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라면 갑자기 월급 삭감당한 것·· 택배기사 생계도 고려해야”
“월급쟁이라면 갑자기 월급 삭감당한 것·· 택배기사 생계도 고려해야”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0.25 09:16
  • 수정 2021.10.25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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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집하 물량으로 유족 생계 보장해야”
[인터뷰] CJ대한통운 앞 단식농성 14일차 한송이 택배노조 김포지회 조합원

지난 8월 택배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명시한 유서를 남긴 김포 장기대리점주의 사망 이후, CJ대한통운 측은 유족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장기대리점 집하처를 오는 11월부터 고인의 부인에게 이관시키겠다고 밝혔다. 장기대리점 택배기사들은 사전 논의도 없이 집하 물량을 빼앗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유족의 생계를 보장하는 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택배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후 CJ대한통운 김포지사에 대화를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한 한송이(36) 김포지회 조합원은 원청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12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관련기사 : 김포 대리점 사태, 유족-택배기사 간 갈등으로 커지나?)

25일 기준 단식농성 14일차를 맞은 한송이 조합원을 21일 저녁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앞 농성 차량에서 만났다. 한송이 조합원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족에게 생계를 지원해준다는 데는 아무 불만이 없다. 다만 택배기사의 생계도 고려해 달라는 것이고, 통보식으로 택배기사의 물량을 뺏어가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단식농성 3일차를 맞은 한송이 택배노조 김포지회 조합원이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앞에서 ‘집화거리처 강탈! 택배노동자 생존권 위협하는 CJ대한통운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 택배노조
지난 14일 단식농성 3일차를 맞은 한송이 택배노조 김포지회 조합원이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앞에서 ‘집화거리처 강탈! 택배노동자 생존권 위협하는 CJ대한통운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 택배노조

“택배기사의 생계도 고려해 달라는 것”

- 지난 12일, CJ대한통운 앞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전해주셨다. 처음엔 혼자라서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마음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CJ대한통운 측에서 뭘 해결해 주지 않더라도 ‘왜 이렇게 나왔냐’, ‘힘들지 않으시냐’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없는 사람 취급하더라. 우리는 CJ대한통운의 옷을 입고, CJ대한통운 마크로 도색한 차를 타고, 고객의 전화에 ‘CJ대한통운 기사입니다’라고 답하는데 택배기사의 존재가 회사엔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싶었다. 지난해부터 택배기사 21명이 과로로 숨질 땐 유족 생계 보장 이야기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목숨은 길바닥 돌멩이만도 못한 것 같다. 

- 기억에 남는 방문이 있었나? 

모두 기억에 남는다. 어떤 분은 농성장에 꽃다발을 보내주셨다. 한 서울시민은 핫팩 한 상자를 보내줬다. 직접 오신 분들은 다들 착잡한 심정으로 이야기 들어주셨다.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마음이 아팠다. 

- 가족은 어떤가?

부부기사라서 남편이 두 명분 일을 혼자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도 쓰고 있지만 혼자 소화하기엔 버거울 거다. 세 아이는 15살, 11살, 6살인데, 남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첫째가 막내를 돌봐주고 있다. 친정엄마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집에 오셔서 반찬 등을 챙겨주신다. 아이들과 통화는 자주 한다. 첫째는 엄마가 왜 농성을 하는지 다 이해해주지만 막내는 6살밖에 안 되다 보니 그냥 보고 싶다고, 엄마 아직도 일 안 끝났냐고 묻는다. 지금은 집에 돌아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 CJ대한통운 앞에서 단식농성을 결정한 이유는? 

CJ 대한통운의 갑작스러운 집하처 이관 통보 때문이다. 11월부터 기존 장기대리점 집하처를 모두 고인의 부인에게 이관시키겠다는 건데 사전에 우리와 상의 한 번 없었다. 이건 갑자기 월급쟁이에게 월급을 깎겠다는 것과 같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조합원은 월 250만 원 정도 수입이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집하처가 사라질 수 있다면 다음은 배송지가 될 수도 있단 불안이 조합원들 사이에 퍼졌다. 우리는 유족에게 생계를 지원해준다는 데는 아무 불만이 없다. 다만 택배기사의 생계도 고려해 달라는 것이고, 이렇게 통보식으로 택배기사의 물량을 뺏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 조합원님은 집하 물량이 거의 없어 피해가 적지 않나? 

나는 개인이지만 개인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다. 날 개인으로만 볼 거면 고인의 사망 이후 택배노조를 묶어서 비난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조합원은 당뇨를 앓고 있어 단식농성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살인자로만 몰아가고, 조합원들이 다들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이 와중에 가족같이 지냈던 동료가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고 다음 달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보는 내 마음이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환경운동가들이 당장 자기 삶에 직접적인 피해가 와서, 국회의원들이 생계에 문제가 생겨서 단식 투쟁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우린 힘 없는 사람끼리 이렇게 서로 돕기 위해 뭉친 거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억울하니까, 목숨을 내놓고 호소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더라. 내가 여기서 죽어갈 테니 우리의 마지막 호소를 알아달라는 심정이다. 

- 집화처의 계약 당사자는 고인이고, 집화 물량은 사실상 고인의 유산이기에 유족에게 넘겨주는 것이 상식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하처는 계약만 한다고 유지되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집하처 관리는 택배기사들이 다 한다. 업체에 필요한 송장을 가져다주는 것부터 업체와 소통, 서비스로 들어가는 테이프 값까지 택배기사들이 부담한다. 몇 년간 택배기사들의 노력으로 유지되던 업체들이었다. 어떤 업체는 점장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곳도 있다. 택배기사들이 연결해서 계약된 업체도 있다. 또한 고인도 대부분의 거래처를 넘겨받은 것이다. 이런 맥락이 있는데 택배기사들의 권리는 하나도 보장받지 못하고 CJ대한통운이 집하처를 마음대로 이관시키면 안 된다고 본다. 생활물류법에 따른 표준계약서에도 배송, 집하 구역은 당사자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 어떻게 해결됐으면 하나? 

CJ대한통운 김포지사의 집하처가 많다. 월 2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포지사의 물량으로 유족에게 수입을 보장해줘야 한다. 본사는 물량만 받으면 이익이 남는 건 똑같다. 혹은 유족이 장기대리점의 집하처를 꼭 원하신다면 택배기사의 생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사측이 제시해야 한다. CJ대한통운은 유족의 생계 보장 방안을 마련했다는데, 제대로 말하면 CJ대한통운이 보장해준 것이 아니라 택배기사들이 집하처를 이관당해서 나온 결과다. 

(왼쪽 위 시계방향) 한송이 조합원이 단식농성하는 차량에 방문자들이 응원의 문구를 남겼다, 방문 문구 남기는 공간이 부족해 포스트잇으로 농성 차량이 채워졌다, 단식농성 4일차에는 비가 내렸다, 단식농성 현장에 배달된 꽃다발 ⓒ 택배노조
(왼쪽 위 시계방향) 한송이 조합원이 단식농성하는 차량에 방문자들이 응원의 문구를 남겼다, 방문 문구 남기는 공간이 부족해 포스트잇으로 농성 차량이 채워졌다, 단식농성 4일차에는 비가 내렸다, 단식농성 현장에 배달된 꽃다발 ⓒ 택배노조

“사실 아닌 기사 쏟아져···
유족한테 사과할 기회도 박탈”

- 집하처 이관 문제가 일어나기 전, 8월 말 고인의 사망 이후 장기대리점 조합원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일하는 곳에서 일은 해야 하니까 서로 다독이며 지냈지만 속은 썩어들어갔다. 죽겠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 조합원을 잡아 빼서 말린 적도 있다. 

우리가 고인에게 화가 나서 단체 채팅방에 비아냥거린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만 비판받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집단으로 여론몰이를 당했다. 택배기사들이 수수료 욕심을 내서 그랬다, 고인은 정직하고 성실한 분인데 택배기사들이 괴롭혔다, 폭행했다, 집 앞까지 찾아가서 협박했다는 등 사실이 아닌 기사들이 쏟아졌다. 

댓글을 보면 조합원들 가족을 끌어내서 총살시켜야 된다, 택배기사들도 다 아파트에서 던져야 된다는 글이 많았다. 심지어 SNS로 찾아와서 자식들 어느 학교 다니냐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고인이 유서에 이름을 적은 조합원 중엔 단체 채팅방에서 말을 한마디도 안 한 조합원들도 있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조합원들의 욕설은 대부분 고인이 포함된 단체 채팅방이 아니라 조합원들끼리 모여 있던 단체 채팅방에서 나온 말들이다. 택배기사들이 업무 방해를 한 적도 없다. 유족이 형사 고소한 대상도 업무 방해가 아닌 단체 채팅방에서 조합원들이 말한 내용이 전부다. 

- 택배노조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뭔가? 

지난 4월에 가입했고 5월 1일에 김포지회가 창립됐다. 우리는 3개월밖에 안 된 지회다. 쟁의권도 없는 지회가 뭘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고인이 갑질, 비리 등으로 택배기사들을 많이 힘들게 해서 뭉치게 됐다. 처음엔 CJ대한통운 원청에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김포지사에서 ‘알았다, 알았다’ 하면서 조사도 안 하고 점장에게 ‘똑바로 해’ 이 정도였다. 그리고 정부에서 택배기사 노동환경 조사를 할 때도 말했다. 정부는 조사관을 보내주겠다더니 조사관이 오기는커녕 오히려 김포지사에서 ‘누가 신고했냐’는 식으로 따졌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봤지만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 봐야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거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우리를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보면 말이 집하처지 어떤 사람은 갑자기 월급을 반 이상 삭감당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는 또 어떻게 될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들의 월수입이 이미 많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 수입은 우리가 땀 흘려 노동해서 받은 정당한 대가다. 배송 한 건, 한 건 뛰어다니면서 받은 돈이다. 또한 택배기사가 받은 돈만큼 점장, 원청은 더 가져간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지만, 우린 여론몰이로 인해 유족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안 한 일을 했다고 할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