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금융 노사관계 지배한다
보이지 않는 손, 금융 노사관계 지배한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8.12.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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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금융지주회사 ‘사용자성’ 인정 요구
지주회사, 금융위기 돌파 파트너? 노사갈등 주범?
[Close Up] 금융지주회사에 ‘사용자’가 없다

11월 12일 국회헌정회관에서 ‘금융지주회사의 노사관계 및 노동관계법 개정방향’ 토론회가 개최된 데 이어 금융노조는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금융지주회사 지배 하에 있는 4개 은행노조들의 정책 간부들을 모아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을 토대로 직접 경영 및 지배 당사자와의 노사관계 구성을 위한 법 개정 추진 등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최근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유강현)는 KB지주의 출범과 맞물려 KB지주 황영기 회장 선임에 대한 반대 투쟁을 진행하며 주도적으로 금융지주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이를 계기로 금융노조와 각 지부는 각 개별 노사 차원의 현안에 대한 대응이 아닌 금융지주회사의 지배 개입에 법 개정 등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지주와의 실질적인 노사 갈등이 불거지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앞에 임단협과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이러한 움직임이 구체적인 실행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끓는 물에 데어야 뜨거운 걸 아나?

최근 금융권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와 신한, 하나에 이어 최근 KB국민은행이 전환했으며 최근 노사갈등으로 홍역을 빚고 있는 SC제일의 금융지주 전환 역시 구체적인 일정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농협도 지주회사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한 KB국민은행노조 류현숙 노동경제연구소장은 각 노조 정책간부들이 모인 회의에서 “가장 하부 조직인 영업점에서 전에는 지방발령, 보복인사로 이뤄졌던 것이 지주회사 내에서는 대량으로 다른 회사로 보내버릴 수 있게 된다”며 “인사권, 예산권이 지주회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자회사 간 노사협의가 안된 상황에서 통제가 심화된다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며 “거기에 위탁의 확대, 아웃소싱까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에 대한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융노조 홍완엽 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며 “지주회사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조항이 들어가는 것에 엄청난 반대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 필요성을 절감하고 4개 지주회사가 의견을 통일하고 함께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당장 오늘, 내일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집요하게 걸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이니만큼 노조와 지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당장 현안에 걸려있지 않은 문제를 두고 지부 내에서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여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조합원들은 그런 문제보다는 당장 임단협 등 현안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아직 금융지주회사의 움직임 역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주목하고 있는 점은 현재 금융지주와 노동조합 간 관계에서 지주회사가 인사권, 예산권을 쥐고 나서면 노동조합이 ‘주체’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지부 이창휘 부위원장은 “금융지주로 전환을 했지만 과거의 은행노사 체제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하나은행의 매트릭스 체제 하에서의 문제점이 이미 드러났고 지주회사에서 힘을 받으려면 언제든지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길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함께 나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산 넘어 산,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금융노조 홍완엽 정책국장은 “실질적으로 현재 금융지주회사가 인사권과 예산권을 거의 다 쥐고 흔든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며 “뒤에 숨어서 고용안정 등에 영향을 미침에도 지시만 하고 실제로는 노동조합과의 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입법화 추진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했다.

과거 개별 노사로 자주적인 권한을 갖던 은행이 금융지주회사의 사업부 체제로 전환되면서 지배구조 하에 머물게 되면 노동조합이 이에 대해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지주회사의 총자산 구성비율을 보면 가장 많은 하나지주가 96.26%, 가장 적은 신한지주가 93.10%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자금 유출 등을 경계하며 은행의 독자성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주회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대치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현재 금융노조가 제기하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는 현재 한국노사관계에서 공공부문이 주요하게 제기해오던 문제다. 실질적 사용자는 정부이나 교섭 상대는 공사의 이사장으로 예산, 인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교섭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이는 지주회사가 노동조합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으로 승화되는 과정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상생을 하든, 싸움을 하든 손바닥을 마주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노사가 풀 수 있는 현안에 대해 ‘그림자’와 싸워야 한다는 것은 곧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만약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융지주회사와의 노사관계 및 노동관계법 개정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은행연합회 공성길 노사협력팀장은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에 대해 “현재 산별노조 체제에서도 이중교섭과 교섭비용 증가 문제가 우려되고 있다”며 “이는 이중교섭에 이어 3중 교섭체제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산별교섭 체제에서 이후 지부교섭, 지부노사협의회로 이어지는 협상 테이블에서 금융지주회사와의 협상이 더해질 경우 이는 더욱 복잡한 교섭 체계를 만들 뿐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현재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 자회사의 경우 민주노총 사무금융 소속이다.

만약 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으로 공동교섭, 공동대응의 틀을 구축한다고 했을 때 이는 각 상급단체와의 관계와 교섭 테이블의 구성에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 그리고 금융위기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금융 노동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류현숙 노동경제연구소장는 “집행부가 처음 구성됐을 때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은행법이 제한되는 상황이 많다 보니까 은행의 영업보다 M&A를 통해 다방면으로 영업 영역을 확장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에서 은행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노동조합이 지주회사 전환 자체를 반대하고 나설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의 노사관계에 대한 문제점과 향후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갈등 요소들을 파헤치면서 처음부터 무조건 반대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사무금융연맹의 옥세진 교육선전실장은 “주 회사가 은행권인 상황에서 앞으로가 문제”라며 “힘없는 사장은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에 대해 노동조합이 얼마나 어떻게 싸울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물론 지주회사별로 산별이 되어서 가면 좋겠지만 상급단체도 다른 상황이고 단순히 논의차원에서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금융지주회사의 개별 노동조합 간의 소통과 공동 대응 역시 또 하나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그리고 예견돼 있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될 경우 하나의 지배구조 내에서 서로 경쟁구도를 통해 자회사 간 권력 다툼의 구조를 형성하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이는 현재 금융노조의 은행 간 과당경쟁체제 가속화에 이어 자회사 M&A 경쟁과 같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간 경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금융경제연구소 조혜경 연구위원은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하면서 증권, 투자금융 등을 키우기 위해 ‘제 2의 골드만삭스를 만들자’고 하면서 그들에게 지급결제능력 주고, 판을 만들어 주고, 자본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며 “금융지주회사는 은행이 할 수 없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이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에 대해 “그렇게 되면 경쟁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고 고위험을 감수하고 유통시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자본시장은 항상 오를 때가 있으면 폭락할 때가 있어 이 위험이 지주회사의 자회사 전체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에 금융위기를 불러 온 미국식 IB은행의 이 같은 방식이 현재의 한국 금융정책을 지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현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덩치를 키우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금융노조가 주요 사업 중 하나로 금융지주회사의 사용자성 인정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은 사용자성을 명문화 하는 것, 단체교섭권 쟁취, 노사협의회 구성 등을 염두에 두고 실행력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이를 진행하기 위해 현재 각 지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의견을 정리하고, 전문가 자문을 통해 세부적인 방향을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이와 함께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 구성까지 일단의 논의는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토론과 연구를 통해 도출해 낸 결론들이 현장 노사관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그리고 아직 한국 내 금융지주회사의 체계조차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이 같은 대응이 노사관계에서 발생될 수 있는 쟁점 현안을 얼마나 커버해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사관계는 제도적 틀로 인해 구성될 수 있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노사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노사 양측의 인식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결국 법적 강제력은 ‘교섭테이블’에 앉도록 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부터는 또 다시 노사관계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직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는 지주회사의 지배력이 노사관계 안에서 금융 위기를 함께 타계해 나갈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노사 갈등과 법적 공방으로 점철될 검은 손이 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부의 갈등과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인사와 노무를 관리하는 ‘경영’의 손이 금융 위기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시도와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통해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