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죽으면 안 되었을 수많은 목숨”
“절대 죽으면 안 되었을 수많은 목숨”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10.22 16:13
  • 수정 2021.10.22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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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안전 콘텐츠 공모전 글 부문 1위 수상자 음광석 씨 인터뷰
“이윤을 위한 불법 다단계하도급 문제가 제일 크다”

10월 20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가 “건설현장 그리고 당신, 안전합니까?” 대국민 안전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을 발표했다. 글 5편, 사진 5편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공모전은 9월 17일부터 10월 17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됐다. 공모 대상 작품은 글과 사진이었고, 공모는 조합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까지 열려 있었다. 건설노조는 공모전이 안전한 건설현장, 안전한 사회를 위한 문화적 밑거름이 되길 기대했다.

그 중 ‘김 씨 형님’이라는 작품으로 글 부문 1위를 차지한 음광석 조합원과 인터뷰했다. 인터뷰 당시 음광석 씨가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이어 몇 번의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음광석 씨의 ‘김 씨 형님’을 먼저 소개한다. (*창작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오탈자만 수정했다)

김 씨 형님

음광석

건설현장에서 형틀 목수로 일하는 나는 안전교육을 받거나
주변에서 종종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내 나이 스물 후반이던 이십여 년 전의 어느 겨울
나는 건설현장에서 철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현장은 지하의 대형 배관설비를 철거하고 새롭게 설비를 하는 현장이었는데
온갖 먼지와 폐기물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고
배관들을 철거하다 보면 이내 온몸에 그을음이 묻어나왔다.

현장소장은 배출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근처의 인력사무소에서 작업자들을 부르곤 했는데
현장은 먼지와 그을음이 심한 터라 매번 작업자들이 바뀌었고
그 작업자 중의 한 사람이 김 씨 형님이었다.

김 씨 형님은 작은 키에 커다란 등산 배낭을 메고 현장에 온 터라
출근할 때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 띄었는데

그이가 현장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커다란 등산 배낭에는 작업복 말고도

누가 쓰다 버렸을 법한 낡은 안전모와
아이들 물놀이 때 쓰는 물안경
그리고 큰 공장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방독마스크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해 보였다.

심지어는 밧줄, 빨랫줄까지 있었으니
왜소한 체격에 앞니 한두 개 부러져 볼품없던 그 형님의 첫인상은
일하러 온 사람인지 고물수집 하러 온 사람인지….

심지어는 하루 벌어 며칠을 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인지
첫인상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던 것 같다.

함께 온 인부들도 그런 그 형님의 행색과 가방에 온갖 잡동사니를 보고는
다들 수군댔고 “약간 모자란 사람” 정도로 바라보는 눈치였다.

현장소장도 처음에는 못마땅했는지 그런 그 형님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나
일손이 부족한 터라 아무 말은 없었고
수두룩하게 쌓인 폐기물을 처리해야 했으므로 이내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종종 작업하면서 작업자들 사이에서 일하는 김 씨 형님을 지켜보곤 했는데
그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말 없이 제법 성실하게 폐기물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또 다음날….
매번 다른 인부들은 한 번 일하고는 현장이 지저분해서 일 못 하겠다며 우리 현장을 오지 않았는데
김 씨 형님은 매일 아침 커다란 가방을 메고 현장에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을 지켜보던 현장소장도 첫인상과는 달리
지저분하고 일손 부족한 현장에 매번 나와 일해주는 김 씨 형님이 맘에 들었는지
앞으로도 현장 마무리될 때까지 잘 부탁한다며 하루 나오고 그만두는 다른 인부들보다 일당도 더 올려주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현장소장도 궁금했는지 점심을 먹으면서 김 씨 형님의 커다란 가방에 관해 물었다.

매번 그 커다란 등산 배낭에 안전모는 그렇다 쳐도
밧줄이며 빨랫줄이며 물안경이며
조선소에서나 볼법한 방독마스크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

김 씨 형님이 소장님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은 고아로 자라서 힘들게 컸기에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
자신은 어떤 일을 하든 무조건 살아야 한다면서,

땅이 꺼져도 살아야 하고
불이 나도 살아야 하고
물난리가 나도 살아야 한다고….
나는 아이들 클 때까지 울타리가 되어야 해서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이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 잊힐 만도 한 김 씨 형님이지만….
지금도 잊힐 만하면 김 씨 형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건

공교롭게도 그날 김 씨 형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식당 텔레비전에서 속보로 흘러나오던 “끔찍한 사고”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의 식당 텔레비전에서는
대구 지하철에서 커다란 불이 났다는 뉴스가 속보로 흘러나왔고….
김 씨 형님의 말처럼
“절대 죽으면 안 되었을” 수많은 목숨이 안타깝게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김 씨 형님과 잡동사니 가득했던 가방을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떠올리곤 한다.

나 역시 김 씨 형님처럼 땅이 꺼져도, 불이 나도 물난리가 나도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말이다.

지난 5월 12일 오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현수막 앞에는 건설노동자의 상징 헬멧과 보호 신발 더미가 놓여있고, 그 위에 추모를 위해 국화꽃을 울렸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obrplus.co.kr
2020년 5월 12일 오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현수막 앞에는 건설노동자의 상징 헬멧과 보호 신발 더미가 놓여있고, 그 위에 추모를 위해 국화꽃을 올려졌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obrplus.co.kr

[인터뷰]

- 소개 먼저 부탁한다.

올해 49세 건설현장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다. 2015년 우연한 기회로 형틀목수를 하던 이웃에게 건설노조를 소개받아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20일간의 형틀목공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건설안전기사와 건축기사를 취득하고 작년 가을부터 약 1년간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하기도 했고 지금은 다시 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다. 안전관리 쪽은 관심이 있어서 계속 공부 중이며 내년 건설안전기술사와 산업안전지도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 공모전 글 부문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현장에서 일하던 중 코로나19 확진으로 시설 격리 중이고 나 역시 밀접 접촉자로 분류됐다. 보건소 관계자들에게 밀접 접촉자는 맞으나 건설현장 형틀목수의 작업공정을 설명하고 옥외에서 마스크 착용 및 거리 두기 등을 준수했음을 근거로 자가격리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며 심란하던 중 마침 글이 당선됐다고 소식을 들었다.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심사하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같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수도 있었던 김 씨 형님은 어떤 존재인가?

함께 일주일 정도 일했던 분이다. 글에 썼듯이 그이와 함께 일하면서 처음에는 노숙자인가 싶을 정도로 편견을 가졌는데, 지갑에 어린 두 딸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다치는 날엔 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찡해서 눈물이 났다. 김 씨 형님은 ‘숭고한 아버지’ 정도로 기억된다. 덧붙이자면 글에는 ‘울타리’ 정도로 썼지만 원래 글을 쓰면서 ‘방파제’가 더 적절할 것 같아 두 단어 사이에서 반나절은 고민했다. 그래도 전체 글에 맞는 톤은 ‘울타리’였다고 봤다.

- 김 씨 형님을 다시 만난다면 건네고 싶은 첫 마디는 무엇인가?

아이들을 잘 키우셨는지 묻고 싶다. 아마 잘 컸을 것 같다.

- 김 씨 형님은 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큰 가방과 그 안의 물건들은 김 씨 형님 그 자체이자, 그의 삶의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큰 가방이 주어진다면 무얼 넣고 싶은가?

김 씨 형님의 큰 가방에는 심지어 어디서 주워왔는지 소형 소화기도 있었다. 요즘은 김 씨 형님처럼 큰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안전모, 안전화, 안전대, 귀마개, 보안경 등 김 씨 형님이 부득이하게 두 딸의 행복을 위해 챙겨야 했던 것들은 현장에서 지급하는 곳도 있다. 김 씨 형님의 큰 가방은 20여 년 전 열악했던 건설현장의 모습이라 생각이 든다. 내 연장가방에는 소음차단용 귀마개, 보안경 두 개, 반창고 정도 들고 다닌다.

- 작품에서 보면 공교롭게도 김 씨 형님에게 이야기를 듣던 그날 TV에서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뉴스가 나왔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사회에서 최근까지 일어났던 많은 사회적 참사들이 겹쳐 보인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세월호 참사,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광주 학동 철거 현장 참사 등. 우리 사회에는 왜 사회적 참사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보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중시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건설기술진흥법 등 법률로 안전을 강조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 예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참사가 규정을 따르지 않고, 규정에 맞게 하기 위해 비용을 쓸 생각도 없어 생긴다. 다단계하도급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광주 학동 철거 현장 참사 이후 경찰 발표 보면 역시도 이윤을 위한 불법 다단계하도급 문제가 제일 컸다.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며칠 전에는 높이 10층 정도의 중소규모 건물 외벽을 노동자가 청소하는 모습을 봤다. 보조 로프에 안전대 없이 외줄에 달비계 하나에 의지해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 한 적이 있다.

-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보는가?

질문이 너무 광범위 하다. ‘자본가 정권 타도하고 노동해방 쟁취하면 됩니다’라고 쓸 뻔 했다. 안전관리자 인터넷 카페를 보면 안전관리자들이 서로에게 신호수 조끼, 안전교육장 에어컨 설치가 안전관리비로 가능한지 묻는다. 이처럼 복잡한 법체계라든지. 안전관리자의 지위와 처우 문제라든지. 공사기간 맞추려면 무리한 공사 진행을 해야 한다든지. 작업자들 교육시간은 서류상으로 존재하고 규정에 맞는 교육은 안 한다든지. 보호구 지급은 안 한다든지. 뭐 여튼 책 한 권 써도 모자를 만큼 시급한 게 많다.

- 일하면서 어떨 때 재밌고 보람이 있나? 반면 보람이 없거나 슬플 땐 언제인가?

형틀목수일은 전반적으로 단순반복작업이 아니라 건축물을 짓는 과정이라 바닥 시공하면 기둥 시공하고 기둥 끝나면 보 설치하고 위험하긴 해도 지루하지 않은 공정들이다. 그래서 8년 정도 일했던 것 같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일하면 즐겁다. 보람이 없는 경우는 형틀목수다 보니 거푸집 시공 후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시공 실수이거나 거푸집 문제로 콘크리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거푸집이 파손되는 경우다. 산더미 같은 콘크리트들이 물난리 난 듯 쌓인다. 일하면서 슬플 때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인지 몰라도 일하는 동안 제 주변 동료들의 대형 사고는 없었다.

-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음 씨 형님’으로 기억에 남을 텐데, ‘음 씨 형님’이라고 했을 때 일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저 술 먹을 때 ‘서로 불러 줄 정도의 형님’ 정도면 좋겠다. 그 술이 공짜면 더 좋다.

- 글의 마지막 문장, “나 역시 김 씨 형님처럼 땅이 꺼져도, 불이 나도 물난리가 나도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말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건설현장에 수많은 '김 씨 형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인 것도 같다. 건설현장에 수많은 '김 씨 형님'들에게 또 다른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래 살려면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이 험한 세상 누가 안 챙겨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오래듣고 싶거든 귀에 귀마개 번거로워도 끼고, 사랑하는 사람 얼굴 오래 보고 싶거든 보안경 꼭 써라. 뭐 이 정도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해달라.

응모 마감 2-3일 앞두고 조합SNS를 통해 건설노조 콘텐츠 공모전을 접했다. 마침 일 끝나고 술 한 잔 먹자던 ‘장 씨 형님’이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하는 바람에 집에서 할 일도 마땅찮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썼던 내용은 ‘건설현장 안전관리’에 대한 글이었다. 현재 건설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건설노동자들이 관리자를 포함 대부분 비정규직 및 일용직이라는 거다. 그래서 안전관리의 경우도 사망이나 대형 사고를 겨우 방지할 정도의 최소한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 현장에서만 안 죽고 사고 안 나는’ 정도다.

그러니 무거운 것을 들고 다녀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 소음노출로 인한 청력손상, 고질적인 분진 문제로 인한 호흡기질환, 먼지에 노출되는데 씻을 곳이 없으니 결막염 같은 안질환. 이런 건 애초에 관리 대상이 아니다. 그런 것 관련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원고지 열 장 분량은커녕 책 한 권 써도 모자를 것 같아 글쓰기를 멈췄다. 그러다 잠시 생각 중에 현장에서 소음이 심해 귀마개를 하고 일하던 중 일하는 동료가 “너는 왜 유난스럽게 귀마개 하고 일하냐”고 핀잔을 주길래 귀마개 쓰고 일하는 내가 정상이고 안 쓰고 일하는 네가 비정상이라고 한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문득 오래 전 김 씨 형님 생각이 나서 쓰던 글 다 접고 김 씨 형님 이야기를 쓰게 됐다.

“이 험한 세상 누가 안 챙겨준다”라는 음광석 씨의 말 한 마디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보였다. 이윤만을 추구해 생겨버린 건설현장의 다단계하도급처럼 구조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산업재해는 계속 일어나고, 구조 속에서 개인들은 스스로를 알아서 챙길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살아간다는 말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