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액뿐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이제 그만
증액뿐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이제 그만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8.07 00:00
  • 수정 2021.08.06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1차 협상서 노동자 고용안정 주목했지만, 현장선 ‘감원’
총액형 협상에서 벗어나 ‘소요충족형’ 협상으로 나아가야

리포트_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이대로 괜찮을까

안전 보장을 뜻하는 ‘안보(安保)’는 한국 사회에서 마술과 같은 단어로 쓰인다. 특히나 국가 안보를 위한 한미 동맹과 관련해서는 더욱 맹목적이다. 지난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협상 타결로 한국은 기존보다 13.9% 인상된 1조 1,833억 원을 분담하게 됐다. 국민의 세금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분담해야 함에도 분담금이 인상됐다는 점 외에 해당 금액이 세부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는 손쉽게 알기 어렵다. 이 같은 방위비분담금의 불투명성은 주한미군 내 고용된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건 물론이고,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문제,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 클립아트코리아

제11차 SMA협정과 한국인 노동자 무급휴직

2020년 4월 1일, 주한미군사령부(이하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강제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이 트럼프 정부가 꾸린 미 협상단의 과도한 증액 요구로 지연됐기 때문이다. 당시 미 협상단은 방위비분담금 50억 달러 증액뿐만 아니라, 주둔비, 전략자산 전개비 등의 신설 항목 추가를 요구하면서 협상을 결렬시켰다.

현재 방위비분담금은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세 가지 항목으로 배정된다. 여기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미국과 분담해서 내도록 구성돼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양국 간 SMA 협상이 늦어질 때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 무급휴직을 통보받으며, 고용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21년 3월, 양국 협상단은 제11차 SMA 협상 타결을 끌어냈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방위비분담금은 기존 1조 389억 원에서 13.9% 인상된 1조 1,833억 원으로 책정됐고, 2022년에서 2025년까지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해 방위비분담금을 책정키로 했다. 제11차 SMA 협상에서 주목할 점은 한미 방위비분담금 내 인건비 배정비율 하한선을 기존 75%에서 87%까지 확대하도록 의무규정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국 협상단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 및 생계 안정에 초점을 두고 협상에 임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에서도 한국인 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무급휴직에 들어간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계보장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제17조(노무조항)를 따르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해 이들의 무급휴직을 지원할 방안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특별법은 국내 고용보험법을 적용함으로써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무급휴직 상황을 실업 상태로 보고, 구직급여에 해당하는 만큼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로써 무급휴직에 돌입한 이들은 최소 180만 원부터 최대 198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방위비분담금은 UP, 고용안정은 DOWN

‘주한미군사는 지원분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 분담으로 제공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인 근로자의 복지와 안녕의 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그러한 고용이 미합중국 군대의 군사상 소요에 배치되는 경우가 아닌 한 고용을 종료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특별조치협정을 위한 이행약정」에 기재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약한 제11차 협상 타결 이후인 2021년 3월, 주한미군은 경기도 평택 소재 제501군사정보여단 소속 식당 노동자 23명에게 감원을 통보했다. 이 같은 감원 통보는 하루 이틀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손쉬운 감원이 가능한 이유는 SOFA 노무조항을 근거로 두기 때문이다. 일반 노동조합의 경우 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이 나오면 쟁의권을 획득하는 것과 달리,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위원장 최응식, 이하 노조)은 SOFA 노무조항에 따라 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 이후에도 합동위원회라는 관문을 거쳐야 쟁의권을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쟁의행위 조정 기간(45일)과 합동위원회 회부 기간 중 파업을 시도할 경우 해고를 명시하고 있어, 노조가 불합리한 감원 통보를 받아도 발 빠른 대응을 하기 어렵다.

제11차 협상 직후 외교부는 “(방위비분담금) 13.9% 인상이 2020년 국방비 증가율 7.4%와 인건비 최저배정비율 확대에 따른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증액분 6.5%를 더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인건비가 증액됐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는데, 왜 감원 통보는 지속되는 것일까.

노조는 지속되는 강제 감원의 원인이 주한미군의 군수지원비 사용을 기반으로 한 ‘하청계약’에 있다고 봤다. 노조는 “(주한미군이) 한국인 직원들이 수행하던 군인식당 지원, 중장비 정비, 전기정비 등의 업무를 인건비보다 훨씬 높은 비용의 하청계약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10월 5일 국방부가 전해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방위비분담금 9차(2014∼2018년)·10차(2019년) 협정 기간 발생한 불용액은 총 678억 8,000만 원에 이른다. 주한미군이 불용액을 소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담해야 하는 인건비 비중을 줄이기 위해 한국인 노동자 감원과 하청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특별조치협정을 위한 이행약정」 제5절(군수비용 분담)을 살펴보면, 한국 국방부가 △수송 용역 △수리 및 정비 용역 △시설의 유지 용역 등을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 세 항목이 군수지원비 활용을 통한 하청계약의 근거가 된다. 이행약정 중 제4절(군사건설), 제5절(군수비용 분담)에는 ‘(항목별) 합동협조단을 계속하여 운영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제3절(인건비 분담)에서는 합동협조단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있다.

손지오 노조 사무국장은 “합동협조단 운영을 통해 (방위비분담금 항목을) 형식적으로나마 살펴보게 돼 있는데 인건비 분담 항목에는 이조차도 없어서, (주한미군에서) 왜 감원이 필요한지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지오 사무국장은 이어 “한국인 노동자를 증원하면 되는 일인데 하청계약을 통해 몇 배나 되는 비용을 소모하고 있다. 현재 방위비분담금 사용에 대해 감사(監査)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노조는 현재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를 직고용하고, 이후 군수지원비가 하청업체 인건비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내용이 본 협정이나 이행약정서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6월 15일 열린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방위비분담금 인건비 인상분에 따른 6.5% 임금 인상, 감원 철회, 하청직원 직고용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보류된 상황이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은 미국 공무원 임금 상승률(올해 1.0%)보다 높게 임금을 높일 수 없는 페이캡(Pay Cap) 정책에 의해 임금 인상에 있어서도 제약받는 현실에 놓여있다.

노조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제10차 협상에서 합의된 제도개선 합동실무단(Working Group)을 유지하고, 인건비 부분 이행 점검단 및 실무단을 구성해 효율적인 운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급휴직을 앞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2020년 3월 20일 오후 미 대사관 앞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분담금 요구 철회를 촉구했다. ⓒ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무급휴직을 앞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이 2020년 3월 20일 오후 미 대사관 앞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분담금 요구 철회를 촉구했다. ⓒ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문제는 ‘총액형’ 협상,
‘소요충족형’으로 나아가야

2008년 4,600억 원대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SK건설 임원이 주한미군 관계자 등에게 30억 원대의 뒷돈을 건넨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814억 원의 벌금과 3년간 미 연방정부와 계약 금지로 종결됐다. 이 같은 사례는 불투명한 방위비분담금 사용내역이 비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과 이를 통제할 방안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미정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은 “미2사단 이전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지만 방위비분담금 군사건설비를 축적해서 불법 전용했던 점, 2018년 사드기지 건설사업의 설계비로 방위비분담금이 사용된 점, 2021년 사드기지 공사비를 방위비분담금으로 쓰고 있는 점 등 군사건설사업의 방위비분담금 집행결정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는 한 불법과 편법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군사건설비뿐만 아니라 군수지원비의 하청계약 사업을 통해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방위비분담금 협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얼마를 증액할 것인지 정하는 총액형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쓰는 만큼 분담하는 ‘소요충족형’ 방위비분담특별협정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오미정 연구원은 “(평택기지가 완공됐음에도) 군사건설비가 여전히 3,000억~4,000억 원씩 배정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방위비분담금을 지난해 대비 몇 퍼센트 인상할 것인지 먼저 정하는 식으로 협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손지오 사무국장은 “방위비분담금이 1조 원을 넘어가면서, 세 가지 항목(인건비·군사건설비·군수지원비)을 운영하는 데 충분하다는 점은 불용액의 존재로 입증됐다. 분담금이 충분하다면 그다음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를 양국이 분담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100% 지급한다면,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마다 한국인 노동자를 볼모로 잡는 협상을 근절하고 소요충족형 협상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제언했다.

소요충족형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면 하청계약으로 인한 한국인 노동자의 감원을 막고, 자금 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해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인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제9차, 10차 SMA 심사 과정에서 부대의견 제출을 통해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실질적인 제도개선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8월 12일 오후 2시 개최 예정인) 제11차 SMA에 대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공청회를 통해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기록하고, 합리적인 분담기준 마련과 책임성·투명성 제고 방안 등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누군가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진정한 친구임을 확인시켜라.”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동맹이란 서로가 같은 편임을 상기하는 행위다.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을 토대로 안보 동맹을 맺고 있다면, 상하 관계가 아닌 상호관계로서의 ‘진정성’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서는 이와 같은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요충족형으로 방위비분담금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한미 동맹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