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 임금’도 최저임금 설정할 수 있다
‘건당 임금’도 최저임금 설정할 수 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3.31 20:38
  • 수정 2022.04.12 1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기법 밖 '비정형 노동'의 확대, 최저임금은 ‘딴 세상’ 이야기
​​​​​​​‘오분류’ 바로잡기가 먼저, ‘근기법 바깥’ 보호할 입법도 필요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31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회의실에서 ‘플랫폼 노동자 적정소득 보장방안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0년부터 최저임금연대에서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민스러웠던 게 최저임금이 가사노동자에게 와 닿지 않는 거예요. 최저임금 1만 원 운동할 때도 당연히 서명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같이 일하는 가사노동자에게 와 닿지 않았어요. 통상임금, 평균임금. 도대체 뭐가 와 닿나.”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의 말이다. 최저임금제는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 근기법 밖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린 이유다. 이러한 최저임금제도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3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회의실에서 ‘플랫폼 노동자 적정소득 보장방안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좁아지는 ‘근로자’ 개념
최저임금제도는 ‘그림의 떡’

현재 최저임금제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 헌법 제32조1항이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거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정년까지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표준적 고용형태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대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등 비표준적 고용형태가 확대했다.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표준적 고용형태는 사회보장제도와도 관련이 깊다. 표준적 고용형태에서 사용자와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맺는다. 여기서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는다. 정부는 노사 각각에게 부과되는 사회보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원천징수의 형태로 사용자를 통해 받는다. 반면 비표준적 고용형태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같이 실제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사용자로 취급돼 최저임금제도는 물론 근로기준법상 보호와 사회보장제도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는 택배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사회보장제도의 적용은 일부만 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 107명의 월 평균 수입은 488.8만 원이었지만, 주휴수당, 4대 보험, 교통비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받을 수 있는 비용을 제외하면 월 평균 순수입은 198.2만 원이었다.

더욱이 이를 1개월 평균 노동시간인 229.3시간(1일 평균 9.1시간)으로 나누어 봤을 때, 시급 8,643원에 불과했다. 2022년 최저시급인 9,160원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플랫폼산업 등장으로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으면서 ‘단일한 사용자’ 개념이 흐려졌고, 기존 중간도급업체 혹은 중개업체가 플랫폼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근로관계의 실질이 노동자임에도 사용자로 잘못 분류(오분류)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쿠팡이츠, 대리주부, 숨고, 크몽 등 각각의 플랫폼이 단일한 성격을 띠는 게 아니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다고 해서 모두가 오분류된 사례는 아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쓰면서 일감을 조달하는 사람이 근로자냐 혹은 아니냐는 사실은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 시장에서 정말 자유롭게 거래되는 것이냐 아니면 어느 정도 통제하에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플랫폼이 일감의 분배와 작업의 방식을 직‧간접적으로 결정한다면, 오분류된 사례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건당 임금’도
최저임금 설정 가능

그러나 오분류를 바로 잡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한다고 해도 비정형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도를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최저임금제는 기본적으로 ‘시간급’으로 임금 수준을 정하는데 택배, 가사노동자 등 대다수가 ‘건당’ 임금을 받는 형태(도급제 임금)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도급제 임금 형태의 경우 근로시간을 파악할 수 없을 경우 업적급의 형태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근로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사후적으로 단위기간 동안 수령한 임금에서 근로시간을 나누어 시급을 구할 수 있고, 그 시급이 최저시급 이상인지 이하인지 판단할 수 있다.

권오성 교수는 “타다드라이버나 배달노동자 등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플랫폼에서 일하는 분들은 노동자가 맞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당연히 최저임금을 적용받아야 한다. 예컨대 배달 1건에 평균 30분이 걸리고 배달료가 3,000원인 경우 시급은 6,000원이다. 도급제 임금이라고 최저임금 집행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980년대부터 번역과 같이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업적단위별로 최저임금을 시행령으로 고시하라고 돼있다. 다만 여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용철 소장도 “각 직종별로 표준적인 업무량과 노동시간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최저임금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각 직종별로 주40시간의 노동을 할 경우에 최저임금 이상 또는 노동자 평균임금 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한 오분류를 다투고 있는 노동자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적용될 수는 없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뿐만 아니라 종속적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근기법 바깥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도 필요하다고 권오성 교수는 주장한다.

권오성 교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헌법상 근로자’를 위하여 현행 최저임금법과 유사한 별도의 입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이에 앞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현행 최저임금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