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하는 공무원’은 당연하지 않다
‘희생하는 공무원’은 당연하지 않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3.07 12:11
  • 수정 2022.03.07 1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코로나19·선거사무 부당위촉···“헌신만은 못 하겠다는 게 현장 의견”
“정치기본권 쟁취로 힘 찾고 공직사회 긍정적으로 바꿀 것”

공무원들의 생명과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달 15일에는 전주시에서 일하던 새내기 공무원이 입직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보도 채 떼기 전이었다. 고인은 농업직 공무원이었지만, 전주시 보건소로 파견돼 역학조사 업무를 해야 했다. 역학조사는 베테랑 공무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로 꼽힌다.

과로로 일터를 떠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지만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만연하다. 선거사무종사자 처우개선과 동원방식이 변하지 않아 기초단체공무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퇴직해도 연금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공무원들도 생겼다. 하지만 공무원은 노동·정치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아 온전한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도 없다.

전호일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더 이상 시키면 시키는 대로 헌신하지 못하겠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1월 12일과 13일에 걸쳐 치러진 전국공무원노조 제11기 임원선거에서 전호일 위원장과 김태성 사무처장은 62.72%(4만 8,029표)의 지지율을 얻어 당선됐다. 위원장과 사무처장이 동반 재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전국공무원노조 선거 첫 사례다.

올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설립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간 전국공무원노조는 법외에서 노조할 권리를 위한 투쟁에 집중해왔다. 이 투쟁은 2018년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지고, 2020년 해고자 복직 법안이 통과되며 일단락됐다고 평가된다. 전호일 위원장은 “이제 공무원들의 근본적인 권리에 대한 투쟁을 할 것이다. 노동자로서 노동기본권과 시민으로서 정치기본권을 쟁취해낼 때가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잃어버린 노동·정치기본권을 찾아 희생이 당연시된 지금의 공직사회를 바꾸겠다는 의미다.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인터뷰는 2월 21일 전국공무원노조에서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DB 

“노동·정치기본권 없어
계속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

- 위원장 재선에 성공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코로나19로 사업에 어려움과 혼란이 많았다. 출범식도 제대로 못 하고 집회도 여러 번 시도하려다 취소했다.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국면으로 바꾸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왔던 사업을 조합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준 것 같다.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고, 공무원 정치기본권 10만 입법청원도 성사시켰다. 또 점심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공무원노조 12시 멈춤,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조직화, 유튜브 총회 등 비대면 사업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코로나19 국면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향후 전국공무원노조 2년은 지난 2년과 무엇이 다른가.

정세에 맞는 투쟁방향과 전술을 써야 한다고 본다. 공무원노조가 올해 20주년이 된다. 20년 동안 우리가 법내에 있었던 기간은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구호는 설립신고와 해고자 복직이었다. 그것은 이제 매듭이 일정 정도 지어졌다.

새로운 사업 방향성을 제시할 때다. 공무원들의 근본적인 권리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자로서 노동기본권, 시민으로서 정치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있어야 한다.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이 없어 계속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을 개악했던 국회의원들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면 정치권도 쉽게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노동·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공무원노조의 계획은 뭔가?

인수위부터 정부에 강한 푸시를 할 예정이다. 우리가 10만 입법청원했던 법안이 있고, 국회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도 있다. 그 법안들을 정리해서 통과시키는 입법 투쟁을 하고 싶다. 대국회 사업부터 조합원 교육사업, 조합원들과 공동의 행동을 만들어가는 사업들을 계획 중이다.

공동행동이 무엇일지 확정되진 않았는데, 몇몇 아이디어들은 나왔다. 최근에 전교조가 ‘참둥이’를 대선에 출마시켰다. 전국공무원노조도 쌈박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7급 구청장 시대’를 슬로건으로 7급 공무원이 구청장이 된다면 어떤 것들을 할 것인지 적는다거나, 지역에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조합원들이 전부 100원씩 정치후원을 한다거나, ‘이런 정당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인증샷을 찍는다거나 하는 것들을 상상 중이다. 아무튼 올해 안에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공무원들도 총궐기든 연가투쟁이든 뭔가 한번 진행할 시기는 됐다고 본다.

- 어떤 정권인지에 따라 위험할 수도 있겠다.

공동의 행동은 조합원들과 충분히 토론하고 결정하고자 한다. 더 열심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일정 정도 각오는 하고 있다. 20년 전에 노동조합 처음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법에서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냥 우리가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법이 나중에 만들어졌다. 그 당시에 싸웠던 사람들은 지금 복직했다. 정치기본권도 일정 정도의 희생이 있어야 그것이 이슈화되면서 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노동의 역사가 사실 다 그렇지 않나 싶다.

“포스트코로나 과제는
공무원 인력충원”

- 노동·정치기본권이 없는 상황에서 전국공무원노조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선거사무종사자 위촉을 거부했다. 희생을 막겠다는 노조의 의지로 보인다.

공무원을 때리면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정치권의 인식 속에서도 공무원들은 헌신하고 희생해왔다. 그것에 따른 현장의 분노가 있다. 전주시에서 입직한 지 한 달된 공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분은 고유 업무와 코로나19 업무를 함께해왔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선거사무업무도 마찬가지다. 이런 형태로는 일을 도저히 못 하겠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그동안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왔는데, 이제 우리의 의사를 묻고 선거사무종사자로 위촉하라는 투쟁이다. 그리고 일을 시켰으면 법에 맞도록 수당을 편성하라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노동자고, 그에 대한 권리를 이제는 말을 해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은 근본적으로 인력충원이 답인 문제다.

- 그래서 ‘150만 공무원 시대’를 공약했나.

공무원들이 죽어나가는 문제의 대안은 인력충원이다. 그 외의 답은 없다. 지금 우리나라 공무원이 120만 명 정도 되는데, 아직 부족하다. 이 숫자로 모든 업무를 감당하니까 과로나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 포스트코로나 시기 의료나 돌봄,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소방인력도 그렇다. 그래서 공무원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50만 공무원 시대를 어떻게 사업으로 만들어가야 할지는 아직 고민이 된다. 최근엔 생을 마감한 전주시 공무원을 추모하는 현수막을 전체 지부가 게시하며 인력충원을 같이 요구했다. 오는 3월 23일이 20주년인데, 그날 대의원대회를 열어 사업계획을 어느 정도 확정할 예정이다.

지난달 15일 '11만 지방공무원 선거사무 거부 선포 및 선거사무종사자 인권·노동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전호일 위원장 ⓒ 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노조 대통합
신뢰 더 쌓여야”

- ‘공무원노조 대통합’도 주요 공약이다. 어떤 진전을 기대하나.

전체 공무원이 하나로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동의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는 전국공무원노조를 법외로 만들어서 탄압하고, 공무원노조끼리는 서로 계속 견제하고 반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전국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와 해고자 복직이 해결되면서 통합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우선은 계속적으로 연대투쟁을 해나갈 계획이다. 대정부 교섭, 정책협의체 등 같이 투쟁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하고, 더 신뢰가 많이 쌓여야 할 문제다.

- 하나가 된 공무원노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보나.

조직 형태를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정말 창조적인 형태를 포함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 방향성은 민주노조의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조합은 계급성을 가지고 투쟁하는 조직이다. 노동자라는 계급성을 근거로 해서 싸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노사 상생 같은 방향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새 정부, 공무원들 고통
경청·해소하려고 노력해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국가는 국민이 아프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럽다면 경청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을 꾸준히 해야 한다. ‘너네는 그냥 희생하면 돼’라는 식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의 정치기본권이 새로운 정부에서 꼭 보장됐으면 한다. 이것은 국가 전체 차원에서도 긍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민중행정은 공무원 정치자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법을 같이 바꿔나가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