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장벽 넘어도 ·첩·첩·산·중·
관세장벽 넘어도 ·첩·첩·산·중·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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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장 넘보지 마라

비관세 장벽보다 ‘쎈’ 민간 장벽

 

현재 진행 중인 FTA 협상은 한국과 일본의 정부ㆍ업계ㆍ학계 대표로 구성된 한일 FTA 공동연구회의 연구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
한일 FTA 공동연구회는 이 보고서를 통해 ‘포괄적’ FTA의 진행을 건의하고 있다. 한일 FTA가 관세철폐 뿐 아니라 비관세조치, 투자, 서비스 및 경제협력 전반을 포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일본에 비해 관세 철폐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의 비관세 장벽 제거를 통한 일본시장 진출 활성화 및 기술이전 증대 등 장기적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은 비관세장벽(NTMs) 철폐 위원회를 설치하고 비관세 장벽 제거에 관해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될수록 일본의 비관세 장벽은 정부의 협상이나 규제로 허물기 어렵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재 수입쿼터 등 정부 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관세 장벽에 관한 논의는 농산물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규격인증 등 민간기관의 규제, 해당국의 기업문화와 상관행 등 규정 자체가 애매하고 협상 대상이 되기 힘든 민간의 비관세 장벽이다.

 

KS 가지고 일본 진출 생각 말라?
대표적인 민간의 비관세 장벽으로는 규격 및 품질인증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공업표준 KS는 일본에서는 거의 유통이 되지 않는 반면, 일본공업표준 JIS는 우리나라에서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기업이 일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JIS를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JIS는 약 10여 종의 인증마크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취득절차가 일본 내에서도 까다롭다. 품목당 평균 410만원 가량의 인증비용에 협회가입비, 실험비 등의 비용과 긴 심사 기간은 국내기업의 추가 부담요인이다.

 

일본의 까다로운 품질인증은 공업부문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적용된다. 일본 건설업체의 경우 국제 품질인증인 ISO인증을 획득한 자재물품에 대해서도 일본 자체의 품질인정을 다시 요구한다.

 

주일기업인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미 “한국에서 ISO를 획득하고 일본에 진출한 건설자재 업체들이 일본 내 공공공사 입찰에서 번번이 밀려난다”며 “일본에서는 국제표준조차도 일본표준을 우선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건설자재의 경우도 일본 표준을 획득하려면 신규신청 50만엔(약 500만원), 변경신청 10만~40만엔 등 비용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양국은 FTA 협상 때 우리나라와 한국표준공업규격(KS) 일본공업규격(JIS)을 서로 인정해 주는 ‘상호인증제’의 도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일본은 협정체결을 미루고 있다.

 

이에 관해 한국표준협회의 한 관계자는 “FTA가 체결된 나라들 중 ISO를 공동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있지만 각국의 공업 표준을 상호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며 “정부가 상호인정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보이지 않는 ‘철의 장벽’, 상관행
표준 인증제도의 경우 그나마 각국 표준협회 등 민간 기구가 있고 관련비용, 심사기간과 절차 등 가시적인 장벽이기 때문에 논의나 개선의 여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독특한 비즈니스환경은 정부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가시적 협상 대상이 없어서 개선이 더욱 힘들다.

 

특히 일본 모기업-계열기업-유통기업 간의 수직적 계열구조는 뿌리 깊은 기업환경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또 국경을 통과한다고 해도 일본시장의 복잡한 유통체계를 고려한다면 양국 간의 시장 개방이 우리 기업의 일본 진출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외에도 부품·소재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관련기업을 참여시키는 장기거래 관행, 일본인의 뿌리 깊은 자국품 선호 경향 등도 우리 기업의 일본 진출에 큰 장벽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관행 차원의 비관세장벽은 가시적 측정지표가 없고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기업자율로 정부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본의 배타적 거래관행과 수직계열 구조는 민간의 ‘철의 장벽’으로 불린다. 1989년 대일 무역적자로 허덕이던 미국이 SII(미일구조협의)를 통해 일본 시장의 폐쇄성을 극복해 보려고 했으나 계열 및 배타적 거래관행 철회 부문에서는 실익을 거의 거두지 못했다.

한일경상학회와 일본 동아시아 경제경영학회가 지난 8월 공동으로 개최한 ‘한·일 FTA와 산업경쟁력’에 관한 학술대회에서도 우리측 발표자 대부분은 일본의 비관세 장벽 철폐를 핵심 이슈로 제기하며 한국이 FTA에 따른 이익을 일본과 공유하려면 자유로운 교역을 가로막는 일본의 ▶수입 쿼터(수량 제한) ▶까다로운 통관 절차 ▶계열구조로 엮인 구매 관행 ▶복잡하고 폐쇄적인 유통구조 등과 같은 비관세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오타 마코토(太田誠) 동북아·러시아 그룹장은 “민간기업의 자율적 행동이나 비즈니스 관행에 정부가 손을 대거나 계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비관세 장벽에 대해 체계적 연구와 사례수집조차 없는 실정이다.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정인교 교수는 “비관세 장벽이 문제라는 막연한 인식만 있을 뿐 사례수집과 연구작업은 거의 없다”면서 “대기업의 경우 로비 등을 통해 이미 비관세 장벽에 대한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굳이 사례를 공개하려 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경우 비관세 장벽을 체계적으로 조사ㆍ연구할 여력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종원산지 규정 논란
한일 FTA 공동연구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양국 연구자들은 원산지 규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를 벌였다. 원산지 규정은 FTA 체결국가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 대한 관세를 유지해 차별적 효과를 누리기 위한 규정으로 모든 자유무역 협정의 규정 대상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 수입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특히 우리 기업이 수입하는 일본 부품의 관세가 철폐되면 부품의 국산화 노력보다 일본 부품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 일본은 고부가가치 부품생산으로, 한국은 단순조립으로 분업구조가 특화될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원산지 규정의 또 다른 변수는 규정의 기준이다. 현재 양국 사이에  완제품 생산국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실제로 부가가치가 창출된 곳으로 할 것인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신대학교 국제학부 송주명교수는 “양국의 논의가 최종 완제품 생산국을 원산지로 규정하자는 쪽으로 기울면 파급효과가 상당하다”고 경고한다.

 

일본이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저임금의 노동력을 활용해 생산된 자국제품을 역수입해 일본 내에서 조립가공 한 후 한국으로 판매할 경우 최종원산지 규정에 따라 일본생산품이 되므로 관세 없이 한국에 들어와 가격경쟁력이 한층 높아진다는 것이 송교수의 지적이다.

 

기술보호, 총성 없는 전쟁
지적재산권 문제도 양국의 협상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되는 항목이다. 지난 4차 협상 시 일본지적재산권 관련 협정문 초안을 만들어서 제시했는데 이 협정문은 ▶지적재산권을 특허, 실용신안, 저작권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확대 ▶보호를 실행하기 위해 민·형사상 소송과 형사처벌 등 강제 조치 ▶ 지적재산권 침해 제품의 자국 통관 금지 등 이례적으로 강력한 수준의 보호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정성춘 박사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모방품 생산국가로 경계하면서 아예 한일 FTA를 계기로 한국의 기술모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2002년 들어 강화된 일본의 지적재산권 보호 전략과 한일 FTA는 기술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2002년 일본 특허청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모방품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제품 모방품 제조에서 18%로 중국에 이어 2위를, 모방품 유통에 있어서는 12%로 4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기술 침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2년 ‘지적재산입국(立國)’을 국정과제로 선언하고 업계와 공동으로 지적 재산권 침해 사례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지적재산 기본법’을 공포했다. 이어 2003년에는 내각부 산하에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하고 올해 5월 ‘지적재산전략 추진 계획 2004’를 공표하는 등 ‘기술력 보호 전쟁’을 선포했다. 국내 업계에서는 일본의 지적재산권 보호 움직임이 기술경쟁 심화에 대한 대비책 외에도 FTA 체결 때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비관세 장벽 사례

식품용기 인증기관의 배타성
일본에서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의 포장 용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폴리올레핀 등 위생협의회(JHOSPA)에 가입해 위생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JHOSPA는 위생인증 대상을 협의회 회원사로 한정하고 있으며 협의회 가입 시 기존 회원사의 추천을 요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기업의 인증은 형식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의 기존 회원사는 한국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데 경쟁사의 추천을 요구하는 것은 폐쇄적이고 불공정한 관행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입차 인증제도의 불합리성
자동차 인증제도 중 수입차 특별취급신고(PHP)는 연간 2천 대 이하의 소량 수입 외국 자동차의 인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특혜수속이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아직 소량 (2004년 7월 기준 △현대차 1400대 △GM대우 80대 △쌍용차 13대 등 총 1493대)이어서 PHP 인증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 제도는 수입물량이 300대 이하의 경우는 누계기준으로 50대마다 1대씩, 300대를 넘는 경우는 100대마다 1대씩 신차검사 및 배기가스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110대를 수출하는 업체는 50대당 1대의 기준을 적용받아 3대를 검사받도록 되어 있어 인증제도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높다. 특히 1대당 최대 5천 달러에 달하는 검사비용은 수출업체에 큰 부담이다.

 

발전설비 경쟁입찰에서 외국기업 참여 배제
일본은 발전설비 입찰에서 사전 등록업체에 한해 지명경쟁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 또 등록기준으로 일본 내 공급실적만 인정하고 해외 공급실적은 인정하지 않아 일본 내 공급실적이 없는 외국기업은 사실상 진입이 불가능하다.

 

또 대기업의 입찰 때 제안가를 밀봉하지 않고 외부에 표기함으로써 제안가의 외부 유출가능이 높다. 여기에 내부 검토만을 거쳐 낙찰업체를 결정하면서도 최종 낙찰가를 공개하지 않거나 선별적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있어 불투명한 입찰 관행의 대표격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