갑질119는 “‘까라면 깐다’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직장갑질은 변신을 거듭해가며 계속될 것”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고, 직장갑질 예방교육을 실시해 조직문화를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 김유경 노무사는 “실제로 다수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접하다 보면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가 조사 과정에서 ‘라떼는’을 앞세워 본인의 가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나아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맞대응하는 사례까지 적지 않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가장 큰 배경 중 하나가 이처럼 왜곡된 조직문화 및 상명하복식 위계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괴롭힘 사안 발생 시 조직 구성원 모두 과거의 악습과 단절하려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직장 상사 5계명’으로 △까라면 깠던 옛날 기억은 잊습니다 △아랫사람이 아닌 역할이 다른 동료입니다 △호칭, 말 한마디, SNS 한 줄에도 예의를 갖춥니다 △휴가나 퇴근에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괴롭힘당하는 직원이 있는지 세심히 살핍니다 등을 제시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지난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시민단체로, 140명의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노총 법률원(금속법률원, 공공법률원, 서비스연맹법률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희망법 등 많은 법률가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전문가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오픈카톡 상담, 이메일 답변, 밴드 노동상담, 제보자 직접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