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일터 폭염 대책 필요하다’ 말해도 반영 안 돼 열 받아”
“매년 ‘일터 폭염 대책 필요하다’ 말해도 반영 안 돼 열 받아”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7.27 19:18
  • 수정 2022.07.27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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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대책위,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
적극행정부터 법 개정까지···“사측·정부, 올해는 꼭 결과물 내놓길”
쿠팡 대책위가 26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무더운 7월, 폭염에 노동자가 쓰러졌다는 보도가 계속된다. 어떤 일터가 폭염에 이만큼이나 취약하다는 내용도 많이 보인다. 노동자들은 개선이 필요하다 말하고, 사측과 정부는 대부분 ‘반짝 대책’들을 내놓는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여럿 발의된다.

날이 선선해지자 기사는 뚝 끊기고, 정부는 다른 일에 골몰한다. 국회도 잠잠해진다. 그렇게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다. 내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은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열이 받는다”고 말했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쿠팡 대책위)가 26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쿠팡 대책위와 류호정·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온열병 예방을 위한 여러 방안이 논의됐다. 참여자들은 ▲WBGT 지수를 적용한 온열병 예방 대책 마련 ▲실내작업에도 옥외작업과 마찬가지로 강제력 있는 조치 도입 ▲‘고열작업’을 좁게 규정한 산업안전법시행규칙 개선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 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대안들이 올해는 사업장에서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쿠팡 대책은 효과 없어
피해 반복되지 않도록 올해 꼭 개선되길

“OO센터 현장온도, 출근시간 18시 30분, 현재 온도 36.1도, 습도 54%. 23시, 현재 온도 36.2도, 습도 55%. 푹푹 찌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요. 사원 한 명이 저와 같이 일하던 도중 어지럼증세로 중앙관리자한테 얘기하고 포도당 한 알을 주고 쉬고 오라고 했음.”

“7월 12일. 출근하고 현장에 도착해보니 등이 중간 중간 소등돼 있었다. 관리자한테 물어보니 현장이 뜨거워서 껐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동일함. 그래서 온도를 측정하러 중앙으로 갔다. 온도 측정 결과 놀랐다. 온도 측정 시간 18시 30분, 온도 37.3도, 습도 55%. 다시 온도를 보려고 갔었다. 온도계 치웠다. 확인 결과 중앙관리자 책상 위에 있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김형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에게 보내온 문자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형렬 교수는 이러한 쿠팡 물류센터의 사례를 바탕으로 정부의 ‘폭염에 의한 열사병 예방 3대 예방수칙 이행가이드’의 한계를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5월 29일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182건의 노동자가 죽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182명 중 사망한 노동자는 29명(15.9%)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열사병 예방 3대 수칙(물·그늘·휴식)과 함께 이행가이드를 발표한다.

이행가이드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규칙적으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치(물), 작업장소와 가까운 곳에 햇볕을 차단하고 시원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그늘),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시간당 10~15분씩 규칙적인 휴식시간을 배치하고 근무시간을 조정해 무더위 시간대에 옥외작업을 최소화(휴식)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동자가 폭염으로 작업의 중지를 요청할 경우엔 즉각 조치해야 한다. 폭염특보 시 실내작업장은 냉방·환기 등을 통해 실내온도를 적정수준으로 유지되도록 조치하고, 사업장 상황에 따라 필요시 업무량 조정과 휴식 등 추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형렬 교수는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는 실내사업장 사업주에게 폭염특보가 없을 때 특별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처럼 해석할 여지를 준다”며 “폭염특보는 외기 온도(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사업장의 실제 상황과 다르다. 고열 작업장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기에 앞서, 고열 작업환경 개선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쿠팡의 ‘쿠팡 폭염 대책 없다? 민주노총의 거짓 주장’ 카드뉴스에서 내놓은 폭염 대책도 미흡하다는 게 김형렬 교수의 비판이다. 앞서 쿠팡은 해당 카드뉴스에 “층마다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을 운영 중이며, 대형 천장 실링팬, 에어서큘레이터 등을 수천 대 설치했다. 기상상황에 따라 유급 휴게시간을 추가 부여하고, 얼린 생수를 무제한 지급하고 아이스크림을 무료제공”하는 등의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김형렬 교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에어컨 설치가 아닌, 작업장 온도를 낮추라는 것”이라며 “쿠팡은 작업장 온도를 직접 측정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안을 마련한 후, 이 대안이 실제로 얼마나 작업장 온도를 낮출 것인지를 말해야 한다”며 “매년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는 동안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우려된다. 긴급한 사안인 만큼 올해에는 꼭 어떻게 작업장을 바꿀지 결과물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온·습도·복사열 고려한 WBGT 지수
작업장 온열병 예방관리 지표로 삼아야

김형렬 교수는 온열병 예방 대책에 습구흑구온도지수(WBGT)를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위 지수’라고도 불리는 WBGT 지수는 열사병의 원인이 되는 기온과 습도, 복사(방사)열을 모두 고려해 고안된 지수다.

김형렬 교수에 따르면, 중증도의 노동강도로 일하는 쿠팡 노동자들은 실측 결과 WBGT 지수가 30을 넘을 때가 많았다. 이 수치는 하루 노동시간인 8시간 동안 4시간 일하고, 4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하는 정도라는 게 김형렬 교수의 설명이다.

두 번째 발제에서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센터장도 WBGT 지수 활용에 공감했다. 류현철 센터장은 “온열 질환의 위험이나 위해를 평가하기 위해 WBGT 지수를 지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내 사업장 폭염대책 부실
산안법 잘못된 탓···작업중지권도 중요

애초에 온열병과 관련한 제도가 잘못 설계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류현철 센터장은 “고열에 실제 노출되고 온열질환의 위험이 높아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정해진 장소로 분류되지 않으면 사업주가 보건조치를 수행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 여기에 고열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포함되는데, 고용노동부는 고열을 ‘열에 의하여 근로자에게 열경련·열탈진 또는 열사병 등의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는 더운 온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열이 폭넓게 정의된 것에 비해, 고열작업은 세부적인 ‘장소’로 규정돼 있다. 용광로나 전로에 의해 광물을 제련하는 장소, 녹인 금속을 운반하거나 주입하는 장소 등이다. 다시 말해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고열작업 장소에 포함되지 않으면 사업주는 보건조치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고용노동부가 정한 고열작업은 13개 항으로 구성되는데, 13번째는 ‘그밖에 고용노동부장관이 인정하는 장소’다. 이 장소는 현재까지 없다.

류현철 센터장은 “산안법과 시행규칙에서 정한 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관리와 개입이 없어도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고열작업 규정에 있어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장소’로 행정적 권한을 발휘할 여지를 주고 있는데, 이 여지를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폭염기 고열 노출 위험 사업장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먼저 WBGT 지수를 측정해 조사하고, 관리대상으로 편입시키도록 하는 적극 행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모두를 개정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선 실장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이게 고열작업을 정하고 있다. 이 고열작업을 더 확대하고, 작업장의 적정온도를 명시하는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실질화를 위해 작업 전 안전조치 보건조치가 미비한 경우에도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게끔 산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업주가 작업중지를 실시한 노동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하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도입하는 것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팡 대책위가 26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폭염 시기 노동, 온열병 예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토론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한편, 물류창고는 건축법상 ‘창고시설’로 분류된다. 창고시설은 냉난방설비와 공기조화설비 등의 기계설비를 설치했는지 확인받지 않아도 된다.

조정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지부 지부장은 토론회에서 “밤 10시 이후에도 실내기온이 32도를 육박하는 등 (물류센터) 노동자의 온열질환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냉방이 안 되는 현장 사진을 들어보이기도 했다. 

오민애 중대재해전문가넷 변호사는 “물류창고의 구조적, 기능적 특수성을 반영해 냉난방설비와 환기설비 등 창고 내에 설치되는 기계설비에 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류센터 사업주들이 창고건물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향후 건축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어 그는 “산업안전과 건축 관련 법령을 두루 살펴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적 보완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제도적 보완 전에 쿠팡을 비롯한 기업들이 노동환경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