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지엠 ‘폐쇄’와 ‘매각’의 20년
[기고] 한국지엠 ‘폐쇄’와 ‘매각’의 20년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0.19 04:29
  • 수정 2022.10.19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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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원 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지엠부품물류비정규직지회 지회장
ⓒ 금속노조 경남지부
18일 금속노조가 창원지법 앞에서 ‘잔치날에 손님을 가려받겠다는 한국지엠 규탄한다 한국지엠은 가처분이 아닌 복직 약속을 이행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속노조 경남지부

2002년 10월 17일 한국지엠이 출범하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제너럴 모터스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대우가 출범했습니다. 대우의 이름을 남겼던 회사는 그러나 이후 대우의 꼬리표를 떼고 한국지엠이 됐습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2022년 10월 19일 20주년 기념식을 창원공장에서 연다고 합니다.

2000년 7월 대우자동차 창원공장 조립부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저는 2002년 창원부품물류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대우차의 몰락과 지엠의 인수, 한국지엠으로의 변신까지 모두 지켜봤습니다. 물론 지금은 해고자의 신분이 되어 20주년 기념식을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지엠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현장의 노동자로 지켜본 기억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너럴 모터스, 즉 지엠은 대우자동차를 말도 안 되는 헐값에 샀습니다. 당시 언론과 정부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국제화, 선진 경영기법의 도입이라며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지엠은 베트남공장을 매각해 현금을 챙겼습니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지엠은 유럽, 러시아 등지에서 영업하던 지엠의 쉐보레 브랜드 사업을 접으면서 철수 비용을 지엠 본사가 아니라 한국지엠이 지불하게 했습니다. 이익은 빼가면서 손실은 한국 법인에 덮어 씌었습니다.

이때 지엠의 본색을 눈여겨봤더라면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조금은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한국지엠은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결국 매각했습니다. 부평공장 바로 옆의 LOC부지도 따로 떼 매각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던 정비소 부지는 절반을 떼 매각했습니다. 동서울정비소 땅도 같은 방식으로 매각했습니다.

땅만 떼다 판 것이 아닙니다. 사업도 꾸준히 정리했습니다. 처음엔 인천부품물류센터를 폐쇄했고, 같은 방법으로 창원부품물류센터를 폐쇄했습니다. 부품물류센터가 없으면 부품 수급이 원활할 수 없으니 철회하라는 협력사와 정비센터의 원성에도 제가 일했던 센터의 폐쇄를 강행했습니다.

완성차 사업에서 연구개발과 생산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에도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 법인으로 억지 분할했습니다.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줄여서 GMTCK라는 어려운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생산법인은 지엠코리아(GMK)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에는 부평2공장 폐쇄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에 제대로 기억하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한국지엠 20년 역사에는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바로 ‘폐쇄’와 ‘매각’입니다. 이 두 단어가 한국지엠 20년 역사의 거의 모든 것입니다. 아마도 올해 20주년 행사의 제목은 ‘한국지엠 폐쇄와 매각의 20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반대 투쟁으로 1,753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일거에 해고됐습니다. 적지 않은 수가 감옥까지 갔습니다. 이후 해고자들은 알음알음 복직을 이루었으나, 비정규직이 그 비극을 떠안았습니다. 폐쇄와 매각의 반복으로 수많은 비정규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해고당했습니다. 그렇게 거리로 밀려난 비정규 노동자들은 창원에서, 부평에서, 아직도 길거리에서 복직을 위해 싸우며 힘든 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지엠 20주년 기념식에 우리 비정규 해고 노동자들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초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찾아가 한국지엠 20년의 역사에 우리 비정규직의 자리도 분명히 있었음을, 그리고 회사가 마음대로 그 흔적을 지워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부평, 창원, 창원물류 3개 비정규직지회 노동자가 공장 담 바깥 100미터 이내에는 얼씬도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습니다.

우리는 지엠 본사가 있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 법의 적용을 받고 법은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해고 노동자이고 금속노조 한국지엠비정규직 조직의 조합원입니다. 지금 거리에 돌아다니는 지엠과 쉐보레의 자동차 중에는 우리 해고자의 손으로 조립했거나 우리 손을 거친 부품으로 채워진 차가 한둘이 아닙니다.

공장 안으로 불러 행사에 함께하자고는 못 해도 공장 밖에서 외치는 절규조차 듣기 싫다며 자기네 주변이 아니라 아예 공장 근처에도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어달라고 법원에 달려가는 행동이 과연 상식적인지, 아니면 이런 황당함이야말로 ‘글로벌 선진 경영기법’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무서워서 이럴까요? 한국지엠은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불법파견 문제로 글로벌 지엠이 보낸 외국인 사장은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승소 판결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한국법을 지키지도 않고 또 가볍게 무시하면서 자기네가 필요할 때는 무리하면서까지 법의 보호막 안에 들어가려 합니다. 법의 정의가 참 선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지엠은 ‘미국에서는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창원부품물류센터 폐쇄 과정에도 미국식은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미국에서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미국이 그렇게 하면 한국도 똑같이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지엠은 스무살이 넘었습니다. 떼 낼 수 없는 역사인 대우자동차 시절까지 생각하면 그 배에 가깝습니다. 우리 상식에 스무살만 넘으면 성인입니다. 성인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20년이 넘게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한국지엠이 이름 그대로 한국의 기업으로서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20년간 이어진 비정규직 문제와 해고 노동자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오늘의 행사가 지난 시간 동안 쌓은 한국지엠의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고, 또 사과하는 성숙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 ‘제로’의 의미가 비정규직을 다 잘라서 제로가 아니라 그간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 공장 폐쇄로 쫓아낸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해 만드는 진짜 제로여야 합니다.

지난 20년간 일했던 공장, 그 스무해를 축하하는 자리. 저는 거기에 함께하지 못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아마 내일도, 그 다음날도 ‘복직 쟁취’를 들고 공장 앞에 서 있을 겁니다. 아니 서 있겠습니다. “비정규직 철폐, 해고자 복직”을 한국지엠 역사에 당당히 새겨 넣을 때까지 서 있겠습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도중에 회사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창원지법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로베르토 렘펠 한국지엠 사장에 대한 근접 접근 금지는 인용했지만, 공장 출입과 집회·현수막 게시 등 회사가 요구한 다른 모든 금지 사항이 기각됐습니다. 법원도 상식과 도를 넘는 주장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양입니다.

법원의 뜻하지 않은 응원까지 받았으니, 이제 더 힘을 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창원공장 출근선전 투쟁을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