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젖는 데 30분... 폭염 속 무방비 건설노동자
온몸 젖는 데 30분... 폭염 속 무방비 건설노동자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7.29 15:17
  • 수정 2021.07.29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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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시설 확충 필요, 작업 중지로 인한 임금 보전 고민해야”
“노동자 생명, 기업 규모별로 차별받아선 안 돼”
28일 윤미향 의원실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 함께 마련한 폭염 노동실태 현장 반문 및 간담회,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28일 윤미향 의원실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 함께 폭염 노동실태 현장 방문 및 간담회를 진행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폭염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다들 코로나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만 같았다. 안면 인식 발열 측정기가 연신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발열 측정기를 한 번에 통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8일 윤미향 의원실이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과 함께 ‘폭염 노동실태 현장 방문 및 간담회’를 마련하고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을 찾았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2시까지 30분가량 건설현장을 돌았다. 30분 만에 현장 방문에 함께했던 의원실 관계자들, 노동부 관계자들, 언론 관계자들 모두 땀을 줄줄 흘렸다. 간담회 장소 입구에 설치된 발열 측정기는 38도 이상을 가리키며 계속 경고음을 냈다.

휴게 시설 확충해야
중소건설현장은 더 열악해

윤미향 의원실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폭염 속 열악한 노동실태가 드러났다. 박중용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동남지대장은 “보다시피 건설현장 현실이 이렇다”며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온몸이 다 젖는데, 노동자들은 1시간 만에 속옷까지 다 젖는다”고 토로했다. 또한 “샤워 공간이라도 제대로 돼 있으면 쉬는 시간에 씻고 쾌적하고 안전하게 다시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박중용 지대장은 “대기업이 맡은 현장에는 어느 정도 휴게 공간도 있지만 중소 현장에는 쉴 수 있는 컨테이너 하나 없다”며 “중소 건설현장도 방문해 건설노동자의 노동실태를 한 번 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윤미향 의원이 대표발의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를 사업주의 의무로 명시하고, 노동부장관이 휴게시설 운영 실태를 확인·점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건설현장에서 60대 건설노동자가 철근을 나르다 쓰러져 사망했다. 26일에는 인천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50대 건설노동자가 사망했다. 여름철 철근은 60도 가까이 달궈진다. 콘크리트 타설 시에는 장갑, 장화, 앞치마로 무장하고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콘크리트를 다뤄야 한다. 두 사고 모두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재사망사고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 폭염 대책 무용지물
노동자 생명에 돈 아껴선 안 돼

이처럼 계속되는 폭염으로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25일 정부는 무더위가 가장 심한 시간대인 오후 2~5시에는 건설현장 공사 중지를 지도하기로 했다.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회의에서 폭염에 취약한 건설노동자 보호를 위한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 6월에 노동부는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가이드’를 발표했다. 이 가이드에 따르면 체감온도 33도 이상의 기온이 이틀 넘게 지속될 경우 무더위시간대(14~17시)의 옥외 작업을 단축하거나 작업시간을 조정하게 돼 있다. 또한 체감온도 35도 이상의 기온이 이틀 넘게 지속되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더위시간대에 옥외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체감온도 38도 이상일 경우 재난 혹은 안전이 이유가 아니라면 옥외 작업을 전면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건설노조의 설문에 따르면 노동부의 가이드는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정부의 이번 무더위 시간대 건설현장 공사 중지 지도 발표도 무색했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가 26일부터 27일까지 공사 중지를 했는지 자체 확인한 결과 98% 이상이 그대로 일을 했다고 밝혔다.

28일 윤미향 의원실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 함께 폭염 노동실태 현장 방문 및 간담회를 진행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폭염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윤미향 의원은 “폭염이 가장 심한 시간에 노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임금 보전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기후여건에 따른 건설노동환경 개선 권고’를 내고 발주자나 원청 건설사가 폭염으로 인한 작업 중지 및 공사 기간 연장 시에는 노동부가 전부 혹은 일부 임금을 보전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전득진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동남지대 팀장은 “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으로 작업을 멈출 시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없다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46조에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하기로 돼 있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후 참석한 건설노동자와 윤미향 의원의 질타에 “관련 과와 논의해보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노동자 생명과 직결된 부분에서 대‧중‧소기업과 같이 기업 규모별로 다르게 법제도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건설 현장 안전을 위해 적정 공사비와 적정 공사기간을 확보하려 해도 마지막 기재부 문턱을 넘지 못한다”며 “생명을 지키는 것에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건설현장 폭염대책을 포함한 안전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노동부의 관리감독 및 위반 시 처벌 강화 ▲공사기간 단축과 공사비용 삭감의 구조적 원인인 불법 다단계하도급과 최저가낙찰제 규제 등을 주문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폭염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건설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제대로 된 폭염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