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사, 노·정 갈등 어디서 증폭되나
2023년 노·사, 노·정 갈등 어디서 증폭되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2.06 14:23
  • 수정 2023.02.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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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서 전문가주의는 득세, 사회적 대화 약세
고금리 고물가·법치주의·산업전환 속 갈등 첨예하게 표출될 가능성

[리포트] 노·사·정·학계가 전망하는 2023년

한국공인노무사회가 1월 18일 ‘2023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를 진행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노사정 관계를 전망하는 일은 어렵다. 워낙 변수가 많은 데다 이해당사자들의 사정도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큰 틀에서 상상해본 2023년 노사정 관계는 먹구름이다. 심화되는 경제위기에 개별 사업장은 임금 교섭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노정관계도 살얼음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개혁에 노동계는 반발하고, ‘법과 원칙’을 주장하며 노조를 때리니 지지율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 정부는 노동계와의 충돌을 꺼리지 않거나 혹은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한국공인노무사회가 지난 1월 18일 주최한 ‘2023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서 유동현 노무사사무소 유앤권 노무사는 노사정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지금 말하는 전망이 틀리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다른 노·사·정·학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2023년 노정 관계와 노사 관계는 역대 최악의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사회적 대화는 실종, 사회불안과 갈등은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갈등의 쟁점일까. 세미나 내용을 토대로 올해 도마에 올라 노사정 관계에 영향을 줄 키워드 5개를 재정리했다.

세미나엔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동현 노무사사무소 유앤권 노무사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엔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 김수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장, 박사영 한국공인노무사회 수석부회장이 참여했다. 좌장은 박수근 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봤다.

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물가, 금리, 환율이 ‘3고(高)’라 불리며 치솟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12월 30일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대비 5.1% 상승했다고 집계했다. 7.5%의 상승률을 보였던 IMF 외환위기(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대치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중론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기준금리를 0.25%p 인상했다. 지난해 4·5·6·7·8·10·11월에 이은 일곱 차례 연속 인상이다. 1월 인상으로 기준금리는 현재 연 3.5%로 2008년 11월 4.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여러 기관의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1.8%와 1.7%다. 기획재정부는 양 기관보다 낮은 1.6%를 전망했다.

고물가가 불러오는 소비수요 부진과 고금리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재정적인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위기감에 빠진다. 신규 투자엔 소극적으로 변하고 기존 사업도 축소할 수 있다. 기존 사업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는 ‘임금만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을 일상에서 체감한다. 개별 사업장 노동조합들도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임금 인상 투쟁에 집중할 수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도 “임금 인상 압력과 앞서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 압력이 충돌해 개별 기업의 2023년도 임금교섭은 상당히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② 연금개혁
윤석열 정부가 의지를 보이는 연금개혁에 입장차도 있을 전망이다. 국회에 설치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개혁안 초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오는 4월까지 연금특위가 안을 마련하면 정부가 10월까지 국회안을 보완한 종합안을 내놓는다는 게 공식적인 타임라인이다.

‘더 받는’ 안에 대해선 아직까지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지만 ‘더 내는’ 것은 연금특위 내 입장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금특위가 구성된 문제의식 자체가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에 있기도 하다.

더 내는 연금개혁으로 바뀌면 노동자는 더 내는 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노동자의 임금 인상 의지는 강해질 수 있다는 게 유동현 노무사의 분석이다. 4대 보험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사용자는 더 내는 연금개혁으로 부담이 커지니 임금 인상에 소극적일 전망이다.

유동현 노무사는 연금개혁에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이 오르내리면 노정 관계는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양대 노총 등에 조직된 공무원·교원 노동조합들이 공동투쟁본부와 직역연금연대 등을 꾸린 점을 언급하며 “공무원연금까지 건드릴 경우 노정 관계는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③ 노동개혁과 전문가주의
정부가 노동개혁을 위해 만든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저출생과 고령화, 낮은 고용률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엔 근로시간 규제와 장시간 노동 관행, 연공형 임금체계가 원인 중 하나라 판단했다. 하지만 노동개혁의 청사진을 그린다면서 노사당사자를 배제한 점과 연구회의 결과가 주 단위 연장노동시간 확대, 탄력근로제 규제완화, 사업장 점거금지 등 재계의 요구 대부분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이해당사자 없는 정부의 노동개혁이 이어지면 갈등도 지속될 수 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도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을 천명하고 있는 만큼 2023년 한국 노사관계는 노동개혁을 둘러싸고 노사, 노정, 여야 간 많은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가 1월 18일 ‘2023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를 진행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현 정부가 노사당사자는 배제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노동개혁 과제를 도출한 점은 전문가주의의 득세와 사회적 대화의 약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이러한 경향성이 계속될 경우 정부에 의한 사회적 갈등의 조정기능 자체가 기능부전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2022년 택배노조, 화물연대본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소위 ‘비전형 고용부문’에서 발생했다는 게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의 분석이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가 급격히 실종된 2022년 하반기 상황이 2023년에도 계속될 경우, 기존의 노동법제의 틀로 포괄하기 어려운 중충적 고용관계나 비공식 부문에서의 노사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표출될 위험이 있다”고 예측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노동개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고, 올해는 성과를 내기 위한 원년으로 삼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수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장은 “23년을 이야기하면 정부 입장에서 제일 먼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노동개혁”이라며 “지금 노동시장의 상황은 변화와 직면에 도전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서로의 생각이 다양하다고 느끼지만, 다양하다고 해서 주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사노위가 정부 출범 후 본격화되고 있지 않은데, 빨리 시작을 해서 경사노위를 포함한 여러 사회적 대화를 해나갈 예정”이라고도 했다.

김수진 과장의 말처럼 기능이 정지된 사회적 대화 여부도 관건이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중장기 노동개혁 과제는 경사노위 논의를 거치고자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대화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나 노동단체를 진정한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우선 요구할 것”이라 말했다.

④ 법과 원칙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대립각은 2023년 유지 혹은 강화될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지난해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화물연대본부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기간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정부가 현대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관철하려는 것으로, 법 테두리 내의 행위는 보장하지만 법의 영역을 벗어나는 위법한 행위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것”이라 해석하면서도, “(정부가) 노사 모두에게 공정한 노사관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사의 불법·부당노동행위를 규율한다는 신뢰를 주어야 법치주의가 확립된다. 사용자의 불법행위도 엄격하게 다뤄야 하고, 한쪽에 치우친 인상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도 정부에 강경 기조를 이어간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 의도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관철, 지지율 제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 경제위기 책임의 전가”라며 “민중의 생존권 위기는 노조 탄압으로 막을 수 없다. 보수 정권은 쉬운 해고, 노조활동 제약 등 노동개혁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기하며 민주노총 무력화를 시도했지만 어느 정부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며 정부가 ‘노동개악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시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 밝혔다.

⑤ 산업전환
현재진행형인 산업전환도 화두가 된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중립 요구와 디지털화에 따른 생산방식의 변화는 개별 기업에 생산방식의 혁신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고용조정이라는 사회적 위험이 발생하게 될 것인바, 2023년은 물론 장기적으로도 노사관계의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입법 방향성은 각기 달랐지만 세미나에 참여한 노·사·정·학계 사람들은 산업전환에 노사정뿐 아니라 국회의 역할도 요구된다는 데 공감했다.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혁신이 계속 법을 앞서감에 따라 작업장으로 도입되는 21세기 기술은 새로운 노동법적 문제를 제기한다”며 “디지털 전환 시대의 도래에 따른 노동시장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현행 노동관계법·제도에 한계와 문제점이 없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