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문제 침묵한 방송사...“근로감독은 제대로 협조하라”
내부 문제 침묵한 방송사...“근로감독은 제대로 협조하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6.21 19:50
  • 수정 2021.06.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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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지부 “‘근로자성’ 인정 자료 폐기 지시 제보 있어”
시민단체 연대, 미디어 비정규직지원 사업을 펼칠 계획

언론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지상파 방송사를 향해 방송작가 대상 근로감독을 방해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3사에 근로감독 협조를, 고용노동부에 엄정한 감독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는 4월 27일부터 지상파 방송3사(KBS, MBC, SBS)의 시사교양·보도 분야 방송작가 전체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로 서울 지상파 방송3사 방송작가만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감독으로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된 방송사에 시정명령 등 후속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21일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방송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제대로 협조하라!'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21일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방송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제대로 협조하라!’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지부장 김한별)는 21일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방송사의 근로감독 방해 사례를 폭로했다. 방송작가지부는 근로감독이 시작된 직후부터 현장의 방송작가들에게 근로감독 방해 행위에 관한 제보를 받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KBS는 근로감독 시행 후 약 50일이 지난 이달 11일에야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 대상 방송작가의 명단과 연락처를 제공했다. 그간 KBS는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근로감독 대상 방송작가의 명단 제출을 거부해왔다.

방송작가지부는 명단 제출 거부로 이번 근로감독의 취지인 방송작가 노동 실태 ‘전수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방송사가 근로감독 대상자 전원의 연락처를 일시에 제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일정을 정할 경우, 진술인이 특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로서는 조사 참여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한편, MBC는 프로그램별 명단만을 제공했고, SBS는 근로감독 대상 방송작가 명단을 모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3사 정규직 간부나 PD들이 출퇴근 시간과 업무지시에 대해 함구하기를 종용하거나, 팀 내 비상연락망과 제작 스케줄표 등의 자료를 폐기하라고 지시한 제보도 있었다”고 방송작가지부는 밝혔다. 방송작가와 방송사 간 종속성을 입증할 증거를 지우려는 시도로, 이 경우 방송작가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근로감독 협조로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압박이 이뤄졌다는 제보도 있었다.

김한별 방송작가지부 지부장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MBC 작가는 일을 잘 못해서 잘린 거다, 작가들이 근로자성 인정받으면 작가들 뽑겠느냐, 결국 일자리 잃는 거다. 근로자성 인정받으면 최대 2년까지만 일할 수 있다, 다시는 방송사로 돌아올 수 없다는 등 악의적인 소문들이 방송사 내에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한별 지부장은 “근로자성 인정받은 작가 중 2년 이상 일을 해왔다면 기간제법에 따라서 기한 없는 계약을 하는 게 마땅하다”며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근로감독 면담에 나서는 걸 주저하게 만드는 명백한 근로감독 방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방송사의 근로감독 협조를 요청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선 많은 이들이 지상파 방송사의 경영진이 됐지만,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 바뀌는 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더라도 드러나는 현상과 문제를 부정하지는 말고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고 을도 병도 되지 못하는 방송작가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와 함께할 것”이라며 “방송사들이 방송권력 뒤에 숨어 근로감독을 회피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간 방송작가는 상시적 고용불안과 저임금·장시간노동 등에 시달려왔다. 또 방송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음에도 정규직처럼 상근으로 일하는 방송작가도 있다. 최근 노동위원회 판결과 행정소송 등에서는 방송작가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사례가 늘고 있다.

김한별 지부장은 방송작가들을 향해 “방송바닥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작가들이 방송작가지부에 모여 있다”며 “같이하면 할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근로감독 잘 응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미디어비정규직공동사업단인 ‘방송작가친구들’이 참석했다. ‘방송작가친구들’은 방송작가서포터즈를 발족하고, 미디어노동공제회를 신설하는 등 미디어 비정규직지원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방송작가친구들’은 5월 열린 방송작가지부 활성화 간담회를 기점으로 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