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강도 증가, 실적 압박 등 위험해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 지적
삼성전자서비스 “황망하고 비통한 심정···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
‘세탁기에서 전기가 느껴진다.’ 고장 접수를 받은 삼성전자서비스 가전수리노동자 윤승환(44) 씨는 지난 28일 오후1시 30분경 서울 양천구 고객 집을 찾았다. 세탁기가 놓인 베란다는 비좁았다. 전선을 빼고 작업해야 하는데 콘센트는 손에 잘 닿지 않았다. 노후된 건물이라 차단기를 내릴 수도 없었다. 혼자 세탁기를 밀면서 움직였다. 그러다 제품 뒤편 급수 밸브가 파손돼 물이 튀었다. 이때 그가 감전된 것으로 노동조합은 추정한다. 쓰러진 윤 씨를 발견한 고객이 119에 신고한 시각은 오후1시 54분. 전산에 업무 시작 시각을 등록한 지 13분 만이다. 윤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고 윤승환 씨가 소속된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은 서울 중구 금속노조 4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디지털양천센터 소속 외근 서비스 기사인 故윤승환 조합원이 고객의 집을 방문해 수리 업무를 하던 도중 감전돼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28일 발생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윤 씨의 사망 원인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노동환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가전제품 구매·사용이 급증하면서 고객의 수리 의뢰도 늘었는데, 인력은 오히려 줄어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내몰렸다는 설명이다.
금속노조는 “코로나로 인해 업무량은 늘었는데 확진자 센터 방문 등으로 업무 처리 가능 인력은 제한되고, 지난해부터 회사가 신규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수리 인력을 새로운 사업에 배치해 인력 부족 문제가 심한 상황이었다”며 “故윤승환 조합원을 비롯해 대부분 수리 노동자들은 20~30건 이상 미처리 건이 밀려 있는 상태”라고 했다.
윤 씨와 같은 센터 소속 김문석 삼성전자서비스서울지회 디지털양천센터분회 분회장은 “지난 4월부터 업무량이 폭증해 2~4일씩 처리가 늦어져 고객들의 독촉 전화가 계속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리 현장이 위험하니까 다음에 동료와 같이 오겠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사측의 실적 압박 문제도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회사는 메신저로 개인별 실적을 공유하고 다그쳤다. ‘신속방문’, ‘초도수리(첫 방문에 한번에 수리를 완료하는 것)’라는 이름으로 고객 집에 한 번 방문하면 무조건 한 번에 해결할 것을 압박했다”며 “또한 처리력 이벤트라는 명목으로 하루 최대 8건을 할 수 있는데 9건에 1만 원, 11건에 2만 원 상품권을 주며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비교했다”고 이야기했다.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안전보건조치가 미흡했단 비판도 나왔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윤 씨가 해야 했던 업무는 감전 위험이 높은 전기 작업이었지만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 작업 표준이나 안전 작업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회사는 수리 작업 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작업 절차를 휴대폰 동영상과 안내문 형태로 제공할 뿐, 작업별로 점검해야 할 안전 보건 조치 사항, 작업 방식 등을 명시한 안전 작업 표준은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감전 방지를 위한 절연장갑, 절연안전화를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윤종선 서울지부 삼성전자서비스서울지회 지회장은 “(회사가) 위험한 작업을 할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되는 기본 매뉴얼을 갖추고 교육했다면, 2명이 함께 작업했다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라며 “회사는 안전하게 하라면서도 빨리, 많이 처리하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선 서울지부 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대책을 마련해서 제대로 된 노동자들의 안전할 권리를 회사에 요구하겠다”며 “안 된다면 (금속노조에 조직된) 가전서비스노동자들을 모두 모아서라도 힘찬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고용노동부에 “회사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지 않도록 즉각 작업중지를 명령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2인 1조 작업 및 구조적인 대책, 전기 작업 시 안전 대책을 사업주가 즉각 실시하도록 지도·감독하라”고 촉구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직원이 불의의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회사도 황망하고 비통한 심정이다.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노동조합의 오늘(30일)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회사의 입장을 지금 밝히는 것은 오히려 고인, 특히 유족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책 수립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의견을 경청하고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디지털양천센터 직원분들은 어제, 오늘 작업 중지를 시켰다. 동료분들도 충격이 크셨기 때문에 사내 심리센터 심리상담사를 지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