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급여 반복수급? “그만큼 노동시장에서 취약하다는 뜻”
구직급여 반복수급? “그만큼 노동시장에서 취약하다는 뜻”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11.18 20:10
  • 수정 2021.11.18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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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민단체, 정부의 ‘구직급여 반복 수급 제한’ 법안 규탄
정부의 고용보험기금 재정 안전성 방향...“고용보험제도 취지에 어긋나”

“2016년부터 실업급여를 총 4번 받았다. 1년 남짓 근무하고 3개월 혹은 6개월의 실업기간을 거치며 현장으로 돌아가길 반복하고 있다. 우리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IMF 이전에 건설사 직원이었다. IMF 이후 건설사에서 내몰리며 타워크레인 임대사에서 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계약서에는 ‘현장이 종료되면 계약이 만료 된다’라고 적혀있다. 우리가 쓴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해서 퇴사하지 않는다. 입사할 때부터 퇴사 날이 정해져있다. 1년 남짓 일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게 죄라면, 근로계약서에 퇴사 날을 정한 업체들 잘못이고 그걸 방관하는 정부의 잘못이다.”

소생희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조직부장이 18일 열린 ‘고용보험 구직급여 반복수급 제한 규탄 및 발의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밝힌 구직급여 반복 수급 배경이다.

정부가 구직급여(실업급여) 반복 수급 시 수급액을 최대 절반으로 줄이고 수급일을 늦추는 법안을 발의하자, '코로나19로 노동자들이 단기, 임시 고용으로 내몰리는 시기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는커녕 노동취약계층의 불안을 키우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재난시기 고용보험 보장성 약화시키는 정부를 규탄한다! 고용보험 구직급여 반복수급 제한 규탄 및 발의 철회 촉구' 긴급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재난시기 고용보험 보장성 약화시키는 정부를 규탄한다! 고용보험 구직급여 반복수급 제한 규탄 및 발의 철회 촉구' 긴급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앞서 정부는 고용보험 구직급여 반복 수급에 제한 요건을 두는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3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5년 동안 3회 이상 구직급여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 ▲세 번째 구직급여 수급부터 최대 50%까지 감액률을 적용하고 ▲대기기간을 기존 7일에서 최대 4주로 연장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돼서 시행되면, 5년 동안 3회 이상 구직급여를 받은 사람의 구직급여일액은 3회 차에 10%, 4회 차에 25%, 5회 차에 40%, 6회 이상에 50% 줄어든다. 구직급여 총 수급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대기기간은 3회 수급 시 2주, 4회 이상 4주로 늘어나서 수급자는 구직급여를 더 늦게 받게 된다.
*구직급여 총 수급액 = 구직급여일액(기초일액 X 60%) X 소정급여일수. ‘기초일액’은 임금을 일(日) 단위로 산정한 일급을 뜻함

법안을 발의한 취지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구직급여 수습 기간을 휴가 등으로 인식, 적극적 구직 활동 없이 취미 활동을 하는 행태"와 "일부만 구직급여를 과다 수령하는 형평성 문제를 개선"하여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시민단체는 18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노동취약계층의 생계가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구직급여 반복수급을 노동자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면서 고용보험의 보장성을 약화하려는 것"이라며 "고용과 경제가 위기일 때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고용보험제도 취지에 어긋난다"고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주노총, 알바노조, 전국여성노동조합,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노총 등이 주최했다.

김택훈 선원노련 수산정책본부장은 “(어선원 노동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선어업이 가지는 산업구조의 특성으로 인하여 강제적으로 실업을 당한다”며 “(어선원 등) 노동환경이 취약한 직종에 대해서는 확대 및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선원들은 어군 형성 시기와 해 역 특성, 그리고 정부가 시행하는 수산자원 보호를 위한 금어기 및 휴어기 등으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용구조에 놓여있다.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위원회 위원인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정부의 법안을 두고 ‘잘못된 고용보험기금 재정 확보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고용보험기금 재정 악화를 인정한 노동계가 내년 고용보험요율 0.2% 포인트 인상에 합의했다. 그런데도 부정수급방지와 재정 확보를 이유로 반복 수급자의 구직급여를 삭감하고 대기기간을 늘려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박기영 사무처장은 “툭하면 계약종료에, 해고에, 권고사직이 만연한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재정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정부가 이번 발의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참여 중단” 등의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단기간에 반복수급을 하는 것은 그만큼 노동시장에서 더욱 취약하다는 뜻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이만큼 버틸 수 있던 것은 고용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용 안전망을 더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고용보험요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고용보험위원회 위원인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실업급여를 받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면,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도 해고당해서 실업급여를 받으라”며 “법안 발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주최 단체들은 국회에 고용보험 법안 입법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