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산업전환, “초기업 단위 교섭 보장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산업전환, “초기업 단위 교섭 보장해야”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7.28 18:22
  • 수정 2021.07.28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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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협의 필요 공감…“노동 없는 산업전환 대비 노조가 참여 주체 돼야”
‘사회적 대화’에 모호한 입장 보여 온 민주노총에 대한 지적도 이어져
ⓒ 보건의료노조
ⓒ 보건의료노조

기후위기, 디지털화로 인한 산업전환에 대한 노동정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초기업 단위 교섭이 그 대안으로 제기됐다. 초기업 단위 교섭이란 개별기업 또는 개별사업장 범위를 초과하는 단위의 교섭을 말한다.

금속노조(위원장 김호규)와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 서비스연맹(위원장 강규혁) 등 민주노총 산하 산별조직이 28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소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환시대! 초기업교섭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앞서 영상으로 축사를 대신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산업구조에 대응한 정부정책의 어디에도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초기업교섭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 없는 노동전환을 바로 잡아, 기후위기와 비대면 디지털 중심 경제로 정의롭게 전환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라며 “노사가 대등한 교섭구조에서 논의하고 공동의 결정으로 지속가능한 전환 방안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정부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방안에는 산업구조 전환이 시급한 산업부터 우선적으로 재편을 유도하고, 노동자 직무전환 및 재취업 지원 강화, 지역별 고용위기 대응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선제적 기업‧노동전환 지원단’을 구성하고,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해관계자의 참여 및 협력을 위한 경사노위 산하 산업별위원회 논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해당 방안이 발표되자, 한국노총(위원장 김동명)은 노동의 참여, 사회적 대화 등 진전이 있는 방안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위원장 양경수)은 해당 방안이 사후적이고 부분적 대응일 수밖에 없는 노동전환 지원에 그치고 있고, 지원에 대한 내용도 노동이 아닌 기업 중심 대책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안을 비판한 바 있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원재 금속노조 기획실장은 산업전환에서 노동이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전환 공동결정법 추진과 사용자단체 범위대상 확대, 대정부 및 대지자체 교섭틀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산업전환 공동결정법의 목표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발전 △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확보 등에 있다고 언급했다.

이원재 기획실장은 “자동차 부품사 중 70%가 산업전환에 대응하기 어렵다. 산업전환의 폐해는 2, 3차 벤더 등 노동조합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크게 다가온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없어 스스로를 지킬 여력이 없다”며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결정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원재 기획실장은 이어 “공동결정법의 핵심은 지역과 산업, 업종을 고려하는 민주적산업전환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노사의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초기업 단위로의 노사관계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초기업교섭 촉진 및 활성화가 시급하다며, 노정교섭과 산별교섭뿐만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병행해 초기업교섭을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민주노총 안에서 사회적 대화는 안 되고 노정교섭은 된다는 등 여러 논란이 있어 왔는데, 산별교섭이나 노정교섭, 사회적 대화 중 어느 하나의 교섭만으로는 진전이 어렵다”며 “세 개의 교섭이 함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핵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 번째 발제를 맡은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산별운동이 단순 조직전환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공동요구와 공동투쟁을 거쳐서 산별운동에 대한 목표 일치성을 확인할 때 가능하고, 기업 울타리를 넘어서 산업정책에 개입하고 전체 노동자를 대변해야 한다”며 “복수노조에서의 산별교섭 보장과 산별협약 효력 확장, 산별교섭과 투쟁을 보장하는 노동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발제를 종합해보면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은 초기업 단위 교섭이 산업전환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발제로부터 언급된 교섭효력의 확장과 사용자단체 개념 확대 등에 동의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여 온 민주노총의 입장이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교섭’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노사 이해대립과 투쟁을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를 통한) 합의를 전제로 보고 있다면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정교섭과 사회적 교섭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기)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 박태주 선임연구위원은 “노정교섭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일 뿐 상시적이고 전면적으로 제도화되긴 어렵고, 결과가 사회협약으로서의 권위를 갖기도 어렵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가교로서 사회적 대화의 역할을 평가할 필요가 있고, 민주노총의 입장도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며 “(산업전환에 있어) 노동조합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실현 주체로서 산별교섭과 사회적 대화 속 노동조합의 역할을 되새겨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황효정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은 정부가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지만, 초기업 단위 교섭의 법제도화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황효정 노사관계법제과장은 “초기업 단위 교섭을 강제화할 때 기업별 교섭을 침해하거나 경영권 침해 우려도 있다는 측면에서 법제도화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성공 사례가 현장에서 확산될 필요가 있고, 정부도 모범사례 발굴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