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FTA 체결,
일본차가 내수 10% 삼키면 ‘좋은 일자리’ 2만개 사라져
한일 FTA 체결,
일본차가 내수 10% 삼키면 ‘좋은 일자리’ 2만개 사라져
  • 승인 2004.10.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산업 고용악화 시나리오

●수입차 내수시장 잠식 10% → 국내 생산 감소 대수 15만대 → 2만명 고용조정
●수입차 내수시장 잠식 15% → 국내 생산 감소 대수 22만대 → 3만명 고용조정

 

국내 유력 산업전문기관이 전망한 한일 FTA 체결 이후 국내 자동차 생산 및 고용 감소 시나리오다. 이 기관 관계자는 내수시장 잠식률이 10% 대에 이르는 시점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일 FTA 체결 직후 2~3년 내로 바라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자동차는 한일간 자유무역협정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이다. 일본은 이미 지난 1977년 자동차에 대한 수입관세를 철폐한 반면 한국은 8~10%의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세장벽이 철폐되면 일본산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은 10% 가량 상승하게 된다. <표참조> 

 

자동차와 같은 가격 민감 품목에서 적게는 140만원에서 많게는 8백만원까지의 가격 변동 폭은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이미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일본차가 수입선다변화품목에서 해제되기 이전인 지난 1998년만 하더라도 국내 수입규모가 298대에 그쳤으나 1999년 해제 조치 이후 ▲2000년 1698대 ▲2001년 3526대 ▲2002년 5879대로 확대됐고, 올 들어 처음으로 6000대를 넘어서 7년 만에 20배의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 5월 자동차공업협회와 수입자동차협회는 2010년이면 내수시장의 수입차 점유율은 1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추정치가 한일 FTA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태년 통상협력팀장은 “일본과의 FTA 체결로 우리 시장이 얼마나 잠식당할 것인가는 일본 자동차 업체의 전략에 달려 있어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예측이 어렵지만 규모가 상당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한일 FTA 체결되면 너도나도 ‘관세 내려라’ 압력
한일 FTA 체결은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과 더불어 전체 수입차의 증가를 촉진한다. 일본자동차에 무관세가 적용되면 자동차부문 무역 흑자가 많은 미국 및 유럽도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한 통상압력을 넣을 것이 뻔하고 이 경우 딱히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자동차에 대한 관세마저 철폐되면 외국차의 국내 유입량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우리나라의 일본 시장 진출 매력은 미미하다. 관세 철폐를 통해 수출 확대를 도모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대일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각종 비관세장벽을 철폐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은 자동차 수입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입차 판매비중은 4.7%에 그칠 정도로 시장 자체가 폐쇄적이다.

또 일본의 자동차 딜러들은 자국업체의 제제를 의식해 수입차 판매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한국업체들의 판매망 구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수입차업체가 연간 1만대 이상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평균 10년 이상의 장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산감소, 고용에 직격탄
이미 자동차의 대일 무역역조가 올 상반기 기준으로 114억 2600만 달러에 달했다. 또 품목별 대일 수입증가율은 승용차가 149.7%로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수입차의 증가는 생산과 고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본 자동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10%를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국내 생산은 15만대(2004년 총 생산량 기준)가 줄어든다.

 

이 경우 자동차산업 및 관련산업 종사자 21만 명의 10%인 2만 명은 잉여 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도식화가 가능한 것은 자동차산업은 생산량 감소가 고용 감소로 직결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조철박사는 “한칠레 FTA에 따른 농업 부문의 피해보다 훨씬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농업의 경우 개방 즉시 생산수단(농지)이 없어지지 않지만 자동차의 생산대수 감소는 곧바로 설비 가동 중단과 폐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품업계, 피해치 추산 못할 정도
자동차 부품업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재 우리나라 완성차업체의 대일 부품 조달 비율은 12%, 부품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완성차업체의 7배에 달한다.

<표 참조>

 

대일 수출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무역특화지수로 살펴보면 자동차 부품은 지난 5년간 -0.6 이하를 기록할 정도로 대일 경쟁력이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세가 철폐되면 8~10%의 가격 경쟁력을 갖는 일본 부품의 진출이 더욱 활성화되고 국내 부품업체의 기술개발 노력이나 국산화 노력을 더욱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2003년 말까지 한국에 투자한 228개 외국 부품업체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104개 업체가 일본 주요부품업체들이기 때문에 FTA 체결로 인한 투자유치 증대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고문수 상무는 “한일 FTA가 체결되면 일본에서 생산·공급하는 비용이 인하돼 한국에 대한 투자유인 보다는 판매유인이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일본 부품업체들은 신제품 개발 및 설계기술 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혁신과 관련된 기술까지도 유출을 극히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완성차 생산의 감소는 하청 부품업계의 판매처 축소로 이어져 부품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게 된다. 부품업계는 물밀듯 밀려올 일본산 부품의 영향에다 완성차 생산 축소로 고용 감소까지 겹쳐 이중고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이미 완성차업계와 부품업계에서는 한일 FTA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불리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술이전 효과나 일본시장 개척 효과가 있다는 당초의 예상이 빗나가면서 관련 업종 협회가 산자부에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공업협회의 한 임원은 “자동차업체와 부품업체의 경우 실익은 너무 적어 추정이 무의미하고 피해는 너무 커서 추정이 불가능한 오리무중의 상태”라며 답답해했다.
한일 FTA 협상 마감 시한을 1년 앞둔 한국의 완성차 및 부품업계는 추계조차 어려운 FTA 폭풍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