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관세,‘철의 장막’
일본 비관세,‘철의 장막’
  • 승인 2004.10.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 기계 등 수요산업 ‘연쇄파동’ 우려

철강산업은 이미 지난 94년 우루과이 라운드 말라케쉬 협상에서 2004년부터 무세화에 합의, 한일 FTA의 관세인하 영향이 없다. 때문에 한일 양국은 철강산업을 ‘비민감 품목’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자동차, 가전, 기계 등 국내 철강 수요산업이 미칠 피해가 철강산업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13일 경제 4단체가 주최한 ‘한일 FTA 대 토론회’에서 한국철강협회 여완구 상무는 “국내 주요 철강수요 산업이 위축될 경우 FTA로 인해 철강산업이 직접 얻는 피해보다 간접적 악영향이 훨씬 커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그간 철강업계가 취해왔던 느긋한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말이다.

철골만큼 튼튼한 유통장벽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금년 1~5월 중 대일 철강수출은 1097천톤, 8.3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수입은 5264천톤, 24.8억 달러를 기록, 무역수지 적자가 15.6억 달러나 됐다. 국내 철강업계는 FTA 체결로 무역 역조가 심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FTA 체결시 일본의 비관세 장벽 때문에 한국산 철강제품의 수입은 크게 늘지 않는 반면, 한국에는 비관세 장벽이랄 게 별로 없어 일본의 대한국 수출은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관세 장벽이 이미 무너진 철강업계에서는 비관세 장벽이 한일 FTA의 ‘복병’인 셈이다. 업계는 이 중에서도 일본 철강업계의 폐쇄적 계열 거래 관행을 가장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꼽는다.

 

일본의 철강 유통은 종합상사를 통한 간접판매 방식으로 구조가 복잡해 외국기업의 실질적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수요자에 대한 직접 판매가 아니라 2차 가공설비를 보유한 종합상사를 통한 유통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철강제품의 유통구조는 약 10∼15개의 패턴으로 매우 복잡하다. 특히 이들 종합상사는 대부분 대규모 철강업체의 계열사로 신일본제철의 일본제철상사, 스미모또금속의 스미모또상사 등의 계열 관계는 부자지간에 비유될 정도로 끈끈하다.

따라서 한국의 철강업체가 일본의 종합유통상사를 통해 수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독자적인 유통 네트워크를 설치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한국은 생산자와 수요자 간 직접 판매가 대부분이어서 일본 철강 업체의 진출이 훨씬 쉽다. 유일한 철강 계열 유통사인 포스코의 포스틸도 소형 수요 위주의 대리점망으로 구성되어 있어 연결 관계가 그리 튼튼하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일본보다 경쟁력이 취약한 전기로업체의 유통망은 제각각이어서 일본 철강업계의 국내 시장 진출에는 장벽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일본의 공업표준규격도 장애물이다. 일본의 철강 수요업체들은 KS(한국공업표준규격)를 인정하지 않고 JIS(일본공업표준규격)를 요구하기 때문에 KS를 획득한 우리나라 업체들이 일본에 진출하려면 다시 JIS를 따야 하는 시간과 비용의 부담이 크다. 게다가 철강은 대·중·소형강재, 중후강판, 박판 등 품목이 100여 가지도 넘어 품목별 표준규격 획득에 따른 부담도 가중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러한 장벽을 상관행으로 규정, 비관세 장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향후 한국 기업의 대일 수출시 비관세장벽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업계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포스코 경영연구소의 유승록 박사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0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대일 수출시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유통구조(37.3%)’가 1순위를 차지했고 ‘정서적 요인(19.4%)’, ‘부대비용(13.4%)’ ‘JIS 규격(11.9%)’이 뒤를 이었다.

 

수요 업체 불똥 튀면 산업기반 붕괴 가능성 커
한편, 철강산업 자체의 피해만을 생각하던 업계가 자동차, 전자, 기계 등 관련 업계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철강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일 FTA가 현재와 같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는 것은 국내 철강 업계에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실익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 견해”라고 전했다.

연관 산업간 피해치 예측과 공동 대응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포스코 경영연구소 유승록 박사는 “철강 산업 자체로는 득도 실도 크지 않지만 철강 수요산업의 생산축소나 수익성 악화는 고스란히 철강산업에 반영된다”면서 “각 업계가 각개격파 방식을 취할 게 아니라 철강, 자동차 등 관련 업계의 공동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