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원청기업-하청노동자’ 직접 단체교섭 인정
중노위, ‘원청기업-하청노동자’ 직접 단체교섭 인정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6.04 01:14
  • 수정 2021.06.04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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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CJ대한통운의 대리점 택배기사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경영계 ‘부정적 파장’ 우려 반발
택배연대노조가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시청 입구 교차로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5개 차로에서 ‘2020 전국택배노동자대회’를 열고 ‘생활물류법 쟁취’를 주요 투쟁 구호로 외쳤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
택배연대노조가 지난해 6월 28일 오후 서울시청 입구 교차로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5개 차로에서 ‘2020 전국택배노동자대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

CJ대한통운이 대리점 택배기사들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판정이 2일 나왔다. 

‘원청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위·수탁계약 구조에서 직접 근로계약관계는 없더라도 원청 택배사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라고 본 것이다.

이날 개별 기업 노사관계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에 사용자 단체들까지 나서서 반발했다. 노사관계 전담 사용자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뿐 아니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준사법 행정기구 중노위의 판정을 부정했다. 사용자 단체들은 택배기사와 비슷한 상황인 특수고용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 등이 더 적극적으로 원청과 교섭을 압박함으로써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중노위 “CJ대한통운, 단체교섭 임해야”

중노위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산업노동조합(위원장 진경호, 이하 택배노조)이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 대해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2일 판정했다. 

앞서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했다.

지노위는 지난해 11월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선 CJ대한통운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지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보다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여부를 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지노위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 명시적인 근로계약은 물론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없으므로 CJ대한통운을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이를 뒤집었다. 중노위는 “원·하청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택배노조의 6대 교섭요구안 중 서브터미널 상품 인수·집하 시간 단축,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등은 서브터미널을 운용하는 CJ대한통운이 단독으로 교섭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한 주5일제, 수수료 체계 개편 등은 대리점과 공동으로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대리점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을 전부 결정 내지 전혀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택배기사의 노동조건 중 일정 부분에 대해 CJ대한통운이 단독 또는 대리점주와 중첩적으로 교섭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노위의 CJ대한통운 사용자성 일부 인정에 대해 택배노조는 “현장 조합원들의 개선 요구가 있는 거의 모든 사안(6대 요구안)을 원청 택배사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3일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되며 원청회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중노위는 노동조합의 입증 부족 등을 핑계로 이를 부정해왔다”며 “택배노동자 같은 경우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과로 사망 사고가 이어지며 ‘필수노동자’로서 보호대책이 강구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원청의 사용자성에 대한 인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했다. 

중노위의 판정 이후 CJ대한통운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김종진 서비스연맹 노무사는 “CJ대한통운이 교섭을 거부하면 고소, 고발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에 방점을 찍기보다 택배노조에 노조 설립신고증을 내준 고용노동부가 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개입을 할 필요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2일 중노위 판정 이후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이겼다! CJ가 진짜 사장이다! CJ는 교섭에 즉각 나와라!’라는 주요 구호를 외치며기자회견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다면적·중층적 관계 노동자, 노동3권 보장받는 첫 걸음”

이번 중노위 판결에 대해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와 관련해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서 사용자를 개별적 근로관계법상 사용자와 동일시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해야만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기존 판례 태도였다”며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던 종래 법 해석과 다른 판결을 이번에 중노위가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권오성 교수는 “그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등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과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사용자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시그널이 있었다”며 “종래 법원 판결이 그렇지 못했지만 중노위가 용감하게 한 발 내딛었다. 다면적·중층적 관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용자 단체는 ‘부정적 파장’ 우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은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과 관련한 개별 사안을 다룬 것”이라며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사용자 단체들은 반발했다.

경총은 “유사한 취지의 교섭 요구 폭증 등 노사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전경련 산하 연구원인 한국경제연구원 추광호 경제정책실장도 논평을 냈다. 추광호 실장은 “노사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외부인력을 활용하는 기업 경영방식을 제한하여 하청업체 위축 및 관련 산업생태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노사관계를 전문으로 하는 경총뿐 아니라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정부 정책개입 등을 다루는 전경련까지 이번 판정을 부정하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기업 사건에 경총, 전경련까지 나서서 중노위의 판정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목소리 내는 것이 사회적 경제 주체로서 바람직한 태도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인 원하청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이 구체적인 판정서도 나오기 전에 전면에 나서 이번 판정이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확대되지 않도록, 더는 밀리지 않겠단 강한 의지를 드러낸 상징적인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중노위의 판정은 대법원 판례는 물론 기존 중노위, 지노위 판정과도 배치되는 내용으로 다툼의 여지가 많다”며 “중노위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며 결정문이 도착하면 검토 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