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야근’ 만드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막겠다”
“‘공짜 야근’ 만드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막겠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2.13 19:27
  • 수정 2023.02.13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부,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위해 IT기업 노조 및 노동자 의견 청취
포괄임금 약정 노동시간을 넘는 초과노동에 수당 미산정, 노동시간 허위 기록 근절
직장갑질119, “업무상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포괄임금약정 자체가 위법”
판교 야경 ⓒ 참여와혁신DB
판교 야경 ⓒ 참여와혁신DB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IT기업 노동조합 지회장*, IT노동자들을 만나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에 관한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넥슨·웹젠지회

포괄임금제란 업무 특성에 따라 근무 형태가 불규칙해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적용하는 임금제도다. 예를 들어 날씨에 영향을 받는 염업, 사업장 밖에서 일하며 대기 시간이 들쑥날쑥한 운수업 등에서 일정 시간을 초과노동한 것으로 산정해 해당 부분의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즉, 연장‧야간‧휴일 등 초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을 일정액으로 치환해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를 실시하려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근로계약서에 초과노동시간과 그에 따른 가산수당을 얼마를 줄지 미리 약정해야 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률상 임금제도는 아니며, 판례와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상 존재하는 임금산정방식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 명확한 합의를 기반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전반적인 사정에 비춰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 유효하다.

다만 문제는 출퇴근 시간이 명확해 가산수당 산정이 어렵지 않은 업종에서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간담회도 포괄임금제의 악용을 근절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산업 노동자의 임금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포괄임금 계약 방식이 전체 63.5%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에 포괄임금과 관련된 첫 간담회로 IT기업노조와 노동자를 만났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배수찬 화섬식품노조 넥슨지회 지회장은 “포괄임금 오·남용 사례로 노동시간 측정이 쉬운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임금, 포괄임금을 이유로 노동시간 자체를 측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사례가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신고센터에 익명제보되기도 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원칙인 사무직입니다. 축퇴근기록기도 있습니다. 월 마감 등 연장근무가 잦은데 근로계약서상 포함된 초과근무수당(4시간)이상의 연장근무수당은 못받고 있습니다. 포괄임금이라 그렇다네요. 초과근무한 연장근로수당은 받을 수 없나요?”

간담회에서 오고간 이야기의 핵심은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무엇인지다. 오·남용의 정의가 확실해야 근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수찬 지회장은 “포괄임금제를 핑계로 노동시간을 측정하지 않는 것은 (고용노동부가)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바로잡겠다고 했다”며 “노동시간으로 측정되지 않아 발생한 임금체불, 노동시간 상한선을 넘는 것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라고 간담회에서 오고간 내용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포괄임금제로 규정된 연장노동시간이 20시간이면, 20시간만 허용되고 그 이상의 노동에 대해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연장노동수당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고용노동부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 이상의 노동이 주52시간 상한을 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배수찬 지회장은 “노동조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포괄임금제 폐지여서 부족 지점은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노동부가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점차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라 평가했다.

이정식 장관은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전례 없는 강력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실근로시간을 산정·관리하지 않고 오·남용하면서 공짜 야근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포괄임금제 오·남용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로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해 공정의 가치에도 맞지 않다”며 “청년, 저임금 근로자의 좌절감을 가져오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하면 기업이 근로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지 못해 근로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은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부터 기획감독을 진행 중이다. 2월부터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내에 포괄임금 오·남용 신고센터도 운영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연장근로 한도 주52시간 위반에 대한 즉각적인 권리구제를 하고, 신원 노출을 우려하는 노동자를 위해 익명신고센터도 신설했다”며 “익명 신고 접수된 사업장은 오·남용 의심사업장으로 관리되고, 사전 조사를 통해 지방고용노동청 감독 또는 하반기 기획감독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단속 말고 포괄임금 금지가 답”이라며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무상 특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포괄임금약정 자체가 위법하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포괄임금제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이 아니라 포괄임금제는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남용을 방지하는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리 정한 고정시간외근로시간보다 더 일을 하거나, 이 경우 제대로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실태, 허위로 근로시간을 기록하게 하는 문제만 시정하는 수준일 것”이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