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스티커’로 본 노동조합의 소통
‘텔레그램 스티커’로 본 노동조합의 소통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3.07 13:23
  • 수정 2022.03.07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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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윤활유부터 홍보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

“노동조합의 텔레그램 스티커* 기사 아이템으로 재밌을 듯요.”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의 텔레그램 메시지였다. 금속노조의 텔레그램 스티커를 보여달라고 했다. ‘네’라고 대신 대답하는 금속노조의 캐릭터 ‘금쪽이’가 등장했다. 다른 노동조합의 스티커들을 모아봤다. 스티커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온라인 대화창에 공지할 일이 많고, 때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노동조합들은 텔레그램 스티커를 활용해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내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

금쪽이

금속노조의 ‘금쪽이’

금속노조의 상징, 파란 투쟁조끼를 입은 금쪽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금쪽이는 금속노조 조직실이 외부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만든 캐릭터로, 처음부터 텔레그램 스티커용은 아니었다. 

장석원 언론부장은 “금쪽이는 2020년 금속노조가 복수노조 대응사업과 전국순회투쟁을 벌이면서 탄생했다”며 “이후 일회용으로 쓰기엔 아깝다는 의견이 나와서, 다른 선전물에도 계속 쓰이다가 텔레그램 스티커로도 활용하자는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금쪽같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함께하던 금쪽이가 텔레그램 스티커로 등장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금쪽이 텔레그램 스티커

금쪽이 스티커는 대부분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동의할 때 활용하기 좋은 이미지로 구성됐다. ‘넵’, ‘좋아요’, ‘최곱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꾸벅’, ‘짝짝짝’ 등이 그렇다. 공지할 때 쓸 수 있는 확성기를 든 금쪽이, 펜 쥔 손을 높이 든 금쪽이도 있다.

조합원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장석원 언론부장은 “노동조합 소통방에서 귀여운 금쪽이는 인기 폭발”이라며 “스티커를 사용하면서 서로 소속감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장석원 언론부장은 “텔레그램에 메시지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 올라온다. 전부 좋은 이야기만 오고 가는 게 아니라 딱딱한 내용도 있는데 이런 스티커가 소통에 윤활유 역할을 잘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톨리

톨게이트 노동자를 닮은 ‘톨리’ 

‘톨리’로 불리는 이 캐릭터는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1,500명 집단해고 사태’에 맞서 투쟁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을 상징한다. 2019년 7월부터 투쟁모자를 쓰고 청와대 앞부터 김천 도로공사 본사까지 전국 곳곳을 누비며 투쟁했던 노동자들을 ‘톨게이트 직접고용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가 형상화해 만들었다. 

톨리는 1차 투쟁이 이어진 7개월간 선전물, 현수막 등 이곳저곳 노동자들을 따라다녔다. 남정수 민주일반연맹 조직실장은 “투쟁 당시 조합원들이 톨리를 많이 활용했다”며 “이후 다른 투쟁 사업장에서 톨리를 재가공해서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도경화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장은 “투쟁할 때 잘 썼고, 지금도 애착이 남아있다”며 “최근까지 웹자보 제작 등에 톨리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톨리 텔레그램 스티커

톨리도 텔레그램 스티커로 활용됐다. 톨리 스티커엔 다양한 동의 표현이 담겼다. 동의 표현만 10가지로, 전체 스티커(28개) 중 약 36%다. ‘네~’, ‘넹~’, ‘넵!’, ‘넹~’, ‘네.’, ‘네네’, ‘네ㅎㅎ’, ‘좋아욥’, ‘oㅋ’ 등의 스티커가 있다. 이 외에 톨게이트 투쟁의 상징 구호인 ‘우리가 옳다’, ‘싸우는 여성이 이긴다’ 등도 있다.

‘안전’ 강조하는 건설노조

건설노조의 텔레그램 스티커 캐릭터는 따로 애칭이 없다. 이 캐릭터는 민소현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교선부장이 만들었다. 민소현 교선부장은 “텔레그램엔 카카오톡처럼 활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이 딱히 없어서 건설노조만의 이미지로 서로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서 2년 정도 전에 만들었다”고 했다. 

건설노조 스티커 캐릭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민소현 교선부장은 “스티커를 만들 때 건설노동자들이 상황별로 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제작했다”며 “기존 텔레그램 스티커를 보니 실제 사람 얼굴을 활용한 경우가 꽤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누구나 쓰는 스티커를 만들고 싶어서 다 만화로 그렸다”고 이야기했다. 

건설노조 텔레그램 스티커

안전모를 쓴 건설노조의 캐릭터로 구성된 스티커엔 일터에서 안전을 강조하는 내용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안전 OK!’, ‘집중 해라’, ‘건강하자구욧!’ 등이 있다. 레미콘, 지게차, 포클레인, 덤프트럭, 타워크레인 등 건설장비도 곳곳에 보인다. 

‘거침없는 총파업 가자’
총파업 알리는 민주노총 스티커

민주노총의 마스코트는 민총이다. 민총이는 민주노총의 창립 25주년을 맞아 2020년 4월 탄생했다. 민총이는 이름의 적절성부터 캐릭터의 호감도 등 논란이 있었으나, ‘민주노총 온라인 조합원 1호’로서 꾸준히 활약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민총이

민총이로 만든 텔레그램 스티커는 민주노총을 홍보하는 목적이 주다. 민주노총의 노동상담 전화번호 ‘1577-2260’가 적혀 있거나, ‘일터를 지키는 백신 (민주노총)’, ‘갑질엔? 해결사! (민주노총)’,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등이 그 예다. 

민주노총 총파업 텔레그램 스티커

지난해 민주노총의 ‘10.20 총파업’을 맞아 새로운 스티커가 등장하기도 했다. 총파업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만큼 ‘총파업’이 적힌 빨간 머리띠를 맨 캐릭터들이 ‘거침없는’, ‘총파업’, ‘가자’, ‘선을 넘자’ 등을 외치고 있다. 이 캐릭터는 총파업 관련 선전물, 홍보 스티커 등에도 활용됐다.

김경훈 민주노총 선전홍보미디어실장은 “귀여운 캐릭터로 총파업 의제를 확산시키고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며 “민주노총에서 총파업 스티커를 만들고 나니 산별노조로 스티커 만들기가 확산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했다.

‘총궐기’ 준비 과정에서 탄생한 
공공운수노조 스티커

공공운수노조도 지난해 ‘11.27 총궐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텔레그램 스티커를 만들었다. 박영흠 공공운수노조 선전실장은 “투쟁을 조직하면서 총궐기 의제를 공유하고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텔레그램 스티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캐릭터 이름은 따로 짓지 않았다. 이는 이름을 지어서 성별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지양해야겠단 의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공공운수노조 스티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의 텔레그램 스티커 캐릭터는 ‘투쟁토끼’다. 현지현 의료연대본부 정책국장은 “공식적으로 만든 캐릭터는 아니지만 피켓, 소식지 등에도 투쟁토끼를 사용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론 에코백으로도 만들어서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연대본부 스티커

‘확산성 차원’ 한계도

물론 텔레그램 스티커가 노동조합 모든 조합원들에게 보편적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 간부 외 조합원들은 대부분 텔레그램보다 카카오톡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박영흠 선전실장은 “간부 선에선 많이 활용하지만 전체 조합원까진 넓게 확산되지 못했다”며 “조합원들은 카카오톡 등 다른 SNS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텔레그램 스티커다 보니 확산성 측면에서 한계는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민소현 교선부장은 “단체 대화방에서 간부들이 쓰는 건 알 수 있는데, 조합원들이 스티커를 얼마나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모티콘은 가용한 모든 채널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의미를 전달하려는 참여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생성된 기호다.” 〈온라인 환경의 이모티콘과 비언어 행위의 관계, 박현구, 2005〉

이 외에도 더 많은 한계가 있겠지만, 노동조합의 텔레그램 스티커는 “가용한 모든 채널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의미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이다. 텔레그램 스티커를 누를 때마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왜 텔레그램인가? 

노동조합이 텔레그램을 주요 온라인 소통 창구로 활용하는 이유론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꼽힌다. 특히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카카오톡 민간인 사찰 논란’이 결정적 배경이었다.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줄을 이었다. 

장석원 언론부장은 “2014년 이전에도 보안성 때문에 운동권에선 텔레그램을 많이 썼는데 카카오톡 사찰 사건이 결정적이었다”며 “당시 일반인도 텔레그램으로 많이 옮겼다. 그러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운동권은 텔레그램 외 대안이 마땅히 없고, 이미 기반이 강해서 텔레그램을 떠나선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텔레그램이 스티커를 유료화하지 않은 점도 노동조합의 접근성을 높이 계기가 됐다. 카카오톡, 라인 등 다른 온라인 메신저에선 이모티콘 스토어가 따로 있다. 텔레그램은 이용자가 스티커를 제작해 텔레그램 서버에 등록만 하면 된다. 대화 중 마음에 드는 스티커가 있으면 눌러서 저장해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