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隨處作主
그리하여, 隨處作主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8.12.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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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저희 사무실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벽면에 족자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단 네 글자가 쓰여 있지요. 바로 ‘수처작주(隨處作主)’입니다. 이 글씨는 저희가 연남동 사무실에 옮겨올 때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께서 써주신 겁니다.

이 말은 ‘임제록’에 나오는 말로 뒤에 ‘입처개진(立處皆眞))’이 붙습니다. 풀자면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라”라고 할 수 있지요. 임제 스님은 중국 당나라의 선승입니다. 임제록을 인용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납자들이여, 불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 없이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잠자면 그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그러니 그대들의 수처작주(隨處作主)가 곧 그대로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다. 경계를 맞이하여 회피하려 하지 말라.”

겨울이 왔습니다. 그것도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연말에 영하 10도로 떨어진 서울의 기온이나, 1미터가 넘게 쏟아진 강원도의 폭설이 겨울임을 알리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경제 한파가 우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듭니다.

건설사들은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고 하고, 자동차 업체는 월급을 줄 수가 없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고, 고용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10여 년만에 다시 찾아온 혹독한 겨울이지요.

이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경구가 바로 ‘수처작주’가 아닐까 합니다. 어디든 자신이 머무는 바로 그 곳의 주인이 될 때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참여와혁신>은 2009년 첫 ‘이 달의 인물’로 한 평범한 ‘화장실 청소 아줌마’를 선정했습니다. 이 평범한 인물은 그러나 ‘수처작주’ 해 프로페셔널이자 전략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메모를 적어둔 수첩을 뒤적여 봤습니다. 그때 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적어 놓기도 하고, 또 때로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경구들도 남겨두는 수첩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여러분들께 제가 고른 경구들을 전해드립니다. 굳이 부연 설명은 필요치 않으리라 봅니다.

“시련에 직면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맞서 싸우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달아나거나.” (프랑스의 행동심리학자 앙리 라보리)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 (‘보바리 부인’의 작가 구스타프 플로베르)

“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거든 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라.” (아프리카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