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의 법익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
취약계층의 법익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1.0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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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생활법률상담으로 노동자·시민들과 함께
예비직장인 교육, 길거리 법률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우리가 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한국노동운동의 선구자이자 초석이 된 전태일은 생전에 근로기준법을 독학하면서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거의 40여 년 전 한자로 가득한 법전을 보며 그가 느꼈을 무력감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후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 친구와 지식인들의 지원을 받아 노동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제 근로기준법은 모든 노동운동의 기본이 되었으며, 노동조합 스스로 노동법과 관련한 여러 법률서비스를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나마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여전히 더 많다.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한국노총은 산하기관으로 중앙법률원을 운영하고 있다.

▲ 예비직장인 교육 장면 ⓒ 성남 노동법률상담소 제공


노동자, 시민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자체를 몰라서 피해를 당했던 과거에는 법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현재는 노동운동도 발전을 거듭해 노동조합도 담당 변호사를 둘 정도로 법적 지위가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의 끊임없는 발전과정 속에서 노동법 또한 매우 복잡해지고 있고, 과거 투쟁 위주의 노사관계가 이제는 법률적 대립의 관계로 발전하고 있어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는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나 업무방해 등이 크게 늘어났고, 정리해고 시행 이후 부당해고 관련 소송도 늘어나서 노동계에서 법적 보호를 위한 활동 영역은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원장 정광호)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19개 지역에 노동법률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 법률상담소는 지역 노동자들의 법률적 보호를 위해 상담과 조언 뿐 아니라 법적 소송에 대비한 서류 작성 등을 돕고 있다. 각 지역 법률상담소 담당자들에 따르면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오는 문제는 부당해고와 체불임금 관련 사항이라고 한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나 비정규, 중소,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의 문의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전북지역 법률상담소 유장희 소장은 “찾아오신 분들은 대부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오는 경우”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것을 봤을 때 법률문제 이전에 노사간의 신뢰문제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노총 중앙법률원과 지역 법률상담소는 노동법률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법률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일반 시민들의 법률상담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중앙법률원 지정희 국장은 말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 법률상담원들은 “노동문제보다 이혼, 채무 문제를 더 많이 다루게 되었다”고 웃는다.

지노위 활동에서 지역 법률상담소의 역할 중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이러한 일반시민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법률상담 뿐 아니라 지역 노동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1일 법률교실’도 각 지역별로 상시 운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소속 조합원을 보호하고 원활한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현재 노사관계는 과거의 물리적 충돌에 의한 해결보다는 법적 해결을 통한 접점 찾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관계로 노동법의 이해는 노동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지역 법률상담소가 지역 노사 화합을 주도하는 곳도 있다. 대구와 구미지역 노동법률상담소의 경우 지역의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지청과 함께 노사화합 선언과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 시행하고 있다. 구미지역 노동법률상담소 박미숙 부장은 “대구, 경북 지역은 노사가 지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노사화합을 위한 워크숍에서부터 노사화합 한마당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노사분쟁 해결을 위한 지역노동위원회 활동 또한 법률상담소의 중요 역할 중 하나다. 지역 법률상당소장은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던 관계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노사 분쟁에서 양측의 입장을 두루 포괄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역노동위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역에서 오랜 활동으로 다져진 인맥은 이러한 분쟁 해결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각 지노위에서는 조정전치제도를 통해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에 지역의 유능한 지노위원을 파견해 분쟁 발생 이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북지역 노동법률상담소 유장희 소장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북지역 지노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장희 소장은 “충분히 서로를 고려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고집만 부려서 서로 피해보는 경우가 잦다보니까 조정위원이란 명함이 무색하게 가끔 노측과 사측 양측에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노사 양측이 문제를 해결하고 악수를 나눌 때는 웃으면서 끝날 수 있어 앞으로도 그렇게 호통을 칠 예정”이라면서 웃었다.

시민 밀착형의 다양한 법률활동

▲ 성남 노동법률상담소가 길거리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 성남 노동법률상담소 제공
한국노총 중앙법률원과 산하 지역 법률상담소는 과거 노동조합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을 중심으로 전개하던 법률 서비스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 서비스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성남지역 법률상담소의 ‘길거리 법률상담’이다. 매년 7월경 사법연수원에서 사회봉사활동을 나온 사법연수생과 협력변호사, 상담원, 지역 노조 간부 등이 지역민들이 자주 다니는 시장이나 지하철 역 앞에서 길거리 무료 법률상담을 실시한다. 경제적 문제로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지역민들은 이러한 길거리 법률 상담을 크게 환영했다.

성남지역 노동법률상담소 이정익 부장은 “7월의 뙤약볕에 땀을 흘리며 앉아 있어도 시민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노동운동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며 “상담소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서비스로 지역민과의 관계를 더욱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부천지역 노동법률상담소가 운영하는 노동포털 사이트 ‘노동OK’는 노동법 관련 사이트 중 가장 유명하다. ‘노동OK’는 사이트의 프리뷰 순위를 정하는 랭키닷컴에서 직장인 관련 커뮤니티 부문에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노무사들이 인터넷 상담을 하고 있지만 1998년, 모뎀으로 인터넷을 할 당시 아무도 인터넷 상담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 때 ‘노동OK’는 탄생했다. 대부분 인터넷 상담이 의례적인 답변으로 흐르는 것과 달리 ‘노동OK’는 법조항에서부터 판례까지 자세하게 다루어서 의뢰인들을 흡족하게 하고 있다.

부천지역 노동법률상담소 심재정 소장은 “인터넷 상담은 빠른 답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새벽에도 자료를 찾아 올려주는 경우가 많다”며 “판례부터 법적 처리 방법까지 알려주다보니 구전으로 알음알음 찾아와 어느새 유명 사이트가 되었다”고 밝혔다. 상담원 2명이 이러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심재정 소장은 “능력은 부족하지만 가능하면 의뢰인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비직장인 교육’ 인기 높아

이러한 활동과 함께 중앙법률원이 2008년부터 각 지역 노동법률상담소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예비직장인 교육’이다.

‘예비직장인 교육’은 취업을 앞둔 고3 학생을 대상으로 직장인이 알아야 할 예절 및 근로기준법을 교육함으로써 향후 직장생활을 함에 있어 예상되는 어려움을 사전에 예방하고, 더불어 회사 생활 중 겪게 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능력의 향상을 위한 교육이다.

이 교육은 이미 지난 2004년부터 한국노총 경기본부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경기지역 노동법률상담소가 지역 경총, 경기도와 함께 진행한 사업으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약 3만 명의 경기지역 고3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 예비직장인 교육을 담당할 강사 교육에 참가한 지역법률상담소 소속 상담사들 ⓒ 정우성 기자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정희 국장은 “현행 중고생의 교과내용에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지식에 대한 어떠한 것도 담겨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나날이 노사관계는 복잡한 상황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어떠한 대처도 없이 사회에 진출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예비직장인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경기지역에서만 실시됐던 ‘예비직장인 교육’을 경총과 함께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키로 하고 2007년 9월부터 광주, 전남을 비롯해 대구, 전북, 부산, 울산, 제주 등 각 지역 교육청을 방문해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서울을 제외한 지방 교육청에서는 환영을 뜻을 밝혔다. 취업을 앞둔 실업계 고등학교와 수능이 끝난 후 고3 학생들의 교육일정에 고심하고 있던 각 학교들은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교육을 크게 반겼다.

‘예비직장인 교육’에 대한 공문이 전국의 각 고등학교에 발송되자 중앙법률원과 지역 법률상담소에는 교육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2008년 7월, 성남에 위치한 양영디지털고등학교부터 실시된 ‘예비직장인 교육’은 총 94개교 1만7천여 명이 참여했다. 중앙법률원은 이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포스터 6천장, 교육용 책자인 ‘예비직장인 길라잡이’ 2만부를 제작?배포했다. 그러나 참여를 희망하는 학교가 계속 늘어나자 ‘예비직장인 길라잡이’는 급하게 1만부를 추가로 제작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 2008년 '예비직장인 교육' 실시 학교


교육이 진행될수록 학교 측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교육이 진행되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학교 측에서 재교육을 요청하거나 교육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을 지역 법률상담소로 보내 따로 교육을 받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남 법률상담소 이정익 부장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학생이 들어서 집중이 안 되니까 6번에 나누어서 진행하자는 학교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전남 법률상담소 김영우 소장은 “도서지역의 학교도 교육을 신청하고 있는데 배 타고 오전에 출발해서 교육하고 돌아오면 하루가 다 간다”며 “비록 20여명의 학생들이지만 교육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법률상담소 유장희 소장은 “교육을 진행한 학교장이 내년에도 꼭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예약을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도 ‘예비직장인 교육’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성남지역에서 교육을 받은 한 학생은 “강의를 듣자 내가 그동안 해 온 아르바이트 등이 다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는데 조금은 걱정을 던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2009년도에는 ‘예비직장인 교육’을 더욱 확장할 예정이다. 현재는 인원과 예산이 부족해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예산 확보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또한 2학기 후반에 집중되어 있는 교육을 전반기에도 실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정할 예정이다.

인력부족으로 사업 진행에 차질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활동도 각 지역 법률상담소는 인력과 재정적 지원의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한국노총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지역 법률상담소는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담소의 업무는 대부분 상담업무, 교육업무이기 때문에 인력의 활용이 가장 중요함에도 현재 전국 19개 지역 법률상담소에 정규 인원인 3명(소장, 부장, 상담원)을 다 채운 지역 법률상담소가 단 한 군데도 없다. 소장이나 부장 1명만 근무하는 곳도 6곳에 이른다.

이는 지역 법률상담소 운영 재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법률상담소가 지역 근로복지회관을 빌려 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금은 대부분 인건비로 들어간다. 그러나 상담소장도 계약직으로 연봉 2000만원인 상태에서 인원을 더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북지역 법률상담소 유장희 소장은 “솔직히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께 차라도 한 잔 정성껏 대접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월급을 쪼개 대접하는 형편”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광주지역 법률상담소 신문호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의뢰를 온 사람에게 같은 비정규직인 우리가 법률 상담을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내가 뭐 하러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막상 어려운 근로자들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또 힘을 내서 출근한다”고 밝혔다.

상담소 직원들의 처우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이 없어서 지역 법률상담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법률상담에서부터 지역 노동자 교육, 예비직장인 교육, 지방노동위원회 활동, 노사 문제 발생 시 이에 대한 조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인원 부족으로 한 사람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과되거나 아예 일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남지역 법률사무소 김영우 소장은 “지역 HRD 사업과 지역 노사정협의회에 참여하다보면 상담일에 소홀해 질 경우도 있고, 상담일에 치중하다보면 이러한 일이 진행이 안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인원 충원을 중앙법률원에 요청하고 있지만 재정적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쉽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예비직장인 교육’에서도 이러한 문제로 인해 학교 측이 교육을 요청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경기도의 이천, 여주, 양평에는 지역 법률사무소가 없어 이를 한꺼번에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 성남지역 법률사무소 이정익 부장은 “교육할 수 있는 인원이 1명인 상황에서 성남, 이천, 여주, 양평까지 맡아서 진행하기는 무척 어렵다”며 “양평 쪽에서 요청이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다른 학교와 겹쳐 시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 지역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상담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저소득층과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 스스로가 비정규직이고 박봉임에도 밝은 모습으로 상담에 나서고 있다.

법률서비스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노총 지역 법률상담소가 비정규,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법률서비스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저소득층까지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대를 통한 인력의 충원이 시급해 보인다.

   
▲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정광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