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형틀목수 생활’이 궁금했던 서울공고 학생들
‘슬기로운 형틀목수 생활’이 궁금했던 서울공고 학생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10.01 20:01
  • 수정 2021.10.05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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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고 토목건축과, 파주건설기능학교 가다
건설 베테랑들에게 배운 ‘안전하게 일하기’

일반적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은 자기 전공에 맞춰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교육을 듣거나, 학교와 연계된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며 직업교육훈련을 받는다. 노동조합을 통한 직업교육훈련은 드물다. 그 드문 일이 서울공업고등학교 토목건축과 2학년 학생들에게 생겼다. 현장을 동행 취재로 담았다.

지난달 28일 서울공업고등학교 토목건축과 2학년 학생 19명이 파주건설기능학교에서 표준안전작업 교육을 받았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교과서 말고 직접 해본다는 기대

지난달 28일 서울공업고등학교 토목건축과 2학년 학생 19명이 건설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파주건설기능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의외의 버스행은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산하 (사)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지원센터, 전국건설노동조합이 특성화고인 서울공업고등학교와 직업교육훈련을 기획한 결과다.

이날 직업교육훈련은 크게 3가지로 예정돼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는 건설현장 안전에 관한 이론 교육을 진행했다. 오후 12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는 형틀과 철근 작업을 직접 해봤다. 이후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파주의 아파트 건설현장을 견학했다. 현장에 기반해 직접 몸으로 해보는 교육이었다. 인솔교사와 학생들이 가장 기대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인솔교사였던 김태우 서울공고 토목건축과 교사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맨날 글과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교사로서 기대된다”고 전했다. 버스 안에서 짝지어 앉은 학생들도 직접 경험해본다는 생각에 왁자지껄 대화를 나눴다. 정인서 학생은 “작업화도 준다고 하니 처음에는 흔히 말하는 노가다 하러 가는 줄 알고 마음이 약간 심란하기도 했는데, 직접 해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좋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서울공고 토목건축과 학생들의 기대는 적중했다. 오후 12시부터 2시 30분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교 교육에서 부족했던 실습 기회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어색하게 안전화를 신고, 안전벨트와 각반을 차고, 안전모의 턱끈을 조이고 실습할 채비를 했다. 베테랑 건설노동자들에게 형틀목수가, 철근공이 건설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따라했다. 톱으로 각목을 잘라보고, 망치로 못을 때렸다. 철근과 철근을 철사로 엮었다. 어색한 작업복처럼 실습 동작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니 서툴렀지만 관심을 가지고 너도 나도 장비를 손에 잡았다. 조윤서, 김채은 학생은 “교재로만 보다가 이렇게 큰 공간에서 직접 해보니, 책 속의 이야기가 많이 이해됐다”고 했다. 정인서 학생은 “학교에서 쉽게 해볼 수 없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며 “힘이 아니라 기술로 하는 일들이었다”며 망치를 잡았던 손을 만졌다.

꼭 필요한 이야기,
건설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하기

이날 교육의 큰 특징은 ‘표준안전작업’ 교육이다. ‘건설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하기’를 중심으로 모든 교육이 이뤄졌다. 건설 산업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히 어떻게 일할지 기술을 배우는 것만이 아닌 안전하게 일하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도 안전하게 일하기를 배우면서 만족했다. 학생들에게 취업 후 가장 우려하는 지점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의 대부분은 안전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만족할 만한 교육이었다.

표준안전작업 교육은 오전 10시 이론 교육으로 시작했다. ‘슬기로운 형틀목수 생활+’라는 교재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 유형에 대해서 배우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해서 배웠다. 교재는 산업안전보건공단 2021년 안전문화확산 공모사업의 지원과 건설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만들어졌다. 교재 개발에 참여한 전문가는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연구센터 센터장, 기성호‧함경식 건설안전기술사, 이명래‧박태휘 건설기능장 등이다.

교재 속 내용은 ▲건설현장 취업과정과 노동법 상식 ▲건축공사와 철근콘크리트시공의 이해 ▲철근콘크리트공사 재해예방대책 ▲철근콘크리트공사 공통 안전수칙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는 노동권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노동자가 건설현장 안전 관련 사항 논의에 참여할 수 있고, 작업 전에 유해위험 요소나 시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위험한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12시부터 시작한 실습에서도 안전은 강조됐다. 안전 장구 착용 방법부터 장비를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안전하게 움직이는 법도 배웠다. 예를 들어 철근 공정을 배울 때는 긴 철근이 사람을 칠 수 있으니 꼭 “철근 들어갑니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다거나, 철근을 밟고 넘어지지 않게 주위를 살피며 움직여야 한다는 실전적인 교육이었다.

홍창훈 학생은 “건설현장에 안전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생각보다 다칠 수 있는 경우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생각도 있었다. 정인서 학생은 “건설현장 생각하면 위험이 떠오르는데, 교육을 듣고 나니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전을 지키다보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정성민 학생은 “건설현장 안전이 자신만 안전에 신경 쓸 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안전에 함께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실습 시간에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안전하게 톱질을 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서울공고 토목건축과 학생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진로로써 건설노동의 매력,
안전하게 일하는 것부터 시작

토목건축학과 졸업 후 모두가 건설현장 기능공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진로가 있다. 서울공고 토목건축학과 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건축 공무원을 많이 한다. 건축 사무소, 측량 사무소에서도 일한다. 대학에 진학해 토목건축에 대해서 더 공부하기도 하고, 건설교육과에 들어가 토목건축과 교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교육 대상 선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건설산업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이다. 건축 공무원을 지망하는 이태권 학생은 “공무원이 돼도 직종 특성상 건설현장을 자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안전이 중요하고, 현장이 안전한지 살필 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특성화고 토목건축과 교사를 꿈꾸고 있는 홍창훈 학생은 “나중에 선생님이 되고 나서 학생들에게 토목건축에 대해 가르칠 때 안전을 추가해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성민 학생은 여러 가지 직업을 놓고 진로를 고민 중이다. 그중에서도 건설현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는 것도 알아보고 있었다. 정성민 학생은 “어머니한테도 말했는데, 건설현장은 위험하니 절대 거기서는 일하면 안 된다고 해서 걱정은 됐다”며 “그런데 안전하게 일할 교육을 받으니 좀 더 건설이라는 일에 빠져들었다. 건며들었다(‘건설에 스며들었다’의 준말)”고 했다. 결국 안전하게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학생들의 꿈을 지키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특성화고-노동조합 연계라는 좋은 시도

특성화고 학생들이 보통의 직업교육훈련 또는 실습을 통해 베테랑 노동자들로부터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배울 기회는 적다. 노동조합이 특성화고와 연결될 기회를 만든다면 노동조합이 보유한 베테랑 인력풀을 통해 좋은 교육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되면 전공과 관련 없는 잡일을 해서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제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이번 교육은 하루로 짧았지만 시스템으로 자리 잡히면 기존의 현장 실습 일수만큼 몇 개월 동안 길게 진행할 수도 있다. 특히 노동안전을 중요시하는 노동조합이 현장 실습을 맞게 된다면 사회적인 이슈인 특성화고 학생들의 안전하지 못한 실습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의 노동조합의 사회적 기능이기도 하다. 서울공고 토목건축학과 학생들과 건설노동자와의 만남은 아파트 건설현장 견학을 마지막 순서로 끝났다. 버스가 서울공고에 도착하고 각자의 꿈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채 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