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간호사의 날 “우리 얘기를 들어주세요”
국제 간호사의 날 “우리 얘기를 들어주세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5.12 08:32
  • 수정 2021.05.12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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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 맞은 간호사들
“환자에 책임 다하기 어려운 열악한 노동환경···
현장에 남을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세요”
5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적어 인증샷을 찍었다. ⓒ 의료연대본부

‘오늘은 우리 밥 먹을 수 있을까?’ 간호사들의 출근길 걱정은 곧 현실이 된다. 많게는 40명의 환자를 혼자 맡아 돌보는 의료 현장에선 숨 돌릴 틈이 없다. 대다수 간호사들은 화장실도 못 가 방광염을 달고 산다.

더 힘든 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 때, 할 수 있는 간호를 다 하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이다.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포기하면서도 간호사로서 책임을 다하기 어려운 열악한 의료 현장은 이들을 무력감에 빠뜨린다. 

‘빨리 벗어나는 것이 똑똑한 것’이라는 말이 도는 병원에서 계속 환자 곁을 지키고 싶은 간호사들에겐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간호사들이 조직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본부장 이향춘)와 행동하는 간호사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노동조합은 5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공동행동에 나선다. 

국제 간호사의 날은 나이팅게일이 태어난 날로 간호사의 사회 공헌을 기리기 위해 국제간호사협의회(ICN)가 1971년 제정한 기념일이다.

이날 간호사들은 “극심한 노동강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며 “2019년 기준 신규간호사 중 45.5%가 이직했고 2018년 기준 면허를 가진 간호사 중 51.9%가 간호사이길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환자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도 물 뜨기, 옷 갈아 입혀주기, 커피 타주기, 심부름 등을 요구받아 간호사들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어려움을 비롯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간호사들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서비스 인력기준 상향 및 전면 확대 ▲코로나19병동 중증도별 인력기준 마련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단체는 이날 서울(서울대병원 본관 앞 기자회견 오후12시·혜화역 인근 피케팅 오후12시 30분)과 대구(한일극장 앞 피케팅 오전11시, 대구시청 앞 기자회견 오후12시)에서 목소리를 낸다. 

강원대병원, 동국대병원, 동아대병원, 충북대병원, 제주대병원, 서귀포의료원, 제주권역재활병원, 마리아병원, 청구성심병원, 서울의료원, 포항의료원, 울산대병원 등에선 병원 로비 피케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간호사들의 공동행동은 의료연대 본부 페이스북에 실시간 공유될 예정이다. 

아래는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이한 현장 간호사의 편지

‘저는 언젠가는 이런 현실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3차 병원에 다니고 있는 N년차 간호사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간호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계심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5월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이해서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이 순간에도 간호사들은 열악한 현실에 한숨과 무기력함으로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흔히 간호사들은 출근길에 ‘오늘은 우리 밥 먹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안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늘 현실이 됩니다. 물도 못 먹어서, 화장실도 잘 못 가서 방광염을 달고 사는 젊은 간호사들이 많지만, 이제 다들 씁쓸하게도 익숙해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보다 힘든 것은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하였을 때, 그리고 할 수 있는 간호를 현실 때문에 하지 못하였을 때의 죄책감입니다. 

간호사들은 현장에서 간호사 1명당 많게는 40명의 환자까지 간호하게 됩니다. 이는 외국보다 2~3배 많은 수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환자를 책임지다 보면, 물 먹을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참으면서 일을 해도 간호사들은 결국 환자에게 학교에서 배운 간호를 다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본권은 희생했지만, 그래도 간호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현실은 환자의 건강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간호사들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간호사들은 요구합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를. 그리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들이 죄책감 없이 환자를 볼 수 있기를, 완치되어서 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현장에서 계속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현장에서는 ‘현장을 빨리 벗어나는 것이 똑똑한 것이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현장의 많은 간호사들이 현장의 열악함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쉽게 바뀌기 힘들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죠.

여러분, 하지만 모든 간호사들이 다 무기력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런 현실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환자의 건강과 저와 제 동료의 건강을 지키면서도 현장에서 남을 수 있도록 같이 관심을 가져주세요. 

간호계의 근본적인 문제 단 하나, 열악한 근무환경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임상에서 간호사들은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태어난 순간부터 임종하는 순간까지 지키는 간호사입니다. 부디 임상에서 여러분의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