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임금동결 선언?
민주노총의 임금동결 선언?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2.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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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삽질’ 그리고 기업의 ‘거짓말’
▲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2009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일자리’라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듯 싶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닥친 경제 위기 속에 일자리 문제는 너무나도 절박한 사안입니다. 최근 몇 년 간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 중 하나였던 비정규직 문제도 결국은 일자리 문제입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일자리’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어쩌면 이는 지난 외환 위기의 상처가 우리에게 남긴 긍정적 학습효과인지도 모릅니다. 외환 위기 당시 우리 사회를 휩쓸고 간 키워드는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인적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그 결과 ‘정리해고’라는 칼바람이 국가 경제는 물론 가정 경제까지 거의 초토화 시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다음,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대안이 아니라는 자성이 일었습니다. 경험칙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거지요. 정리해고는 곧 대량 실업과 동의어였고, 이것은 소비를 급속히 위축시키고, 다시 기업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구성원들을 정리해고 하고 나서 다시 활황을 맞기는 했지만 그 ‘종업원’들은 더 이상 어제의 종업원들이 아니었습니다. 내 회사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어떻게든 나만 살아남고 나만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로열티’가 바닥을 친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한 회생 대책이 아닌 일자리 나누기,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대책 마련은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이 ‘해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정면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청와대가 ‘정치’를 알기나 하는 걸까?

일차적인 책임은 ‘어리바리한’ 정부에 있습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경제 위기를 돌파할 가장 적합한 정책을 내놓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붙습니다. 국가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일방만을 위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 정부의 행태는 낙제점을 면키 어렵습니다. 정부가 ‘쏟아낸’ 일자리 창출 대책에 따르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만 400만 개가 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일자리는 넘쳐 나는데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이번에는 구인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최근에 정부가 ‘필이 꽂힌’ 건 일자리 나누기인 듯 합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임금 삭감과 일자리의 딜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정부에서는 즉각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일자리를 유지시키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당근’을 내놨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금 삭감에 동의한 노동자들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주겠다던 계획은 한 달만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사업주에 대한 혜택만 남았죠.

정부야 그렇다치고, 청와대의 행보는 참 답답합니다. ‘정치’를 해봤다는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민심’을 못 읽는지 혀를 차게 만듭니다. 임금 삭감과 일자리의 딜이 필요하다는 주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일감이 줄어 일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임금이 줄어듭니다. 동결이 된다 하더라도 치솟은 물가에 실질임금은 삭감되는 셈입니다.

굳이 임금 삭감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벌써 임금이 삭감되고 있는 거지요. 거기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라고 얘기한다고 덥석 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임금 깎으라고 내몰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감싸안아줄 포용력일 것입니다.

‘당신들 정말 어려운 거 안다. 하지만 사정이 이러니 일단 이 위기를 어떻게든 마음을 모아 돌파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냐. 그 과정에 우리가 조금씩 마음을 모아 보자’고 얘기하는 것과 ‘사정 어려운 거 빤히 알면서 뭘 꾸물거리느냐. 빨리 임금 깎는다고 해라’ 식의 다그치는 것, 어느 쪽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정부는 정말 그걸 몰라서 이런 식으로 일을 그르치려고 하는 걸까요?

‘신뢰의 위기’ 자초한 기업

기업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조바심이 날 겁니다. 당장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시장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에도 하세월인 듯 합니다. 그렇다고 신규 시장 개척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 급할 수밖에요.

당연히 마른 수건이라도 짜는 심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직원들에게 임금의 동결이나 삭감까지도 호소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노조가 쉽사리 동의를 해주지 않으니 볼멘소리가 나올 밖에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 대해 노조 탓만 하기에는 기업들의 ‘지은 죄’가 많습니다. 사실 위기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2000년대 초중반 대기업들이 앞다퉈 사상 최고 실적을 갱신하던 때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금은 나눌 때가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했었지요.

더구나 그렇게 번 돈이 비자금 조성이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쓰인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경영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보다는 ‘경영권’을 강화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도 부인하기 힘들죠.

그러더니 지금에 와서 ‘힘드니까 너네가 양보하라’고 밀어붙이면 누가 쉽게 동의를 하겠습니까. 결국 ‘신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노조에서 경영진에 대해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지경에 이른 거지요.

‘지금이 기회’라는 발상으로 노조를 힘으로 누르려고 하거나 인건비를 줄여서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극히 구시대적 발상’으로 ‘노조 때문에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면 ‘반노조 정서’에 기반한 여론을 등에 업고 당장은 어떻게 지나갈지 모르겠지만, ‘위대한 기업’으로는 결코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기업이 그간의 잘못에 대해 솔직해지고, 경영상의 잘못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면서 먼저 손을 내밀 때 노동조합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함께 하지 못하겠다는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노조가 도태되겠지요.

사무처 임금 동결은 이의 없습니까?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원칙론’만 내세우면서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으니 어디 한 번 해보라’고 배짱을 부릴 상황도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의도적 ‘위기설’을 퍼뜨릴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악명’이 높지요. 한 번 시작했다 하면 회순 정하는 데 대여섯 시간씩 걸리는 걸로 말입니다. 이번 대의원대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시 대의원대회가 6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으니 말이죠.

사실 ‘이쪽’도 ‘저쪽’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다수파’ 입장에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다수의 대의원을 보유하고도 안건 하나 처리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할 것이고, ‘소수파’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될 사안마저도 수적 우위만으로 밀어붙인다고 하겠지요.

회의가 마냥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일종의 필리버스터, 즉 지연 전술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도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 등을 두고 의도적인 지연 전술과 의결정족수 무산 전술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일사천리로 통과된 안건이 있습니다. 바로 2009년 예산안이었습니다. 이날 민주노총은 86억4074만6663원의 예산안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액수는 지난해 예산에 비해 7억원 정도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증액된 7억원은 올 연말 있을 임원 직선제와 관련한 비용입니다. 결국 나머지 예산은 동결된 거지요.

이용식 사무총장은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사무처 임금을 동결하면서 줄이고 줄인 예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산안과 사업계획이 하나의 안건이므로 둘을 묶어서 의사봉을 두드려야 한다는 절차상의 문제 지적을 제외하고, 예산안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바로 통과됐습니다.

그렇게 사무처 직원들의 임금은 일사천리로 동결됐습니다. 그 전까지 자구 하나로 팽팽한 대립을 보이던 어느 누구도 사무처 임금 동결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만약 임금 동결 문제가 대의원들이 속한 개별 기업에서의 문제였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민주노총 사무처가 박봉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압니다. 물론 민주노총 대의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사무처 성원들 또한 가정을 꾸려가고, 아이들을 키웁니다. 그런데도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 부담 속에 이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누구도 공개적으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활동가’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문제일까요? 아니면 민주노총의 재정상황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일까요? 적어도 누군가 한두 사람은 나서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상근자들의 임금을 현실화시킬 방안을 만들자거나, 대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중적 잣대에 대한 고민 없이 ‘총파업 투쟁’만을 부르짖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칼에 찔린 것보다 내가 가시에 찔린 것이 훨씬 아픈 법이지만, 그 속에 갇혀서는 울림을 주는 투쟁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조금 더디고 아프더라도…

지금이 위기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노도 사도 정도 모두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상대를 힐난하거나 구석으로 몰기에 급급합니다.

운이 좋으면 이번 위기도 또 어떻게 넘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운이 좋으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대로 된 해법을 같이 마련하지 못하면 또 10년 뒤에 지금과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지금 당장은 조금 더 아프고, 또 조금 더 더디더라도 문제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일이고, 또 우리 아이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은 그저 유유히 흘러가거나,
강은 ‘우리’가 함께 헤쳐가거나...

그 강을 거슬러, 혹은 강을 따라
이곳 저곳을 떠도는 장사치들이 잠시 머무는 곳.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의 굵은 노동의 팔뚝이 잠시 쉬어가는 곳
더 큰 바다로 떠나기에 앞서 내일의 희망을 불태우는 곳.

그 어떤 사연이라도 좋다.
그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강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때는 해질녘이 좋겠다.
동틀녘의 활기찬 설레임도 좋겠지만, 너무 비장하다.
한낮의 왁자한 활력도 좋겠지만, 너무 분주하다.
넉넉하게 쉬어갈 수 있는 해질녘의 고즈넉함이 어울린다.

날이 밝은 다음 제 갈 길을 떠나도 좋고,
그냥 며칠 더 눌러앉아도 탓하지 않는다.

강나루해질녘,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