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하청노동자 임금 ‘할인’ 말고 정규직 전환하라”
“법원, 하청노동자 임금 ‘할인’ 말고 정규직 전환하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6.29 13:26
  • 수정 2022.06.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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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법원 전산유지보수 하청 노동자 파업돌입 기자회견’
정규직 전환·임금 중간착취 중단 등 요구하며 파업 예고
공공운수노조 전국법원사법전산운영자지부와 전국법원등기전산지회가 28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법원 전산유지보수 하청 노동자 파업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원청업체도 부당노동행위에서의 사용자이다.’ 법원의 판결이다. 이제 법원이 우리에게 답을 해야 한다.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 법원, 원청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말해 보라.”

법원에서 전산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법원사법전산운영자지부(지부장 최근배)와 전국법원등기전산지회(지회장 김창우)는 28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30일(오후 6시부터), 내달 1일과 4일 파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구사항은 법원 전산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중간착취와 부당노동행위 중단 등이다.

법원 갑질·중간착취 시달렸는데
정규직 전환도 안 됐다 

이들은 법원에서 등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산장비를 유지·보수하고, 각급 법원 정보시스템 등을 운영하는 노동자들이다. 본래 공무원이 했던 업무지만, 97년경 외주화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용역업체에 고용돼 전국의 법원에서 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간 법원의 갑질에 시달려왔다고 호소했다. 20년차 법원 전산직 노동자인 A씨는 “한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집에 조립 컴퓨터 설치를 요구했다. 이를 거절하자 원청과 하청 간의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계약 내용에 집에 컴퓨터 설치를 요구할 수 있는 항목이 없자, ‘친절 교육이 안 돼 있다’며 친절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절 교육을 받았다”며 “자신들의 돈으로 자신들이 설치해야 하는 컴퓨터를 하청 노동자를 이용해 편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전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노조는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나중에야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노동이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창우 지회장은 “우리는 전산장비 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만 고도의 기술, 즉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 지속적인 유지 보수 업무를 하고 있다”며 “(만약) 우리가 고도의 기술을 활용한다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이 맞냐”고 되물었다.

김창우 지회장의 임금은 2017년 월 184만 원, 2018년 180만 원, 2019년 175만 원, 2020년 187만 원, 2021년 201만 원이다. 김창우 지회장은 임금이 꾸준히 오르지 않은 이유가 법원의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전례가 없는 제도인 할인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가 기재부로부터 용역 예산을 받으나, 이를 자체적으로 할인해 입찰단가를 낮춘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산 유지보수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법원이 중간착취로 하락시킨다는 게 김창우 지회장의 문제제기다.

‘삼권분립’ 때문에
근로감독 안 된다는 고용노동부


이러한 이유로 노조는 정규직 전환과 중간착취 중단을 요구해왔지만, 용역업체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노조는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노동실태 조사와 근로감독도 호소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삼권분립’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는 노조의 요청에 “공공부문 용역·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는 헌법기관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사법부 등 헌법기관에 행정부의 대책을 적용토록 한다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상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삼권분립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한다. 어이가 없고 답답하다. 삼권분립이 착취 개선이랑 무슨 상관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사법기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행정기관의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법원이 노조의 파업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원이 ‘파업에 나서지 말아 달라’, ‘파업 기간 때 해야 할 업무를 야간에 미리 해 놓고 가라’고 조합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최근배 지부장은 “근본적인 개선이 없는 상황 속 내몰린 우리는 파업을 강행하게 됐다”며 “법원은 전산직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심각한 중간착취를 당하고 있을 때는 나몰라라 하더니 이제 우리가 투쟁을 한다고 하니 갖은 회유와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에 노조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28일 확인하려 했으나 연결이 어려웠다. 

법원은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임금을 할인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편성된 ‘각급 법원 전산장비 운영 및 유지보수 사업’ 예산 범위 내에서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으며 정보와 기술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한 적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을 통해 “악의적인 회피다. 노조가 주장한 임금 삭감은 ‘등기전산장비 유지보수 운영 사업분야’에서 확인된 내용”이라며 “법원은 다른 용역인 ‘각급 법원 전산장비 운영 및 유지보수 사업’을 예로 들어 반박하고 있다. 법원이 예로 들은 용역은 법원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