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 경도된 탄소중립,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
원전에 경도된 탄소중립,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8.09 16:54
  • 수정 2022.08.09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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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투자
지속가능한 녹색 일자리, 노동정책 뒷받침돼야 가능

UN은 환경친화적 노동, 즉 녹색일자리(Green Job)를 ‘환경을 보존하고 재생하는 데 기여하는 농업·제조업·연구개발업·관리업·서비스업 등에 속하는 일자리’로 정의한다. 크게 ▲환경 보호나 재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생산하는 직업 ▲제품·서비스를 생산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유지하는 직업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녹색일자리는 특히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중국, EU, 브라질, 인도, 미국 등이 꼽힌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분야의 고용은 최근 10년간 약 570만 개(2012년)에서 1,200만 개(2021년)로 47.5% 증가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경우, 이 시기 일자리는 약 4,3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 증가는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산업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녹색일자리에 대한 높은 관심이 나은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석유 관련 학과 졸업생이 지난 5년간 무려 83% 줄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사회적으로 비난 받거나, 자신이 기여하는 업종에서 나오는 제품·서비스로 세계가 파괴된다면 그 직업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래에는 ESG가 중요하기 때문에 석유 관련 전공을 안 하려는 흐름 생긴 거로 볼 수 있다. 몇 해 전 셰일 혁명 등으로 석유 관련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다가 2017년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유가가 오르면 전망이 좋다며 관련 학과 지원이 몰렸는데, 이제는 유가가 올라도 관련 학과 입학을 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업황과 전공·일자리가 연동되지 않는 것이다.”

자연과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 기후정의에 민감한 세대의 등장, EU가 추진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러시아-서구권 간 갈등으로 촉발한 에너지패권 싸움까지. 에너지전환과 녹색일자리가 전 세계 화두가 된 현재, 한국의 상황을 진단·전망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7월 20일 그린피스, 에너지전환포럼,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은 ‘에너지 대전환과 일자리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7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지 대전환과 일자리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7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지 대전환과 일자리 토론회’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탄소중립 달성 과정,
재생에너지 늘릴수록 일자리 창출↑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내용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구축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향상 방안에는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송전 효율성 강화 등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정치경제연구소(PERI)는 한국에너지공단의 ‘2020 신·재생에너지 백서’를 인용해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와) 에너지 효율 개선을 함께 추진한다면, 2050년 국내 총에너지 수요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약 85%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에너지를 완전히 퇴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이 같은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원 개발에 투자한다면, 대규모의 신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PERI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191만~226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로 나타났는데, 이는 한국 경제활동 인구의 3~5%에 해당하는 수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까지 81만~8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 후 2050년까지 110만~14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로 연구진은 예상했다(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45% 감축 기준).

로버트 폴린 메사추세츠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화석연료 에너지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며 “화석연료의 단계적 중단으로 발생하는 수입대체 효과는 고용 창출의 주요 원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입 화석연료를 대체해 국내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면, 관련 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로버트 폴린 교수는 “노동 생산성 향상을 반영할 경우에는 고용 효과가 다소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전환에서 유의할 부분은 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경우 사라지는 일자리다. 화석연료 퇴출로 2050년까지 사라질 일자리 수는 약 19만 개로 추정된다.

먼저 화석연료와 자동차 산업 등에서 예측되는 실직자는 자발적 은퇴자를 제외하면, 2022~2030년 해마다 평균 8,600명 수준이다. 이러한 일자리 감소는 2031~2035년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PERI는 분석했다. 정부 계획대로 2035년 내연기관차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가정하면, 자동차 생산 부문에서 매년 1만 1,5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화석연료·원자력 발전에서도 매년 약 3,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어, 5년 동안 해마다 총 1만 4,500명의 고용 감소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감소 규모는 점차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2036~2050년 자동차 산업에서 추가적인 실직자는 없고,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 부문에서만 1년에 3,000명 규모가 발생할 전망이다.

로버트 폴린 교수는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줄어드는 일자리는 신규 일자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모든 노동자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원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PERI 연구진은 매년 7,000~9,000명의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은 이전 직업과 비교해 적어도 같은 수준이어야 하며, 임금 보험을 통해 이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교육·재배치 지원 ▲거주지 이동이 필요할 경우 이사 비용 원조 ▲직장 이전 시 기존 연금 보장 등을 언급했다.

“윤 정부, 원전에 경도된 탄소중립은 시대착오적”

재생에너지 부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지원은 상당수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미국 등에서는 태양광·풍력 발전을 중심으로 관련 일자리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은 그에 역행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연말까지 수립할 예정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보완한다지만,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구체성이 너무 떨어지고 원전에 경도된 전원믹스”라며 “현시점에서 국가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을 원전 산업 살리기에 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안타깝다”고 진단했다.

홍종호 교수의 지적처럼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선 원전이 두드러진다.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기존 원전 운전 유지 등으로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반면 재생에너지·석탄·가스의 비중을 어떻게 둘 것인지는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석탄과 가스 발전 비중 계획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책을 두고 홍종호 교수는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 부실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전산업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무시하거나 포기하면, 재생에너지 시장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관련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감소할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탈탄소 무역장벽에 대처하기 어려워 한국 산업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종호 교수는 “최근 환경부가 원자력으로 기존의 석탄·가스를 대체한다는 의지를 표방했는데, 새로운 원전을 짓더라도 가동은 한참 뒤의 일이어서 과연 효과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일지 의문이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동시다발적으로 발 빠르게 지을 수 있고, 엄청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재생에너지를 생각하는 게 새 정부의 마땅한 소임”이라고 주장했다.
 

한화큐셀이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한 태양광 발전소 ⓒ 한화큐셀
한화큐셀이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한 태양광 발전소 ⓒ 한화큐셀

업계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재생에너지 부분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태양광 전문 기업인 한화솔루션 큐셀의 정규창 부문파트장은 미국을 예로 들었다.

지난 6월 발간된 미국 에너지국의 보고서(USEER 2022 National Report)를 보면 2021년 기준 미국 전력 산업 일자리의 약 39%(약 33만 명)가 태양광이며, 풍력(약 12만 명)을 포함하면 53%에 달한다. 그중 태양광 일자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2019년 수준까지 회복은 못 했지만, 2020년 대비 약 5,4% 증가하며 전체 전력산업 일자리 증가를 견인했다. 태양광 일자리 중 건설업이 약 5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전문서비스업, 제조, 도매, 발전업이 뒤를 이었다.

정규창 부문파트장은 “전원믹스로 따지면 태양광은 미국에서 아직 3~4%에 불과한데, 태양광 종사 인력이 약 40%라는 점은 (고용 창출 면에서) 의미하는 바 크다”고 평했다. 이어서 “건설업이 잘 된다는 것은 업황 수요가 유지된다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설치 수요가 높아지고, 건설업 수요도 증가하면서 오히려 인력 수급이 어렵다는 반응이 미국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상원에 계류 중인 ‘태양광세액공제법(SEMA)’가 통과되면 제조 분야 일자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SEMA는 미국에서 생산한 태양광 제품에 세금 혜택을 주고자 발의됐다.

정규창 부문파트장은 한국도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효과적으로 창출하려면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 태양광 업체의 77%가 실상 1인 사업장, 중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 편중돼있다”며 “일자리라기보다, 사업자, 투자자 개념이 강해서 일자리 창출과 연결될지 의구심이 있다. 건설업·제조업 등 전통적인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창 파트장은 “정부의 산업·보급 정책 없이는 신규 발전사업자의 진입, 전통적인 일자리 수 증대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펼쳐야만 일자리를 창출이 원활할 것”이라고 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독일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전격 추진하며 일자리 부족이 아닌 인력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독일 기업은 재생에너지 확대로 RE100 대응과 탄소배출권 구매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같은 제조 기반 수출국인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 정책과 너무 대비된다”고 비판했다.

지속가능한 녹색일자리,
노동정책 뒷받침 없으면 어려워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올바른 대응이 맞물린다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의 질’은 다른 문제다. 조은주 경기도일자리재단 청년일자리 본부장은 이 부분에서 정부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정부의 녹색 일자리 정책은 산업 분야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일자리 질 차원에서 지속가능하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괜찮은 일자리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조은주 본부장의 평가다.

조은주 본부장은 청년 일자리 매칭을 위한 실사 경험을 토대로, 질 좋은 녹색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탄소 저감을 위한 제품 생산 등과 관련한 공정에서 청년을 필요로 한다. 사실 큰 기술을 요하는 영역은 아니다. 그런데 산업단지 내 업체들의 경우, 적지 않은 돈을 준다고 해도 청년을 고용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문제는 지속가능한 녹색일자리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일자리도 있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조직문화도 청년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일자리 환경 개선 사업이나 보조금 지급은 이들 열악한 사업장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은주 본부장은 “산업계에 빈익빈 부익부가 있어서 저탄소 관련 재료 가공·생산하는 사업장 중 정부 보조금 수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탄소중립에 반드시 필요한 영역인데 열악한 사업장이라면, 노동환경을 개선할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녹색일자리 창출은 중앙정부에만 맡겨둘 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조은주 본부장은 “해당 기업이 실질적으로 고용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노동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중앙정부도 할 수 있지만, 지자체도 사회적 대화로 청년에게 괜찮은 녹색일자리 마련에 나설 수 있다. 가령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보여준 것처럼 주거·문화·복지 지원 등 생활비를 낮추는 노동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