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
지금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2.0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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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이는 DJ, 세상에 마음 열고 ‘사람’에 공감하다
눈 총총, 마음 총총 즐거운 개그우먼 김미화

“하늘을 보면서 잠들어 본 적 있으세요?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어요. 일곱 살 무렵인가, 엄마가 셋돈을 내지 못해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그 때 동네 앞에 큰 마당들이 있었는데, 나오면서 걷어 온 장판을 깔고 장롱이며 몇 안 되는 가구로 사방을 막고 잠을 청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 아빠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그런데 일곱 살 난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었던 추억, 야유회에 나온 것처럼 설레던 그 기분이 잊혀지지 않아요. 나에게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지요.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것에 엄청난 행복이 숨겨져 있어요.”

절대 에둘러 가지 않는다. 얼버무리고 눙치는 것에 능한 사람들도, 잔뜩 경계하고 있는 사람도, 화가 나 있던 사람들도, 이 사람 앞에서는 ‘인간적인’ 농을 함께 즐기게 된다. MBC라디오 <시선집중>의 손석희 교수는 “시사프로가 그렇게 따뜻할 수 있느냐”며 “거기 나오는 패널들이, 제 프로에 나오면 굉장히 굳어서 하는데, 거기만 나가면 우리 프로에서 안 하던 말들도 잘 하는지,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 5년차인 개그우먼 김미화. 세상에 알려진 대로 어려운 어린 시절과 이혼의 아픔을 겪고 풍진 세상을 살아왔지만 그녀의 진행은 참 따뜻하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어느 입장에 서 있건 누구에게나 열린 귀를 갖고 충분히 귀를 기울이는 진행자의 자세와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방송인 김미화’를 만나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찾았던 ‘고정 인터뷰 장소’인 MBC 7층 라디오국의 복도 휴게실로 향했다.

‘사람’에 대한 공감

매일 돌아서면 흉흉한 사건이 터지고 있어요. 기자 입장에서도 되풀이 되는 어려운 삶들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 그리고 변화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보람을 대신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많이 힘들거든요. 많은 이슈들을 접하면서 힘이 빠질 때도 있고 참, 부질없다 생각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아요?

그럴 때, 많이 있었죠. KTX 여승무원 때도 그랬고, 기륭 때도 그랬고. 여러 가지로 프로그램 안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노사관계 이야기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비정규직들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프로그램 안에서 당연히 다루게 되죠. 저 역시 문제가 다뤄지면 해결이 되고 그런 데서 기쁨을 찾아가고 싶은데 그런 일이 드물어요.

얼마 전에 코스콤 문제가 해결된 사례가 있었잖아요. 그때 너무 기뻐서 제가 뉴스 진행하다가 해결됐다고 해서, 해결되기 전에 제가 해결되면 꼭 한 번 다시 통화하자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PD하고 즉석제안을 해서 연결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기뻐요. 해결되지 못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진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 보면, 저도 같은 생각이 들죠.

사실 이런 문제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보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만 해도 이렇게 인기인이고 또 방송 활발히 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저희 어머니가 오래지 않은 과거에 건물에서 비정규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셨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건물 관리직도 하셨어요. 퇴직 후에 연세 드셔서 하신 거지만요. 그런 분들이 겪는 일들을 부모님께 생생하게 얘기 들은 거죠.

예를 들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거나, 같은 건물에서 1년, 2년 동안 같이 지내고 있는 직원들이 인사를 한 번 따뜻하게 건네지 않는다거나. 그게 다 우리 아버지고 엄마고 아들이고 삼촌이고 다 식구들 얘긴데 멀리 떨어져서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많이 했어요. 그래서 더 많이 가슴 아프게 와 닿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슈를 다루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 기본적인 견해와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말 한마디가 자칫 정치적인 영향력과 입장으로 뒤바뀔 수도 있는, 참 어려운 자리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자리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꾸준히 ‘안 한다’는 입장을 밝혀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김미화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곤란한 상황이나 진행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 심각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그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잘 판단해요. 방송이라는 게 정부나 여당이나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서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항상 방송은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문제의식을 자꾸 제기하고 그런 것이 방송의 역할, 시사프로그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약자라고 해서 돈 없고 소외된 사람만 약자가 아닙니다.

여당도 약자가 될 수 있고요. 힘 있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서 약자가 될 수 있어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다 똑같은 거예요. 약자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편견이죠.

그리고 저는 어떤 일이든 칭찬을 해줄 일이 있으면 반드시 칭찬을 해줘요. 예를 들어 제가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정말 좋은 일을 했다고 하면 칭찬해줄 수 있고 정말 나쁜 일을 했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다 같이 “그건 나쁜 일이에요”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고. 그런 것이 정말 제가 원하는, 지향하는 방송이에요.

제가 마음 속에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아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충분히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것은 이 세상에는 각자가 생각을 다 다르게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하고 생각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편 가르기를 하거나 치부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최대한 존중하고 싶어요.

나와 다르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존중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 분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내가 깨달을 점, 반성할 점, 일깨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해요.

거리끼는 게 하나도 없는데 단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입장에 따라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 좋은 이야기인데, 그러면 내 편, 저런 거는 반대편 입장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아니, 내가 시사 프로그램 하게 된 게 죄라고, 시사 프로그램이 정치가 절대 아닌데, 그냥 다루는 것일 뿐인데 말이죠.

동맥경화인 세상, 그래도 ‘참여’해야

상반된 입장을 가진, 혹은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사람은 참,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해요. 참여, 소통 등이 사회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고 있는 덕목인데 갈수록 그게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통’이 잘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 사회에 참 ‘경화’가 많아요, 동맥경화처럼. 소통이 절실히 필요한데 안 되고 있는 부분이 많이 보이잖아요. 철거민 문제도 그렇고. 그분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한번 정말,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처럼 가슴깊이 절절히 경험하고 나면 느껴지잖아요. 그런 경험이나 공유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죠.

“아니 왜, 정당하게 이야기 하면 되잖아”라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한다고 들어주느냐 말이죠. 구청에서 한가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겠어요, 아니면 조합원들이 들어주겠어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소통을 하려면 벽이 참 많아요. 겹겹이 어려워요.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하잖아요. 지금뿐만 아니라 그 옛날 정권도 그랬을 거예요.

저는 젊은 사람들이나 또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세상을 바꾸는 작업을 끊임없이 함께 해 나가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정치가 맘에 안 드니까 나는 투표를 안 한다고 해요. 자기 할 일을 안 해놓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면 뭐 하냐는 거죠.

소통이 안 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사회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슈가 있을 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참여하고 세상이 바뀌는 것에 동참하고. 그러지 않고서 나중에 현상만 갖고 ‘이놈의 세상’이라는 한탄만 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하고, 일 하기도 바쁜데 무슨 사회 참여한다고 하느냐고 해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저 사람 참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면, 제가 어느 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근데 효순이 미선이가 장갑차에 깔려서 죽었대. 엄마 입장으로서 화가 나잖아요. 물론 우리나라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지만 남의 나라에 와서 우리 법으로 처벌이 안 된다는 거죠.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동참을 했는데 마치 정치 참여를 하는 것 마냥 훗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진짜, 이 사회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 내 딸들은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을 하겠어요.

세상이라는 게 다 내 맘같지 않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건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한편 감사한 것이 이러한 다양한 생각들이 저를 반성하게 해요. 한 가지의 입장만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누구든 마음이 우러나도록 이끌어 줘야 해요.

할 일은 언제나, 내가 찾는 만큼 있다

많은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70여 개 정도라고 들었는데 저라면, 이름도 다 못 외우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의미로 시작한 활동이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된다거나, 상대방이 느끼는 비중이나 형평성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힘든 점들은 없나요?

저도 다 못 외워요. 요청이 오면, 참 좋은 취지인데 그러면 거의 다 하려고 하는 편이죠. 그런 거 전혀 없어요. 이제 사람들이 다 이해를 해 줘요. 오랫동안 함께 했었으니까요. 어떤 단체는 20년이 넘은 단체도 있고, 길게 가고 세월이 쌓이니까. 일단, 제가 스케줄이 되면 무조건 가거든요. 그래서 ‘못 간다’고 하면, 이 사람은 ‘정말 못 오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 주시더라고요.

시사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든지, 현재의 활동으로 인해 개그에 대한 미래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꿈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지금은 주어진 것이 이 일인 것이고, 미래를 정해놓고 살진 않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주어진 일도 연기의 한 축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한편 ‘나이 들면 지는 거다(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해가 떨어진다는 의미), 큰 파도에 잔 파도는 밀리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크게 성장해서 오면 덮여서 가는 것이다’ 하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하지만 준비는 하되, 내가 경쟁을 하는, 열정에서는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편견을 깨버릴 거라고, 할 수 있다고, 그런 자신감을 갖고 만든 것이 개콘(개그콘서트)이었어요. 혹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안 써줘도 노력할 거예요. 재미있는 할머니가 돼서 웃길 수 있다, 내가 주연이 아니라도 조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찾지 않아서 그렇지 할 일은 많거든요.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아이들 학교 앞에서 봉사활동으로 교통정리를 해줄 수도 있고 거리에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닐 수도 있고, 해외에 가서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하면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모아 짜잔, 하고 마술을 보여주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마 잠깐일 거예요. 아마 또 다른 샘을 파겠죠.

‘한가롭다’는 느낌을 가진 것이 굉장히 오래 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 주로 뭘 하세요? 그리고 나만의 시간활용법이 있다면 귀띔 좀 해 주세요.

느낀 지 오래 됐어요. 성격상 ‘한가로움’을 잘 즐기지 못해요. 여유가 생기면 책을 읽거나 잠을 자고 바보처럼 앉아있거나 그래요. 바쁜만큼 저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요. 혼자 영화,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녀요. 그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기에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그래요.

예를 들어 나한테 지금 딱 두 시간이 비었다, 그러면 바로 영화관에 가서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나와요. 그래서 저는 본 영화 중에도 결말을 모르는 영화가 많아요. 다 볼 수는 없지만 자투리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하는 거죠.

아직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 중 하나가 늘 너무 바쁘게,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살다 보면 일을 하면서 늘 반복되는 일상과 난관과 싸워 가면서 ‘최선’을 다하고, 일을 즐긴다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행복을 찾는 방법, 일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저도 좌절감을 느낄 때 많죠. 매번 인생이 어떻게 즐겁겠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거죠. 욕심을 덜어내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왔는가를 반성하고요. 내가 바쁘고 힘들다고 해서 남편이 정성스럽게 차려 준 식탁 앞에서 그를 위해서 같이 낄낄대면서 먹을 수 있었던가를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매번 각오를 하는 거죠. 작은 것에서 감사를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어요. 제가 지금 시골에 사는데, 기쁨이 있는 반면에 어떨 땐 힘들어요. 피곤할 때 집까지 운전해서 가려면 출퇴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아파트의 편리함, 바로 뜨거운 물 틀면 쫙 나오고, 사람들 바로 만날 수 있고, 엄청나게 편리하겠죠.

다 누릴 수 있지만 버린 대가가 자연에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거예요. 달빛을 따라서 커피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 좋은 공기를 즐기려면 감수를 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