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섬이 부러운 이유
해밀턴섬이 부러운 이유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2.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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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설은 다들 잘 보내셨나요? 가뜩이나 짧은 연휴 기간에다 눈치 없는 폭설로 고생들 많이 하셨을 겁니다. 저도 고향 내려가는 길이 16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쏟아지는 눈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더군요. 하긴 서해안고속도로 일부 구간은 한 시간에 3km씩 움직인 곳도 있었다더군요.

이런 고생을 해가며 기어이 찾는 ‘고향’엔 대체 뭐가 있는 걸까요. 가족의 해체니, 고향의 붕괴니 하는 마당에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는 걸 보면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 가족과 같은 실존적 존재도 있겠지만 그리움, 향수와 같은 형체 없는 그 무언가도 있을 겁니다.

마을 어귀의 그 나무가 사실은 초라하고 키 낮은 것일지라도 내 기억 속에서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이고, 학교 가던 그 골목이 사실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비루한 곳이었더라도 내 기억 속 등굣길은 정겨운 돌담길로 남아 있는 법이지요.

혹시 해밀턴섬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최근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된 섬입니다. 호주 퀸즐랜드에 있는 이 섬의 관리인 모집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단 한 명의 관리인을 뽑는데 1월 말 현재 전세계 162개국에서 9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네요.

관리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섬의 방 3개가 딸린 최고급 빌라에서 지내면서 물고기 밥을 주고 야외 수영장 청소를 한 다음 느낀 점을 퀸즐랜드관광청에 보고하기만 하면 된답니다. 게다가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와서 함께 지낼 수도 있고 한달 보수가 2만5천 호주달러(2250만원)에 달한다는군요. 6개월짜리 일이라니 ‘놀면서’ 1억3500만원을 버는 셈입니다.

호주 당국이 바보도 아니고 이런 일자리를 만든 데는 다 생각이 있겠지요. 이번 ‘소동’을 통해 호주는 지급되는 관리인 급여보다 훨씬 더 큰 소득을 얻게 됐습니다. 해밀턴섬의 인지도를 크게 높여놨으니 말입니다. 관광소득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요즘 정부의 화두는 온통 일자리에 있는 듯 싶습니다. 자고 나면 내놓는 게 일자리 대책입니다. 100만개니 360만개니 대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간의 반응은 냉소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정부 당국자들로서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짜낸 것에 대해 몰라준다고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제부처 차관이 나서서 지금은 일자리의 질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임금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자고 하는 호소 속에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습니다.

고향은 우리에게, 벼랑 끝에 몰리더라도 나를 저버리지 않을 ‘기댈 언덕’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호주의 해밀턴섬 관리인 모집은 단 하나의 일자리에 지나지 않지만 한껏 부풀어 오른 ‘희망’이라는 덤을 얹어 줍니다.

‘닥치고 주는 대로 받으라’는 식의 고압적 일자리 대책이 ‘기댈 언덕’이거나 ‘희망’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 정부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일자리 대책 말고,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