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도 안 먹어” “집밥 먹듯 해” 서울버스 식사 천차만별
“한 달 반도 안 먹어” “집밥 먹듯 해” 서울버스 식사 천차만별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6.09 15:40
  • 수정 2022.06.09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균 식재료비 1,754원...아침·저녁 같은 반찬, 식사 거를 때 많아
영양사·회사 관심에 높은 만족도, ‘식대 별도 책정해야’ 목소리도
차고지에서 식사 중인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온 서울 시내버스 식사 질 문제가 올해 임금교섭 기간 중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지난해 단체교섭 이후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관련 TF를 꾸려서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자율 개선’을 주장한 사측과 이를 반대한 노조 간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며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서울시의 참여를 요구했고, 이후 꾸려진 노사정 협의체는 식사 질 개선을 방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 노사정은 ▲최소 식재료비 설정 ▲식사 질 개선안 불이행 시 회사 평가 감점 ▲모바일 투표 시스템을 활용한 식사 질 만족도 조사 등을 논의 중이다. 버스운전기사들은 식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지난달 말 현장을 찾아가봤다.

서울 모처의 A시내버스 차고지. 오전 10시 30분 무렵 이른 점심을 먹으려는 버스운전기사들이 식당에 모였다. 배식대에는 제육볶음과 쌈 채소, 어묵조림, 깍두기, 그리고 흰 쌀밥과 우거지 된장국 등이 놓여있었다. 기자의 입에는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한 끼였다.

식사를 마친 뒤, 흡연실에 모여 있는 버스기사들에게 차고지 식사가 어떤지 물었다. 아쉽다는 사람도 일부 있었으나, 대체로 ‘괜찮다’,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취재에 응한 버스기사들 대부분은 다른 차고지의 식사와 비교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많은 곳에서 먹어본 건 아니지만 여기는 괜찮은 편이다.”
“좋다. 제육볶음, 불고기, 소고기뭇국, 동태 튀김 등 고기가 비교적 많이 나온다.”
“식사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의 식단표를 보면, 고기가 일주일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엉망이다. 뭐 이런 밥을 주느냐고 소문이 파다하다.”

A차고지 시내버스 업체는 서울 시내 두 곳에 단독 차고지를 두고 있다. 직영 식당을 운영하며 1일 평균 식수는 총 270명 내외다. 식사 질이 꽤 양호한 곳으로 꼽히는 A차고지의 1인 1식 식대는 4,100원이다. 서울 시내버스 평균인 3,060원(위탁운영 기준)보다 1,040원 높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영양사 ㄱ씨는 “식사 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본은 식재료비”라고 밝혔다. “순수 식재료비를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식사 질이 달라진다. 우리 회사는 식대 중 순수 식재료비를 60%가량 사용한다. 다른 업체와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서울시 버스업체의 식재료비는 서울시에서 산정한 표준원가운송비용 항목 중 기타복리후생비용(기타복리비)에 포함된다. 기타복리비는 식대를 비롯해 피복비, 경조사비, 노사상생기금 등을 합한 금액이다. 이들 항목의 비중은 사업주가 자율로 정하기 때문에, 식대 책정도 사업주의 결정으로 정해진다. 식대에는 인건비(영양사·조리사), 수도·광열비 등도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금액이 실제 식재료구입에 사용된다.

영양사 ㄱ씨는 “한정된 식대 안에서 식재료비를 어느 정도 책정하느냐에 따라 식사 질이 좌우된다”며 “정말 적게 잡아도 2,000원 이상을 순수 식재료비로 쓰지 않으면 식단을 짜기 상당히 어렵다”고 얘기했다. 현재 서울 시내버스 평균 식재료비는 1,754원(위탁운영 기준)에 불과하다.

아침과 똑같은 저녁 반찬
부실 식단에 식사 거를 때 많아

B공영차고지는 10여 개의 버스 업체가 모여 있는 곳으로, 하루 식수가 1.000명에 달한다. 식당 운영은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식대는 2,700원으로 서울시 최하위 수준이다. 그러나 B공영차고지의 식대를 수치 그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버스업체에서 위탁업체의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줬기 때문이다. 버스업체 관계자는 “식대가 2,700원이라지만 부가세를 제외하고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실질적으로는 식대 인상 효과가 발생했다. 수도·광열비 등도 우리가 지출해준다. 따지자면 현재 식대는 3,000원대 초중반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해당 관계자는 당장 식대를 올리기는 어려우니 자구책으로써 회사도 조금씩 노력해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영차고지에서 만난 버스기사들은 그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반찬이 너무 별로라서 한 달에 절반도 밥을 안 먹는다. 식단표만 봤을 때는 괜찮아 보이는데, 막상 나오는 걸 보면 서로 먹지 말자고 얘기한다. 말이 돼지고기김치볶음이지 고기는 거의 없고 김치만 들어간다.”
“좋을 게 없다. 어쩌다 괜찮은 반찬이 나와도, 고르게 배식되지 않는다. 앞에서 많이 담으면 중간에 채워줘야 하는데 먹을 게 없다. 입사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개선될지 의문이다. 쓰지 않은 식권이 쌓여있다.”
“버스 운전만 20년 넘게 했다. 요즘 식사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음식 맛은 그냥 괜찮다. 그런데 중국산 김치나 고춧가루가 마음에 걸린다.”

오히려 대규모 차고지인데도 식사 질이 좋지 못하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10여 개의 버스 업체가 모인 B 공영차고지는 하루 식수 인원이 많은 만큼, 대량 구입으로 더 저렴한 가격에 식재료를 들여올 수 있다. 식대를 적게 책정했더라도, 규모가 더 작은 사업장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버스기사들의 주장이다.

일례로 한 버스기사는 “매주 아침 반찬과 저녁 반찬이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식당에 게시된 주간 식단표를 보니, 아침과 저녁 메뉴가 똑같았다. 하루 2교대로 근무하는 서울 시내버스 특성상, 한 명의 버스기사가 하루에 아침과 저녁을 먹을 일은 없다. 그러나 조합원 사이에선 ‘돈 아끼려고 냉장고에 넣었던 아침 반찬을 데워서 준다’는 불신마저 팽배하다고 한 노동조합 지부장은 얘기했다.
 

▲ 조식과 석식 메뉴가 같은 B공영차고지 식단표
▲ 조식과 석식 메뉴가 같은 B 공영차고지 식단표

버스업체 관계자는 식대를 올리지 않은 이유로 “10여 개 업체가 공동운영 중이니, 식대를 올리려면 모두 동의해야 한다”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위탁업체와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진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지나치게 낮은 기타복리비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22년 기준, 기타복리비 1만 1,292원으로 5년 전보다 428원 인상된 수치다. 한 시내버스 노동조합 지부장은 “물가는 계속 인상하는데, 기타복리비가 몇 년째 동결 수준이라면 식사 질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며 “서울시에서 기타복리비를 올리고, 식대를 제대로 집행하는지 별도로 관리·감독하면 식사 질이 개선될 거로 본다”고 주장했다.

구성원 의견 적극 반영,
영앙사·사측 관심에 높은 만족도

“서울 시내버스에서 우리만큼 잘 나오는 곳 없을 거다. 반찬이 종류별로 골고루 나온다.”
“아침에 사람 없을 때는 죽 같은 게 나오지만, 그 외에 불만은 없다. 집밥처럼 먹어왔다.”
“밥 때문에 일하기 힘들다는 얘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C차고지는 직영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하루 식수는 140명 정도이며, 식대는 높지 않은 쪽에 속한다. 직영 운영 사업장끼리만 비교하더라도 중간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버스기사들은 식사에 후한 점수를 줬다.

“식사 질을 더 높여야 한다”며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기자가 직접 먹어본 바론 ‘그냥 그런’ 점심이었다. 하지만 많은 버스기사들이 식사를 좋게 평가했고, 그들 중 몇몇은 사측과 영양사의 지속적인 관심에 만족을 표했다.

“타 회사보다는 낫다고 본다. 영양사가 신경을 써준다. 물론 지금보다 나아지면 좋겠지만, 적어도 실사 질이 낮은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만족한다.”
“예전부터 회사에서 밥은 잘 챙겨줬다. 영양사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C차고지에서만 13년째 영양사로 일하는 ㄴ씨는 정례적이진 않더라도, 종종 마주치는 버스기사의 의견을 식당 운영에 적극 고려한다고 했다. ‘어떤 메뉴가 맛있더라’라고 흘리듯 얘기해도 식단에 반영하는 식이다. ㄴ씨는 “결국 관심”이라고 말했다.

“기사님들이 대체로 50대라, 건강을 중요하게 챙긴다. 저염식을 추구하고, 조미료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예로 매실액도 직접 담가서, 설탕 대신 매실액을 넣는다. 요즘 물가가 굉장히 높아져서 걱정이지만, 배추김치와 고춧가루도 국내산을 쓰고 있다. 또 개별적으로 현미밥을 챙겨오는 등, 잡곡밥을 먹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서 잡곡밥 배식 비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ㄴ씨는 이처럼 식단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건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경영진의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회사 임원 ㄷ씨는 “정해진 자원 안에서 나름대로 좋은 식사 질을 제공하려고 한다”며 “잘하지 못하는 곳은 그만큼 회사에서 관심을 쓰지 않아서라고 본다”고 했다.

앞서 소개한 A차고지에서도 C차고지와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버스기사는 “영양사가 골고루 신경 써서 가정식 백반을 먹는 기분”이라고 했다.

A차고지에선 ‘중국산 김치를 빼 달라’는 조합원 의견이 노사협의회에 안건으로 올라온 적이 있다. 중국산과 국산 간 가격 차이가 상당했기에, 배추김치를 국산으로 쓰기는 어려웠다. 대신 영양사는 배추김치보다 저렴한 국산 깍두기를 대안으로 제시했고, 최소 일주일에 2~3번 배식하기로 노사는 합의했다. A차고지의 노동조합 지부장은 “영양사가 건의하면 대표가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A, C 차고지에서도 아침과 주말·공휴일 식사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차량 운행이 적어 식수가 적다 보니, 대부분 차고지의 아침, 주말·공휴일 식사는 평일에 비해서 부실하다. 영양사 ㄴ씨는 “보통 아침은 조리사 한 명이 준비하니 간단한 메뉴로 구성한다. 새벽 2~3시에 출근해야 하니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고 했다.

차고지에서 만난 이들 중 식재료비를 강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식재료비 인상이 중요할지라도, 버스기사들의 만족도 향상에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A차고지의 노동조합 지부장은 “경영진이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좋은 식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차고지 임원 ㄷ씨는 “지금 식대 책정을 경영진 자율에 맡기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서울시에서 식대를 별도로 책정해서 관리하고, 차차 개선해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