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 보호 제도 형식적”... 실효성 제고 필요
“감정노동자 보호 제도 형식적”... 실효성 제고 필요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2.10.19 08:53
  • 수정 2022.10.19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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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2022 유통산업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 개최
고객 대응 매뉴얼 등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 개선해 감정노동자 보호해야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걸스카우트연맹 회관에서 ‘유통 현장의 감정노동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4년, 변화와 과제’ 2022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걸스카우트연맹 회관에서 ‘유통 현장의 감정노동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4년, 변화와 과제’ 2022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유통산업 감정노동자를 위한 고객 대응 매뉴얼이나 심리상담 지원 등의 보호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형식적일 뿐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법 개정, 노사 협력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걸스카우트연맹 회관에서 ‘유통 현장의 감정노동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4년, 변화와 과제’ 2022 감정노동 실태조사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공동 주최했다.

이 자리에선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4년을 맞아 올해 유통산업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올해 8월 10일부터 9월 2일까지 온·오프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고 서울지역 마트·백화점·면세점 감정노동자 980명이 조사에 응답했다. 설문지 내용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초안을 바탕으로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의 자문을 통해 수정됐다.

실태조사에서 감정노동과 관련된 항목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고객응대 근로자의 감정노동 평가 지침’에 있는 한국형 감정노동평가도구(감정규제, 감정부조화, 조직 모니터링, 감정노동 보호체계 등)를 활용해 감정노동의 위험 수준을 측정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발제를 맡은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했다.

외적 감정과 내적 감정의 괴리
‘감정부조화’ 위험도 86.6%

조사 결과 ‘감정부조화’ 위험 수준은 86.6%로 나타났다. 감정부조화는 고객 응대 과정에서 고객과 갈등이나 재량권 부재 등으로 인해 감정노동자들이 자존심이 상하는 등 정서적 손상이나 감정적 어려움의 정도를 뜻한다. 아울러 감정조절에 대한 노력의 정도 등을 의미하는 ‘감정규제’ 위험 수준은 47.2%였다.

감정노동의 주된 원인으로는 ‘민원인의 과도하고 부당한 언행 및 요구’가 51.7%, ‘민원 발생에 대한 두려움’이 46.8%, ‘원청의 과도한 서비스교육으로 고객·직원의 자세 등 인식 고착화’가 24%, ‘불합리한 업무처리방식’이 23.5%, ‘업무감시’가 18.8% 등 순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자들은 고객 응대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당하고 관련 태도가 인사고과나 평가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는 ‘조직 모니터링’이라는 항목으로 측정됐는데 그 위험 수준은 27.5%였다. 지난 1년간 고객 컴플레인 및 모니터링 결과로 인한 불이익 경험률은 8.4%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중 고객센터·안내(20.7%)와 계산원(14.7%) 업무 종사자들의 불이익 경험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고객 대응 매뉴얼 등 있어도
실제로 감정노동자 보호 안 돼

한편 고객 대응 매뉴얼 등의 제도는 어느 정도 마련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양경욱 순천향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백화점·면세점의 단체협약에서 회사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며 “로레알이나 이마트·홈플러스 매뉴얼에는 컴플레인한 고객유형별로 상세한 응대요령을 제시하고 있어 우수한 매뉴얼 사례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뉴얼 내용과 현장 업무 사이에 괴리가 있어 실제로 매뉴얼에 따라 감정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 노동자 1명이 근무하는 경우 무례한 고객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를 분리시키는 등 조치를 취할 관리자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상주하는 안전요원들이 부족해 위급상황 시 이들을 호출해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형마트의 경우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매뉴얼 교육이 미흡하다는 증언과 소수 인원만 근무하는 야간에는 현장에 상주하는 관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감정노동자 심리상담 제도가 있어도 근무 외 시간에 이용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증언·사례들은 실태조사 기간 내 유통산업 노동조합 간부 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를 통해 수집됐다.

설문조사에서도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체계적인 대응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고객응대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차원의 관리방안이나 조치가 이루어지는 정도 등을 측정한 항목인 ‘감정노동 보호체계’ 위험 수준은 86.9%로 나타난 바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안법 개정해
원청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책임 명시해야”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실효성 있는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에 토론자 대부분이 공감했다. 이들은 감정노동자 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개선을 요구했다.

양경욱 조교수는 “매뉴얼 교육 또는 감정노동 교육의 주기적 시행, 무례한 고객에 대한 응대 중단 및 고객과 분리될 권한 보장 등을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정확히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감정노동자 존중 안내문에 대한 크기나 부착 장소 등도 세부적으로 규정해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인임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정책팀장은 “대부분의 백화점·면세점과 일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입점업체 소속으로 실질적인 사용자가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감정노동 보호조치를 요구하기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를 입점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도급사업주로 정의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이에 따라 유통업체들이 감정노동자 보호를 포함해 산안법상 책무를 다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언급된 롯데백화점의 협력업체 노동자 건강보호 활동 등을 두고 “원청인 백화점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취한 조치”라며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원청 유통업체들의 책임 강화를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구자범 롯데백화점 본점 지원팀 매니저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노동자 보호 활동 및 추진 방향을 설명한 바 있다.

“노사 협력 강화해 제도 모니터링하고
노조 캠페인 등 활동 확대해야”

또한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노사 협력을 강화하고, 특히 노조는 제도 모니터링 및 캠페인 활동 등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산안법상 노사 공동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다. 감정노동도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 위원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관련 조치의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발언했다.

정흥준 교수는 “감정노동자는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을 수행하지 않기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기서 급박한 위험이 너무 추상적인 상황”이라며 “노사가 생각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어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노조 활동이 조합원 보호를 위한 단체교섭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사회적 캠페인 등으로 노조 활동 영역을 넓혀 미조직 노동자의 감정노동 보호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연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백화점·면세점이라고 하는 원청과 노동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반드시 감정노동자 보호에 있어서 협력적인 관계가 돼야 한다”고 하면서, “노동조합 조합원 보호를 넘어 더 넓은 범위의 노동자 보호를 위한 캠페인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