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노동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힘
노조 간부 교육을 만나다① 지속가능한 노조의 바탕
‘슬펐다’, ‘무력감도 학습된다’, ‘후회스럽기도 하고 분노스럽기도 했다’, ‘게임 진행자가 기재부나 정부 같았다’, ‘갖춰진 틀에 의해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틀을 깨고 게임판을 엎는 봉기가 필요했다’, ‘베푸는 것도 경험해봐야 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가 돌아봤다’
5월 11일 서울 한 호텔 컨벤션홀에서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움’에서 주관하는 간부심화교육 4기 2주제 자본주의 1일차 1강 마무리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어떤 강의를 했기에 이러한 소감들이 나왔을까. 이날 간부심화교육을 위해 모인 공공운수노조 간부들은 20명 남짓이었다. 모두 같은 사업장은 아니었다. 20여 명의 간부는 자본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강의를 들은 게 아니라 3시간 동안 게임을 했다. 흔히 말하는 참여형 교육인데, ‘스타파워’라는 자본주의 사회를 간명하게 축소한 보드게임에 플레이어로 참여한 것이다. 게임 참여자들은 처음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별표, 네모표 등 스티커를 부여받는다.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 색깔 코인을 부여받는다. 다른 모양의 스티커와 다른 색의 코인은 각각 계급과 가치가 다른 돈이다. 게임 진행 중에는 교환과 교섭이 있고, 그 외에 다양한 미션도 있다. 게임 중 규칙을 어기면 감옥에 갈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은 왁자지껄했다. 미션을 수행하면서, 교섭을 진행하면서, 누군가는 감옥에 가면서. 감옥에 간 사람은 재소자의 인권을 외치기도 했다. 게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농담이기도 했지만 뼈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값이 나가는 코인을 모으는 것? 아니면 별표를 떼고 더 높은 상위 계급의 스티커를 부여받는 것? 게임을 마친 후 노동조합 간부들이 나눈 소감이 간접적인 답이 됐다.
노동조합 활동 속 고민
간부 교육이 길이 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보면 생기는 고민은 노동자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지부장은 평소 노동조합 간부로 자신의 역량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박경득 지부장은 함께하는 활동가들과 갈등으로 결말을 맞는 회의가 아닌, 마음을 모으고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회의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처음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는 회사를 상대하는 게 어려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조합 내부의 힘을 모으는 일이 오히려 어렵게 느껴졌다. 노동조합 내부의 힘을 모으지 못하거나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을 때 ‘왜 나는 이걸 잘하지 못할까’ 자책하며 힘이 소진되기도 했다.
교육센터 움이 진행한 자본주의 강의 이전 교육의 주제는 소통이었다. 박경득 지부장은 그 강의를 통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지, 의사소통을 어떻게 할지 등을 배우면서 막막함을 해소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 나만 겪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박경득 지부장은 지부로 돌아가 소통이든 자본주의든 내용을 정리해서 지부 간부와 조합원들에게 공유할 생각이다. 자신이 또 다른 교육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지부 간부들에게는 움 센터의 교육도 추천할 생각이다.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을 위한
노동조합 간부 교육
박경득 지부장처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기 활동에서 해소되지 않는 고민과 노동조합 운영을 더 잘하고 싶은 욕구가 노동조합의 간부 교육의 필요성을 만든다. 한편 노동조합 간부 교육은 활동가 개인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 차원에서의 고민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간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간부들을 만나 노동조합 간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들어봤다. 교육간부들이 이야기하는 노동조합 간부 교육의 필요성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① 지속가능한 노동조합 활동
노동조합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활동가의 역량이 중요하다. 김성란 민주노총 교육원장은 “민주노총이 주체적으로 사회를 노동에 유리하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민주노총 간부들의 높은 역량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간부 층위에 따라 지속가능한 민주노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간부의 역량과 자기 성찰력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기본”이라고 이야기했다.
지속가능한 노동조합 활동은 시대가 변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양경규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움 센터장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활동가가 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노동조합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활동을 할 활동가를 키우는 것과 그들의 역량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단순히 간부 교육을 하나의 교육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운동의 관점에서 노동운동의 중요한 한 축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② 노동조합 조직력 강화
노동조합 간부 교육은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영희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 교육홍보팀 국장은 “물론 노동조합 간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목적도 있지만, 노동조합 간부 교육을 통해서 노동조합이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함께 상기하고 그것을 교육하는 간부들이 함께 소통하기 때문에 노동조합 단결의 단초를 제공해준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교육을 통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다 보면 노동조합의 운영에 대해 더 풍부한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현장의 단결력과 조직력이 올라간다.
특히 산별노조의 경우 노동조합 단결력과 조직력이 높아지는 데 간부교육이 훌륭한 역할을 한다. 안명자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장은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움이 5월 11일 진행한 교육에 대해 “각각 다른 사업장에서 온 간부들인데, 공기업노조 간부도 있고 비정규직노조 간부도 있다”며 “다양한 직종 직군에 있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간부들이 모여 함께 교육을 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산별노조로 조직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정규직 갈등이 선명하게 발생하고 해당 갈등이 노동조합 내 갈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시기에 노동조합이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조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③ 노동조합의 지향을 구현할 활동가 양성
노동조합 간부 교육은 각 노동조합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노동조합을 운영하고 활동을 계획할 활동가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일례로 공공운수노조는 공공기관을 망라한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간부교육에 사회공공성을 하나의 꼭지로 구성했다.
최종환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 교육홍보팀 국장은 “단순히 노동법을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며 “한국노총을 예로 들면 한국노총은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통일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렇게 가기 위해서 간부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교육에 녹아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경원 민주노총 금속노조 교육실장도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노동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나아가는 지향점이 노동조합 간부 교육에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 간부 교육이 필요해!
“노동조합 간부 교육은 젊은 조합원 중에 간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아요. 자신이 간부라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고 봅니다. 처음에 간부를 하면 어느 순간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하면 의식 자체가 좀 바뀌죠.”
2019년까지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2020년부터 노동조합에서 비상근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젊은 건설노동자의 자기 경험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노동조합 간부 교육을 통해 얻는다면 교육은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조합 간부 교육이 간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에 다가가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간부 교육에서 중요한 지점은 간부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지, 더 나은 간부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