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퇴임
“이유를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퇴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6.20 16:54
  • 수정 2022.06.20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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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름다운 사람 유지현-유지현 지도위원 퇴임식’ 열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7일 열린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퇴임식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보건의료노조 6·7대 위원장을 역임한 유지현 고대의료원지부 지도위원의 퇴임식이 17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유지현 지도위원은 32년간 병원생활, 30년간 노동조합 활동을 마무리했다.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지부장 노재옥)는 17일 고대안암병원 유광사홀에서 ‘아름다운 사람 유지현, 유지현 지도위원 퇴임식’을 열었다. 

1990년 입사해
6월 30일 명예퇴직 앞둬

유지현 지도위원은 1990년 고대의료원 구로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로 입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레지던트가 중환자실 간호사를 폭행한 일이 발생했다. 유지현 지도위원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의사를 병원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노동조합과 행동에 나섰다. 피케팅, 병원장 면담, 로비농성, 가두시위 등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당시 고대의료원노조 이희관 위원장 눈에 띄어 1992년부터 전임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엔 고대의료원노조 5대 위원장을 맡았다. 1998년 병원노련이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로 전환했다. 이때부터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에서 일했다. 2003년부터 6년간 서울지역본부장을, 2009년부터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2012년부터는 6년간 보건의료노조 6대·7대 위원장을 지냈다. 이 시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특별법 제정 발의, 진주의료원 폐업에 맞서 공공의료 강화 투쟁, 의료민영화 반대 3차례 총파업 투쟁, 메르스 대응 투쟁 등을 이어갔다. 2017년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95개 의료기관에서 비정규직 1만 99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유지현 지도위원은 숱한 집회와 삭발, 단식과 농성, 아사단식 등의 투쟁을 벌였고 2017년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현재는 고대의료원지부 지도위원으로 복귀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는 무사히 암치료 5년을 경과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오는 30일은 유지현 지도위원의 마지막 고대의료원 출근날이다. 

ⓒ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보건의료노조

유지현과 함께한 기억

퇴임식은 유지현 지도위원의 30년 넘는 활동 기록, 함께한 동료들의 릴레이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감상한 뒤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유지현 지도위원과 1996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당시 나순자 위원장은 이화의료원노조 위원장이었다. 나순자 위원장은 1996~1997년 노동법 개정 투쟁(노개투) 총파업 시기에 사립대병원인 고대, 이대, 경희대, 한양대 위원장들이 골방에 모여 2차 파업을 재결의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순자 위원장은 “1차 파업 때 고대의료원 상황이 어려웠기에 2차 파업을 앞두고 유지현 지도위원이 울면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고대가 못하면 우리도 못한다고 시늉이라도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고대에서 정말 2차 파업을 끝까지 해냈다”며 “당시 병원노련의 어린 간호사들이 뿌연 최루탄을 뚫고 종로에서 모였다가 명동성당까지 항상 행진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노개투 투쟁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유지현 지도위원은 “나순자 위원장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며 “마지막에는 내가 투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도 많이 해줬다. 늘 가족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특히 노동조합 활동에서 가장 뺄 수 없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노개투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파업지침을 내렸던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권영길 지도위원은 “2015년 자가면역체계 이상으로 여러 병이 생겨서 지금까지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설암도 걸려서 4년 전에 수술했다”며 “유지현 지도위원이 암을 극복한 뒤 암 환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는데 꼭 만들어서 빨리 낫게 해달라는 말씀을 드리러 왔다”고 했다.

유지현 지도위원은 “노동운동, 진보진영의 어르신이고 편찮으신 것 때문에 늘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다”며 “건강을 빨리 회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같이 해드리고 싶다. 건강 기운을 나눠드리겠다”고 답했다.

노재옥 고대의료원지부 지부장은 송사를 전했다. 노재옥 지부장은 “유지현 지도위원은 보건의료노조를 진일보시켰으며 보이지 않은 많은 업적도 남겼다”며 “이렇게 큰 사람이 된 지도위원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대의료원이 지도위원의 사업장이라는 부담감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노재옥 지부장은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유지현 동지를 기억하는 그 누군가가 ‘아, 유지현은 젋었을 때 진짜 멋있고 너무 잘했다’는 소리를 하면 깊게 공감하고 머리가 숙여진다”며 “투쟁과 소통과 화합으로 30여 년간 보건의료노동자를 위해 활동해주신 유지현 지도위원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유지현 지도위원은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며 “투병하면서 여러분이 주는 기운, 응원, 기도가 모두 느껴졌고 그것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많은 시간 함께했던 한 명, 한 명이 지난 30여 년의 시간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17일 열린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워장 퇴임식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7일 열린 유지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퇴임식. (사진 왼쪽부터) 유지현 전 위원장, 노재옥 고대의료원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암 환자 위한
인생 2막 계획

이제 유지현 지도위원은 삶 2막을 계획하고 있다. 유지현 지도위원은 암 환자 공동체인 영국의 ‘매기센터(Maggie's Centre)’ 같은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유지현 지도위원은 “본 수술 이후에 두 번 더 수술했다. 그러고 나니 몸만 치료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음도 치유를 해야겠더라”며 “아로마테라피, 싱잉볼, 선무도, 요가 등 마음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 치유했다. 지금은 그간 배웠던 것들을 나누고 있는 정도인데, 이를 중심으로 앞으로 암 환자들과 상담하는 영국의 매기센터 같은 상담센터를 만드는 게 어떨까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퇴임식은 고대의료원지부가 마련한 공로패 전달, 서울지역본부의 선물 전달 등으로 마무리됐다. 

아래는 유지현 지도위원의 마지막 전하는 말

“아프면서 먼저 색다른 경험을 했으니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첫째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파 보니까 그렇더라. 이전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로 버텼다. 몸에서 주는 신호를 그냥 버텼다. 지나가기만 바랐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암을 겪고 5년간 투병하고 보니까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뭔지를 찾는 게 우리 숙제인 것 같다. 

그러면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까지 같이 알게 됐다. 내 인생에서 암은 굉장한 시련으로 왔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계기가 됐던 것처럼 내게 왜 암이 왔을까, 이것은 뭐의 그림자일까 답을 찾으니 이후에 어떻게 해야겠다는 답도 나왔다. 그것을 동력으로 건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으니까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그냥 버티지 말고 이유가 무엇인지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 답을 찾을 때 그냥 버티는 것이 아니고 한 발 더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는 상상요법에 대한 이야기다. 될 일은 된다. 내가 억지로 낫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여러분이 주셨던 기운 때문에 치유가 됐다. 그리고 나는 살 줄 알았다. 그런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는 꼭 건강하게 될 거야 반드시 될 거야’, ‘나는 건강한 기운을 암 환자들에게 나눠줄 거야’ 이런 상상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여러분과 같이 그렇게 상상하면서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 그리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우리들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