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까지 반년여 남은 ‘ILO 기본협약’ 노사는 여전히…
발효까지 반년여 남은 ‘ILO 기본협약’ 노사는 여전히…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9.07 00:02
  • 수정 2021.09.0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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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사자 노조 활동은 어디까지?” 등 개정 노조법으로 노사갈등 예상
‘예상되는 혼란’에 노사 모두 “노조법 재개정” 촉구

[리포트] 발효까지 반년여, ILO 기본협약

올해 2월 26일 국회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말뿐인 비준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했고, 개정 노조법은 지난 7월 6일부터 시행 중이다. 국회 동의를 거쳐 비준한 이번 협약은 기탁일로부터 1년 뒤인 2022년 4월 20일 발효를 앞두고 있다.

반년여 뒤, 현장의 혼란도 함께 온다

ILO 기본협약 발효까지 반년여의 시간이 남은 가운데, 노동계와 경영계는 각각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는 여전히 ILO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독소 조항들로 개정 노조법이 오히려 노동기본권 후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경영계는 개정 노조법과 협약 비준이 현장에 적용될 시 혼란과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법 개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개가 충돌할 수 있어 개정 노조법이 노사 모두에게 갈등의 불씨로 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노사의 공통 목소리는 ‘노조법 재개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의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월 30일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긴 숙고 시간을 통해 법이 개정됐고, ILO 기본협약도 비준된 상황”이라며 “이제는 (현장 혼란에 대한) 과도한 우려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장에 잘 안착시킬까’라는 점에서 노사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부가 노사의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일축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판단대로 노사의 목소리가 정말 ‘과도한 우려’에 불과할까?

국회 동의를 받아 비준하는 ILO 기본협약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협약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국내법(여기서는 노조법)을 그대로 둔 채 협약을 비준하면 법 규범 간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ILO 기본협약과 기존 노조법이 충돌하는 경우 신법우선원칙과 특별법우선원칙에 따라 ILO 기본협약이 우선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ILO 기본협약이 노조법보다 더 나중에 체결된 신법인 것은 물론, 별의별 규정이 다 있는 노조법과 비교했을 때도 ILO 기본협약이 특별법으로서 더욱 우선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정부 역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협약에 따른 노조법을 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1월 노조법 개정 당시 개정이유를 “국제노동기구의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하여”라고 밝힌 바 있는데, 노조법이 ILO 기본협약에 우선한다면 굳이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신인수 법률원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법우선과 특별법우선이 원칙적으로 맞고, 원칙대로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ILO 기본협약이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현실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따른다. 고용노동부도 이 같은 지적에 힘을 실으며 “ILO 기본협약이 비준되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지만, 일반법과는 달리 원칙적·추상적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구체적 사안에 직접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로선 반년여 뒤 어떤 혼란이 발생할지 정확히 예견하긴 어렵지만,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건 ILO 기본협약 발효와 개정 노조법이 노동현장과 노사관계에 불러올 파장을 단순히 노사의 ‘과도한 우려’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것. 개정 노조법 중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 두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실업자·해고자 등의 기업별 노조 가입

먼저 노조 조합원 자격을 확대하면서 개정한 노조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개정 전 노조법은 해고자와 실업자 등 비종사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ILO는 “해고·실업 상태에 있는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는 규정이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며 해당 규정의 폐지 또는 결사의 자유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지속해서 권고했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기업별 노조에 해고자, 실업자가 가입할 수 있게 됐으며 노조 조직 형태와는 무관하게 노조의 가입범위를 자체 규약으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기업별 노조의 임원이나 대의원은 종사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비종사 조합원의 노조 활동 원칙도 추가로 개정됐는데, “해고자 등 비종사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하더라도 비종사 조합원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 활동을 할 때는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서 쟁점은 “비종사 조합원의 노조 활동을 ILO 결사의 자유 원칙에 따라 부여되는 권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개입해서 특정 요건을 설정할 수 있는 권리로 볼 것인가”이다.

노동계에서는 기업별 노조의 임원 자격을 종사 조합원으로 제한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ILO의 기준은 “자유롭게” 노조 대표를 선출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노동조합 임원 자격요건으로 특정 직종 또는 사업장의 구성원일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ILO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애초 ILO의 권고는 단순히 해고자와 실업자를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아니라 노조 스스로 가입범위를 정하고 그 대표를 선출하도록 하라는 것”이라며 “즉,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이 따르자 정부는 “개별기업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외부인이 노조 임원이 되면 근로자 대표로서의 역할이 어려울 수 있고, 사실상 원활한 교섭이 제한될 수 있다”며 “노조는 스스로 조직 형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정안은 결사의 자유의 원칙을 존중하고 있으며, 노조의 자율적 선택으로 기업단위 노조로 활동할 때에 기업별 노사관계 하에서 임원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보완방안을 마련했다”고 반박했다.

남은 논란은 또 있다. 비종사 조합원의 노조 활동 원칙에서 말하는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라는 게 어디까지냐는 거다. 모호한 표현이기에 이로 인한 문제 발생 시 노사 간 다툼의 여지가 충분하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구의 추상성으로 해석과 적용에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업운영을 저해한다고 보기 어려운 노조 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해 향후 판례의 태도(사법적 판단)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이 자체가 해석상의 혼란으로 노사관계에 심대한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업장별 노사 간 논의와 협력으로 사내 규칙, 단체협약 등을 통해 원칙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노사 간 협력에만 맡기기 어려우니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총은 시행령을 통해서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내 노조 활동 시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이용에 관한 규칙 준수의무 부과 △비종사 조합원의 노조사무실 이외 장소 출입 시 사용자의 사전 승인 의무화 등을 규정해 산업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효율적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불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유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어 어떻게 보면 사법부에 부담과 책임을 떠넘긴 문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이 부분에 대한 갈등을 노사가 어떻게 해소해나갈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편집디자인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편집·디자인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및 근로시간면제제도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은 1997년 노조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으나 13년간의 유예를 거쳐 2010년에서야 시행될 만큼 노사 간 오랜 쟁점이었다.

ILO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이 입법적 개입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노사 간 자유롭고 임의적인 교섭에 의해야 한다며 해당 규정의 폐지를 지속해서 권고했다. 다만, 근로시간면제제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 도입 취지를 이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법 개정으로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과 형사처벌 규정이 삭제(부당노동행위 사유에서 제외)됐으며, 노조 전임자 급여 지원 등을 요구하는 쟁의행위 금지 및 처벌규정도 삭제했다. 또,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으면서 노조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근로시간면제자로 규율하고,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사용자의 급여 지급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되며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급여 지급을 정한 단체협약과 사용자 동의는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하기로 했다.

정부는 “ILO가 개선을 권고한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금지와 형사처벌 등의 입법적 개입을 삭제하고, ILO도 인정한 근로시간면제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 이번 개정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원칙적으로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부담하는 것이 자주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은 경영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노조법 개정으로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와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한 상황에서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유지해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 또는 협약을 무효로 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냐는 목소리다. 또한, 부당노동행위 처벌과 관련해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급여 지급을 요구하는 노조에 대한 처벌은 없고, 이를 지급한 사용자 측에만 처벌이 가해져 균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것들이 노사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물론, 노동계도 할 말은 있다. 여전히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통해 국가가 전임자 급여 지급 문제에 개입하고 있어 개정 노조법이 여전히 ILO 기준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 유정엽 본부장은 “여전히 입법적으로 전임자 임금 지급에 개입하고 제한하는 기존의 틀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현실에서 보면 노조 대표자도 결국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면서 근로자대표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노조 활동을 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보장하는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전임 활동을 보장해왔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노조 활동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건 ILO의 기본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남은 숙제 두고
“정부가 역할 해야” vs. “노사가 풀어야”

예상되는 이 같은 혼란들은 현재로선 각 사업장 노사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반년여 뒤 예상되는 혼란이 정말 노사의 협력으로‘만’ 풀어야 하는 문제, 혹은 풀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이는 노사에게만 맡기기보다는 정부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관점인데, 노사에게만 맡기기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불안정하고 아직 미성숙하다는 우려도 함께 섞여 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반대되는 목소리로, 이걸 노사의 손에만 맡기지 않는다고 했을 때 정부와 ILO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박지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ILO 기본협약 비준은 노사 모두에게 큰 전환점이고 이정표로서 역할을 하겠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기에 결국 이 문제는 우리 노사의 손에 달린 문제다. 우리가 앞으로 노사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노동 질서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나갈지 노사가 책임감을 갖고 풀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처럼 조금이라도 더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재개정하는 것이겠지만,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재개정이 다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안경덕 장관의 입을 통해 정부가 노조법 재개정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기국회인 만큼 다른 이슈들을 제치고 노조법 재개정 이슈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ILO 기본협약과 개정 노조법은 노동현장과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가 법원으로 넘어갔을 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때 법원의 판단이 ILO 기본협약 취지와 어긋났을 때 ILO와 국제사회에서 이를 분쟁화한다면 정부는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시각에도 현장의 혼란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