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코로나19 집단감염 수사지연은 건강권·인권의 지연
쿠팡 코로나19 집단감염 수사지연은 건강권·인권의 지연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2.08 14:56
  • 수정 2023.02.08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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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여태’ 수사 중인 송파경찰서
쿠팡 대책위 등, ‘공명정대하고 신속한 수사’ 요구
7일 진행된 '송파경찰서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책임자 쿠팡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라!' 기자회견에 참여한 전유경 씨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2020년 5월 24일과 25일 쿠팡 부천물류센터로 출근한 전유경 씨와 그의 가족은 코로나19에 확진됐다. 백신도 없고, 어떤 약이 코로나19에 효과적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유경 씨의 남편은 급성호흡부전으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딸은 그 충격으로 원인불명의 피부질환에 시달린다. 유경 씨도 산재 판정을 받았다.

유경 씨의 가족을 포함해 당시 쿠팡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152명이 앓아야 했다. “쿠팡 관리자는 코로나19 감염사실을 알고도 (노동자들을) 근무시켰다는 진술까지 했다. 이런 확실한 증거와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진술이 있는데 무슨 증거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경찰에 묻고 싶다”던 유경 씨는 “사망 사고가 아니라고, 가벼이 생각하지 마시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일상회복을 할 수 있게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쿠팡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152명이 피해를 입은 지 3년이 다 돼 가는 가운데, 관할 경찰서에 공명정대하고 신속한 수사를 부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피해자 11명은 앞선 2020년 9월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에 쿠팡 관계자 9명을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쿠팡이 산안법 제51조(사업주의 작업중지)인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 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 5월 24일 오전 부천시 보건로소부터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두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관리자들은 방역 당국이 역학조사를 시작하기 전 2층 작업장 등 일부 공간에 대한 소독 작업을 44분여 만에 마무리하고 공정을 중단 없이 운영했다. 공정을 계속 진행하는 과정에서 밀접접촉자로 생긴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일용직 노동자를 긴급 모집해 충원하기도 했다.

추가 감염자가 계속 발생하자 쿠팡은 다음날 오후 5시 방역 당국에 물류센터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때도 쿠팡은 즉각 공정을 중단하지 않고 25일 오후 7시까지 정상적으로 근무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지시했다. 오후 7시는 쿠팡물류센터의 1차 물량 마감 시간이다.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부천 고용노동청은 전 쿠팡 부천물류센터장과 쿠팡풀필먼트 유한회사 법인 등을 산안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지난해 6월 송치했다. 쿠팡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도 바로 작업중지를 하지 않는 등 노동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남은 혐의는 감염병예방법과 업무상과실치사 위반 등이다. 사건은 쿠팡 본사 관할 경찰서인 송파경찰서가 맡고 있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 대책위)에 따르면 송파경찰서는 지난 2021년 감염병예방법과 업무상 과실치사와 위반 혐의와 관련해 불기소 의견을 동부지검에 송치했으나, 검찰로부터 보완 수사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오전 10시 쿠팡 대책위와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송파경찰서 앞에서 '송파경찰서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책임자 쿠팡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이후에도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쿠팡 대책위와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등은 7일 송파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책임자인 쿠팡의 책임을 제대로 물으라”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쿠팡은 이윤창출을 위해 물류센터 가동을 멈추지 않고, 사람을 버리고 이윤을 선택해 집단감염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했을 뿐 아니라 2차 전파를 조장하면서 사회 차원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발의 방지인데도 경찰의 수사지연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수사지연은 건강할 권리의 지연이고 인권의 지연이다. 쿠팡 집단감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만 제2, 제3의 코로나가 닥쳤을 때 우리 사회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안전한 곳에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병민 쿠팡 대책위 법률팀 변호사는 “송파경찰서에서 허무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천 노동청은 쿠팡의 산안법 위반 혐의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며 유의미한 수사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런데 송파경찰서는 부천 노동청이 내린 산안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결론과 무관하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종결하려 하고 있다”며 “(송파경찰서는) 법리적으로도 분명한 쿠팡에 책임을 물어라.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분명하나 법리적으로 인과관계에 의문이 든다면 기소 의견으로 올려 법 전문가인 판사에 판단을 맡겨라”라고 촉구했다.

강민정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사무국장도 “코로나19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밤낮 없는 노동은 필수가 됐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산재로 사망하고, 코로나19 집단감염 피해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며 “우리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물류센터 안엔 로켓이 아닌 사람이 있다”고 했다.

권영국 쿠팡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감염법과 업무상과실치사 위반 혐의를 송파경찰서에서 무려 3년째 수사를 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라도 3년을 끌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할 수는 없다”며 “부천지청에서 고심 끝에 사업주가 근로자에 대한 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산안법을 위반했으면 업무상과실은 존재하게 돼 있다. 경찰의 모호한 태도가 향후 다른 사업주들의 사업장 내 보건조치 의무에 면책을 주게 될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김동권 송파경찰서장과 면담을 진행하려 했으나 김동권 서장이 자리에 없던 관계로 만나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 2일 김동권 서장에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한편, 사건을 진행 중인 송파경찰서 수사2과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