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조합은 ‘마녀’일까?
[기고] 노동조합은 ‘마녀’일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3.06 16:54
  • 수정 2023.03.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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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형선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중세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은 ‘거짓 쇼’였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배층이 분노한 민심을 돌리려 ‘공공의 적’을 만들어 낸 조작극이었다. “당신이 겪는 역병과 불행은 모두 마녀 때문이다.” 그렇게 광장에서 무고하게 불에 타서 죽고, 목이 잘려 죽고,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이 60만 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10살 이하 소녀도 많았다. 마녀를 판단하는 과학적·법적 근거는 없었다. ‘마녀재판’ 중에는 여인을 강물에 빠뜨려서 “만약 안 죽으면 마녀”라는 것도 있었다.

2023년 한국의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노동조합에 하는 짓이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공공의 적’으로 매도하며 자기의 무능과 부패를 감추려 한다. 지금의 경제 위기와 사회 문제를 불러온 ‘마녀’가 마치 노동조합인 것처럼, 노동조합을 때려잡는 것이 국가 1호 과제인 양 호도한다. 보수 언론을 나팔수 삼아 노조를 광장에 매달고 국민의 돌팔매를 맞게 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3대 개혁’ 중 하나가 ‘노동 개혁’(그 외 교육·연금)이고 그 핵심이 ‘노조 개혁’이며, ‘노조 부패’가 한국의 ‘3대 부패(그 외 공공·기업)’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급기야 “양대노총에 연간 300억 원의 정부지원금이 들어가니 당연히 모든 회계를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340여 개 단체에 ‘재정장부와 서류’를 제출하라는 초법적 요구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법적·과학적 근거가 없다. 우선 위의 요구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도 “공개가 당연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관련해 입법조사처가 밝힌 대법원 판례는 “외부로 반출될 때 제3자에게 노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노조의 자주적 운영이나 전체 이익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했고, ILO 협약 제87호 제3조에는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사업을 수립할 권리…행정기관의 노동조합 권리행사 방해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낸 조합비로 운영되는 민간단체다. 이런 조직이 재정장부와 서류를 정부(행정기관)에 공개해야 하는 게 법적으로 맞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 단체도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노총이 받는 정부지원금은 지금도 ‘e나라도움’(기획재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에 그 사용 내역을 올리게 되어있다. 이미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부끄러운지 알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하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국민 세금 147억 원, 모두 현금으로 사용한 그 특수활동비에 대한 지출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22년 서울고등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래놓고 “노동조합이 회계장부 제출에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취지로 노조를 겁박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세상에 공정과 상식이 있기는 한 것일까?

‘노동 문제가 모두 노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식의 대통령 사고는 또 어떤가? 노조는 정말 부패한 세력인가? 몇몇 노조의 비리를 모든 노조의 행태로 일반화할 수 있을까? 백 번 양보해 노조가 오염되었다고 한들 정치 부패보다 더럽고 사법 카르텔보다 심할까? 노조를 때려잡으면 노동 시장이 개혁되고, 경제 위기가 완화되고, 청년층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가? 모든 게 인상비평이고 일방규정일 뿐이다. 대한민국 은행원을 불로소득 집단으로 치부하며 서민 피고름을 짜 먹는 ‘이자 장사꾼’으로 매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마녀사냥이다. 일단 잡아 죽이고 보자는 짓이다.

오늘도 뉴스에는 어느 노동조합의 비리 혐의가 보도되고 있다. 보수언론에게 편중된 아젠다 세팅 기능은 노조 부패를 대한민국의 최대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노조를 때리면 때릴수록, 욕하면 욕할수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무지성의 극단적 유튜버들은 ‘마녀인 노동조합을 왜 빨리 불에 태워죽이지 않느냐’고 외치고 있다. 이 시대는 과연 야만이 사라진 문명의 시대인가?

노동자에게 칠흑 같은 어둠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