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 ‘집행유예’... 노동계 “관대한 처벌” 비판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 ‘집행유예’... 노동계 “관대한 처벌” 비판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4.06 18:08
  • 수정 2023.04.06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청 노동자 추락사...원청 대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
노동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형량에도 못 미쳐...검찰 항소해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9일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8일 요진건설산업 성남판교 제2테크노밸리 현장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노동자 2명이 추락사 한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기업 사업주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mhkim@laborplus.co.kr<br>
2022년 2월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 사업주 처벌을 촉구했다. ⓒ 참여와혁신 DB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청 대표에 대한 선고가 집행유예에 그치자, 노동계에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선고는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첫 판결로, 향후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와 경영계의 관심을 받았다.

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판사 김동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건설사 온유파트너스 정 모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청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지 않은 탓에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본 것이다.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시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안전난간이 설치되지 않은 건물 5층에서 94kg에 달하는 중량물을 도르레로 끌어올리다 16m 아래로 떨어진 사고였다. 작업계획서나 작업지휘자도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원청업체인 온유파트너스의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와 관련해 사업주와 도급인에 보다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피고인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면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피해자의 사망은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한 안전난간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원인이 된 듯하다”며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부과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양대 노총은 원청 대표자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번 판결을 비판하며 검찰에 즉각 항소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노총은 “법원은 원청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대해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었음에도 사실상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의 형량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판결로 기업들은 ‘사망재해가 발생해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라면서 “그동안 경영계가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이 ‘과장된 엄살’임을 증명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하청 노동자 중대재해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지닌 원청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오히려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는 당연한 판결이 만시지탄으로 이제야 내려지게 된 것”이라면서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망에서도 2~5년을 양형기준으로 하고 있는 현실에서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는 너무도 낮은 형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정 모 대표와 함께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법인에는 벌금 3,000만 원, 현장 안전관리자에는 벌금 500만 원의 벌금형을 각각 선고했다. 온유파트너스 하청업체인 아이코닉에이씨 법인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와 아이코닉에이씨 현장소장 두 명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