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활동가, 남성 육아휴직 ‘4인 4색’
노조 활동가, 남성 육아휴직 ‘4인 4색’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9.07 00:03
  • 수정 2021.09.07 0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아휴직 경험한 노동조합 활동가 4인을 만나다
가장 큰 고민은 ‘생계’…그럼에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꼭 필요”

[리포트] 노동조합 활동가의 육아휴직 들여다보기

라떼파파(Latte-Papa)’라는 말이 있다. 라떼파파란 스웨덴에서 시작해 북유럽 전체에서 육아휴직 중인 아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 손에 라떼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면서 공원을 산책하거나 장을 보는 모습에서 유래됐다.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2020년 전체 육아휴직자 중 24.5%가 남성 육아휴직자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장을 누비는 노동조합 활동가 중에도 남성 육아휴직을 경험한 이들이 있을까. 물론이다. 남성 육아휴직을 겪은 노동조합 활동가 4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디자인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1. “씻을 시간이 없어서 ‘삭발’ 했어요”
김상철 한국노총 금융노조 대외협력부장

“제 일과는 아이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금융노조 남성육아휴직 1호인 김상철 부장은 지난 7월부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육아휴직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에 그는 메시지로 하루일과를 정리해 보내왔다. 30분 단위로 정리된 하루일과에는 ‘아이’라는 말이 빼곡했다. 아이 기저귀 갈기, 아이와 놀이, 아이 재우기, 아이 식사 등등. 오전 5시 30분에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한 눈 팔 겨를조차 없는 듯 보였다.

김상철 부장이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된 건, 아이가 태어난 직후 육아를 도맡아온 배우자에게 조금 더 힘이 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서 활동가 한 명은 두세 명 몫을 해내기 때문에 한 명의 빈자리가 크긴 하지만, 그럼에도 금융노조에서는 적극적으로 격려했다. 그가 육아휴직을 떠난다고 했을 때, 일부는 종종 직장에서 벗어난다는 점만을 보고 부럽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러나 그는 육아휴직은 결코 쉬러가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린 아이는 한 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조금만 한 눈 팔면 사고가 날 수 있거든요. 아이를 안고 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지금은 씻을 시간도 없어서 삭발을 했어요. 추억을 갖자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마음이 커요.(하하)”

김상철 부장은 육아휴직을 겪으면서, 출산 직후 15개월 동안 아이를 보살펴온 배우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그만큼 육아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들어간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충을 분담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돌봄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육아휴직비용 등 경제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최적의 선택지는 결국 육아휴직이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며, 남성 육아휴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운동은 ‘아이 키우는 운동’
황홍원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사무국장

“아이 상태가 이 정도였어요.” 황홍원 국장이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아이 사진을 건넸다. 2015년 3월 1일부터 7개월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황홍원 국장이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된 건 아이의 요양과 이로 인한 배우자의 스트레스를 분담하고 가정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아이는 아토피를 심하게 앓고 있었지만, 황홍원 국장은 진주의료원 투쟁을 하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이를 보살피기 힘든 상황과 함께 얼마 안 되는 급여로 생계를 유지하려다 보니 가정불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활동가들이 이러한 상황에 자주 내몰린다고 말했다.

가정 내 정체된 상황을 해결할 마지막 방안으로 육아휴직 사용을 제안했던 건 배우자였다. 황홍원 국장은 보건의료노조에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을 배우자의 바람대로 제주도에 임대로 구한 농가주택에서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운동이 아이 키우는 운동인 거 같아요. 정말 혁명보다 힘든 거 같아요. 옛말에도 있잖아요. 아이 보느니 밭 맨다고.(하하)”

아이는 보통 새벽 3시에 잠들었다. 밤이 찾아오면 온몸이 가려운 나머지, 왔던 잠도 달아났기 때문이다. 황홍원 국장은 아이가 잠들지 못할 때마다 아이를 보살폈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배우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 뒤에는 아이가 뒤척이거나 깨지 않고 잠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이가 푹 자는 거예요. 배우자와 함께 새벽 3시까지 자는 모습을 쳐다봤어요. 점점 아이 상태가 호전됐어요. 하루는 잠든 아이를 보면서 배우자와 함께 맥주 한 캔 마시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맥주 한 캔 이렇게 마셔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는 배우자와 마주 앉아 그동안 서로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깊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서, 아이의 치유 외에도 배우자와의 관계 회복에도 힘써야겠다고 생각한 황홍원 국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또한 그는 육아휴직 기간이 부부로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육아휴직 이후 다시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대신 한 달에 하루는 육아를 전담한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등을 약속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지혜롭게 조율했다.

“평생 활동가로 사니까 모은 돈이 없는 거예요. 배우자가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고, 제 소득으로만 버텨야 하니까. 그래서 중간에 퇴직금 정산을 많이 했어요.”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역시 재정적 한계였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 세 달 동안은 150만 원이 들어왔지만, 그 이후에는 80만 원가량이 들어왔다. 아이 약값과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기에는 버거운 금액이었다. 그는 퇴직금 정산 외에도 육아휴직 중 일용직을 구해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에어컨 하나 없는 농가주택에서 여름을 났어도 그게 좋았나 봐. 가족끼리 옴팡지게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육아휴직이 제 활동의 근거이자 배수진이고 원천인 가족관계를 돈독하게 해줬어요.”

황홍원 국장은 활동가로 살기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생계 차원에서는 사회인으로서의 삶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하면 활동가의 활동을 지속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육아휴직을 통해 안정감 있는 가족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조직적인 논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전했다.

#3. 육아휴직제도만 아니라 ‘공공보육’도
곽상욱 한국노총 금속노련 조직국장

첫째 아이 육아휴직을 포기했던 곽상욱 국장은 둘째 아이 육아휴직만큼은 꼭 챙기고 싶었다. 맞벌이 부부인 터라 그동안 아이의 육아를 부모님에게 맡겨왔지만, 부모님조차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휴직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파업사업장 때문에 2주 중에 하루도 서울을 못 가는 때가 많은데 언제 우리 아이의 온전한 6개월을 볼 수 있겠어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그 자체로 힐링이었죠.”

그는 둘째 아이가 6살 때 6개월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물론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은 있었지만, 1년을 다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곽상욱 국장이 육아휴직 가운데 손꼽았던 순간은 가족여행을 다녔던 것이다. 국내 어디라도 다녀오려면 1박 2일로는 부족하지만, 육아휴직 기간에는 한 사람만 휴가를 쓰면 2박 3일로 다녀올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150만 원으로 한도를 두는데, 외벌이 가족의 경우 생계유지가 힘들겠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육아휴직을 가지 말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현재 육아휴직 지원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육아휴직 지원뿐만 아니라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부부가 마음 놓고 맞벌이를 할 수 있도록 공공보육 영역 확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4.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고 느껴요
김준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

“아빠, 또 놀러오세요.” 출근하는 아빠를 두고 아이는 말한다. 박카스 CF 중 ‘딸의 인사’ 편에서 나오는 한 장면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와 함께 두세 시간 보내는 김준태 국장은 이 CF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4개월간 육아를 병행하면서 조직 내에서 역량강화를 위해 제공하는 유급연수휴가를 다녀왔다. 김준태 국장은 역량강화와 함께 육아를 병행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옛말만큼 육아를 하는 데 많은 고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첫 아이를 키우는 초보아빠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아서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하며, 부부가 팀워크를 형성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혼자 아이를 돌보면서 느낀 거지만, 집안일까지 책임질 여유가 없어요. 면도를 해야 하는데 전기면도기 돌아가는 소리에 아이가 잠에서 깰까봐 열흘씩 면도를 못 하기도 했어요. 하루는 배우자가 외출한 날이 있었는데, 저는 당연히 잘 돌볼 수 있다고 자신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고 아파트가 떠나가라 우는 거예요. 그건 정말 아빠가 할 수 없는 부분이더라고요.(하하) 배우자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왔죠.”

김준태 국장은 휴직이 유급이라는 점에서 육아 부담을 덜 수 있었다며, 배우자가 일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급으로 진행되는 휴가였다면 많이 고민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맞벌이 부부가 다수인 한국 사회에서 육아휴직제도 보완뿐만 아니라 보육교사 양성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육아를 통한 휴지기를 갖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도움이 됐다면서,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일과 가정이 양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정말 빨리 자라니까 그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많아요. 부모들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일과 가정이 양립했을 때 활동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