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임 사망’ SPL 공장, 과로 방지책보다 빵 먼저 만든다
‘끼임 사망’ SPL 공장, 과로 방지책보다 빵 먼저 만든다
  • 김광수 기자,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3.10 12:40
  • 수정 2023.03.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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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주장 “노사 협의”에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반박
“12시간 맞교대, 과도한 생산량, 인력 부족 등 과로 개선방안 없어”
SPL 평택 공장, 지난해 10월 노동자 사망한 샌드위치 라인 재가동
지난 15일 끼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SPL 제빵노동자 분향소 ⓒ 한국노총 식품노련
2022년 10월 15일 끼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SPL 제빵노동자 분향소 ⓒ 한국노총 식품노련

지난해 20대 노동자 박 아무개씨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SPL 평택 공장 샌드위치 라인이 최근 재가동됐지만, 당시 사고 원인으로 지적된 주야 맞교대 등에 대한 개선 없이 생산이 재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SPL은 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 등으로 알려진 SPC그룹 계열사로, 샌드위치 등 완제품과 제빵용 반죽을 생산해 파리바게뜨에 납품한다.

이달 6일 SPC는 언론에 한국노총 식품노련 SPL노동조합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등이 참석한 임시 노사협의회를 통해 사고가 난 샌드위치 라인을 철거하고 신규 생산 라인을 설치해 같은 달 27일 가동했다고 알렸다. 양 노동조합과 협의해 생산을 재개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참여와혁신 취재 결과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얘기는 달랐다. 지윤미 SPL지회 회계감사는 “SPL은 (라인 재가동에 앞서) 노사협의회에 강규형 SPL지회 지회장을 불렀다. 노사협의회에서 지회장은 경영진에게 라인 재가동과 관련해 무엇을 개선했는지 자료를 보여 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회사는 자료를 보여주지 않고 ‘다음 주에 라인이 재가동된다’는 말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회장은 아무런 소득 없이 말 그대로 참석만 하고 돌아왔다”며 “그걸 회사에서 '협의 후 라인 재가동'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기존 샌드위치 라인을 철거한 후 새 라인을 설치했다는 사측의 홍보에 대해선 부족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지윤미 회계감사는 “평택 공장 3층에는 자재를 놓는 창고와 사망사고가 난 샌드위치 라인이 있었다. (새 라인 설치는) 자재가 있던 곳에 라인을 설치하고, 자재를 전에 라인이 있던 장소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했다.

지윤미 회계감사는 “생산 라인 위치를 바꾸면서 새로운 설비를 들였고, 기계 위치나 이동 동선을 바꾸는 등의 개선이 있었지만, 그것이 산재 예방의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며 “작년 10월 사망사고도 밤샘 작업 후 교대 직전인 아침에 발생했다. 사고의 근본 원인인 주야 맞교대와 과도한 생산량을 개선하지 않은 채 라인이 재가동됐으니, 언제든 다시 산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력확충을 통한 3조2교대제 도입과 생산량 조절 등 당시 문제로 지적된 과로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집중력 저하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SPL 평택 공장 생산직의 근무형태는 주야 2교대제로,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현장에 머무른다. 숨진 박 아무개 씨도 높은 업무강도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 지인에게 “졸려죽어, 내일 롤치킨 대비해서 데리야끼 치킨 500봉 깔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

지윤미 회계감사는 “현재는 샌드위치 라인이 재가동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산량이 많지 않다. 5개 라인이 신설됐지만 그중 2개만 돌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화장실 갈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며 “점차 가동 라인이 늘고 물량도 종전처럼 회복될 텐데, 과도한 생산량과 부족한 인력이 문제가 됐으면 인력 확충이나 생산량 감축에 대한 합의를 선행한 후 재가동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윤미 회계감사는 “그 밖에도 당시 문제가 됐던 많은 것들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대표적으로 ‘카톡 선착순 휴무제’를 꼽았다. ‘카톡 선착순 휴무제’는 SPL 평택공장에서 시행 중인 주말 휴무자 선택 방법이다. 관리자가 휴무 신청 여부를 매주 수요일 저녁 단체채팅방에 물으면, 선착순으로 답변하는 20명만 주말에 쉴 수 있다. 타이밍을 놓친 나머지는 공장에 나와 일해야 한다. 지윤미 회계감사는 “당시 근무자들은 이런 휴무제 운용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물량이 늘어나면 노동자들이 주말 근무를 또 해야 하지만 관련 합의는 아직 안 됐다”고 했다.

‘공장 재가동이 섣부르다’는 주장에 대해 교섭대표노조인 식품노련 SPL노조의 윤홍식 위원장은 “12시간 맞교대제가 그대로인 것은 맞지만, 근무제는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장기적으로 접근해 바꿔 나갈 것”이라고 했다. 생산량 제한과 인력 충원 관련해선 “지금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인력 충원이 필요 없다. 향후 물량이 늘어나면 전에 해당 라인에서 일했지만 아직 복귀하지 않은 분들의 복귀 의사를 물어 그분들의 복귀로 인원을 충원하기로 회사와 협의했다"며 "그 후에도 인원이 모자란다면 그때 추가로 충원을 논해야 한다"고 했다.

‘카톡 선착순 휴무제’에 대해선 “휴일 근무제 운용은 기본적으로 경영사항”이라며 “노동조합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또 “회사에서 소스 배합기에 자동멈춤장치(인터록)나 덮개 등의 안전설비를 마련해 당시 사망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거했다. 아울러 (사고 당시엔) 문을 닫으면 작업자들을 관찰할 수 없어 폐쇄적이란 지적을 받았는데, 통유리를 설치해 내부 공정이 밖에서도 다 보이게 만들었다. (SPL에서) 휴게공간 등의 설비도 마련해줬다”며 “이런 개선을 인정받아 라인 재가동에 대한 고용노동부 인가와 산업안전관리공단 승인도 받았다”고 했다.

한편 참여와혁신은 SPC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결을 시도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SPL 평택 공장 사망사고는 2022년 10월 15일 발생했다. 이날 야간조로 일하던 20대 여성노동자 박 아무개 씨는 오전 6시 20분께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계에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고용노동부에서 현장을 확인한 결과, 공장에 있는 배합기 9대 중 7대에 자동방호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다. 자동방호장치가 없는 배합기의 덮개는 열려 있었다. 공장 자체 매뉴얼인 2인1조 작업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직후 사측의 대응은 여론의 공분을 샀다. SPL은 사고현장 목격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현장 노동자들을 다음날 출근시켰다. SPC그룹은 사망사고 보도가 이어지자 사건에 대한 입장표명 대신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이틀이 지난 런던 파리바게뜨 매장 오픈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고인의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을 보내기도 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 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당시 SPC그룹은 향후 3년간 총 1,000억 원을 투자해 ▲전사적인 안전진단 시행과 안전경영위원회 설치 ▲안전관리 인력과 역량 강화 ▲직원들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 등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