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경비노동자 조직화 선포’ 배경은?
민주노총 ‘경비노동자 조직화 선포’ 배경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6.10 18:18
  • 수정 2021.06.15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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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법-근기법 충돌
고용불안 등 사회적 갈등 예상
ⓒ 노동과세계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조노, 경비노동자 이만수 열사 추모사업회가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조직화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 노동과세계

민주노총이 전국 20만 아파트 경비노동자 조직화에 본격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고용불안 등 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경비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워 사회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하 민주일반노조), 경비노동자 이만수 열사 추모사업회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조직화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주택관리법과 근기법 충돌
사회적 갈등 예상

민주노총이 경비노동자 조직화에 본격 나서게 된 배경엔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과 근로기준법 간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 있다. 

국회는 지난해 10월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경비업법(제7조 제5항)상 정해진 업무인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을 방지하는 일(감시)’ 외에도 주차관리, 택배 수령과 보관, 분리수거, 청소 등 경비노동자가 이미 해오던 일(전체 노동의 약 70%)을 합법화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0월 21일 개정 공동주택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경비 외 허용되는 업무 범위를 설정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겸직 업무 범위는 주택관리, 택배관리, 분리수거, 외곽청소 중심으로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령은 이달 안에 입법 예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경비노동자가 ‘감시적 근로자’로 분류돼왔다는 점이다. 감시적 근로자는 ‘감시 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10조 제2항)’를 말한다. 

감시적 근로자로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주40시간-일8시간), 연장노동, 휴게·휴일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한다. 이 점은 경비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의 주원인으로 지적돼왔다.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돼 경비노동자가 그간 해오던 강도 높은 감시 외 업무를 인정받게 되면 감시적 근로자로 승인을 받기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경비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입주민의 부담 관리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을 때도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인원을 감축한 아파트가 다수 발견됐던 만큼 경비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가 혼란 방지를 위한 노력은커녕 감시적 근로자 승인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동화 민주일반연맹 수석부위원장은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기관인 고용노동부는 5월 27일 민주일반연맹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서 고용노동부가 경비노동자들의 감시적 근로자 승인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교대제 개편을 비롯한 근무형태 변경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의 감시·단속직 승인기준 개선 과정에 선제적으로 개입하고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 전에 적극적인 사회 공론화를 위해 경비노동자 집중 조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인 경비노동자가 함께하는 사회적 협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형수 민주일반노조 상임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경비노동자를 감시적 근로자에서 제외하면 월 70~80만 원 정도 인건비가 상승되는 부분을 입주민들이 감당하지 못해 대량해고가 우려된다면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법은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면 된다. 24시간 격일제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하게 해 입주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고용보장도 할 수 있도록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경비노동자, 입주자, 정부, 지자체 등 이해관계자가 사회적 협약을 통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동과세계
(왼쪽부터) 강동화 민주일반연맹 수석부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형수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 상임위원장 ⓒ 노동과세계

서울부터 조직화 나설 예정

민주노총은 우선 공동주택 밀집도가 높은 서울을 중심으로 경비노동자 조직화에 나설 계획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경비노동자 수는 약 20만 명이고 서울엔 2만 3,000여 명의 경비노동자가 있다. 민주일반연맹 민주일반노조엔 약 300명의 경비노동자가 조직돼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법과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는 경비노동자들의 권리를 스스로 보호,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민주노총은 서울 지역부터 함께 경비노동자 조직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경비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뿐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사회와 함께 힘을 모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변화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조직화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왜 총연맹 단위에서 조직화 선포했나?

한편 이날 2014년 입주자의 모욕과 폭언에 시달리다 분신한 이만수 경비노동자의 죽음 이후 경비노동자들을 조직해온 민주일반노조와 총연맹인 민주노총, 지역본부까지 함께한 배경엔 조직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겠단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1사 1노조’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학교비정규직(공공운수노조-서비스연맹), 택배노동자(공공운수노조-서비스연맹) 등 산하 조직 간 갈등을 겪어온 바 있다. 

이번엔 민주노총이 경비노동자 조직화에 본격 나서면서 민주일반노조를 민주노총 내 경비노동자 조직으로 선포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경비노동자 조직화는 민주일반연맹 산하 서울일반노조 등 지역 단위 일반노조들이 지난달 19일 민주일반노조라는 하나의 전국 조직으로 뭉치는 창립총회를 한 뒤 시행하는 첫 전국 단위 사업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