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도 포기도… 내년엔 둘 다 끝냅시다
절망도 포기도… 내년엔 둘 다 끝냅시다
  • 안상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 승인 2009.01.02 16:54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장인 8명 중 1명은 투잡족…경제위기 속 희망 찾기

안상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연말 저녁, 기분 좋게 취한 팀장이 대리운전을 기다린다. 그런데 대리운전을 하러 온 사람을 본 팀장은 당황해 한다. 황급하게 달려 온 대리운전기사는 바로 팀원인 이 대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쓱하게 차를 타고 가게 된 두 사람, 이 대리는 “요즘 아이들 학원비가…”라며 밤늦게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를 말한다.

이 때 팀장은 이렇게 이 대리에게 말을 던진다. “낮에도 대리, 밤에도 대립니까? 내년엔 둘 다 끝냅시다.” 팀장의 기분 좋은 한마디에 이 대리는 환하게 웃고 멀어져 가는 이들의 모습 위로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라는 카피가 뜬다.

낮에도 대리, 밤에도 대립니까?

연말연시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LG텔레콤의 광고 캠페인 중 하나인 ‘오주상사 영업2팀 대리인생’ 편이다. 이 광고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대리’라는 설정이다. 흔히 직장생활에서 가장 지루하고 힘든 시기라는 대리, 그리고 아이들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대리운전에 나선 투잡족(Two job族) 대리가 주인공이라는 점은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8명 중 1명은 부족한 생활비 마련 등을 위해 본업 외에 한 가지 이상 부업을 하고 있는 이른바 ‘투잡족’인 걸 감안한다면 이 대리의 대리운전 이야기가 그저 광고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광고를 보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리얼 직장인’이라는 설정이다. 이 광고캠페인에 등장하는 팀장과 팀원들은 ‘오주상사 영업2팀’이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의 광고에 등장하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꽉 찬 올드미스에 유학파라지만 영어울렁증이 있는 팀장, 폼생폼사 말고는 딱히 다른 능력은 없어 보이는 차장, 촐랑대서 손해만 보는 과장, 눈치 없는 애교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대리, 그리고 선배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는 꽃미남 신입사원…

이들은 사내에서 ‘봉숭아학당’이라고 불리는 골칫덩어리 영업2팀이다. 광고는 무실적 무관심 속에 근근이 버텨 오던 이들이 성공을 향해 심기일전한다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 LG텔레콤

내년엔 잘 될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대리인생’ 편의 시트콤 버전은 우리의 현실을 더 솔직하게 보여 준다.

영업2팀의 송년회 날, 팀원들은 이 대리의 집으로 2차를 가려고 대리운전을 기다린다. 우리의 이 대리는 술에 취해 “제가 대리에요. 왜 있는 대리를 안 찾고 다른 대리를 찾으세요?”라고 대꾸한다. 그런데 대리운전기사가 도착한 후 이문식 대리의 표정은 심상치 않다. 우연하게도 대리운전기사는 이 대리와 너무 닮은꼴이고 다른 팀원들이 이를 보고 웃는다.

대리운전기사는 이문식 대리를 쳐다보다 그만 급정거를 하게 되고 뒷자리의 앉은 팀원들의 투덜거림 속에 이 대리는 대리운전기사에게 눈빛으로 말한다. ‘형, 미안해’ 알고 보니 대리운전기사는 바로 이문식 대리의 친형이었던 것이다. 삶에 지친 형은 눈빛으로 대답한다. ‘괜찮아, 너도 힘들지? 잘 될 거야…’

인터넷에서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의 댓글 중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나도 이 대리인데요… 화이팅하세요!”
며칠 전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근무하는 후배에게서 송년회를 하자며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말에 생산라인을 멈추기로 해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후배도 대리였다.

낮에는 불황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평범한 대리로 그리고 밤에는 또 다른 대리로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새해엔 힘이 되어주는 광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주상사에 다니는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을 위해 광고 속에 나왔던 장미희 팀장의 응원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한다. “절망도 포기도…내년엔 둘 다 끝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