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아주는 게 아니라 안 흘리게 하는 게 공직자 역할”
“눈물 닦아주는 게 아니라 안 흘리게 하는 게 공직자 역할”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2.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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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직원들, 한 달에 한 번은 현장 직접 ‘체험’해야
‘역지사지’와 ‘억강부약’이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
외국인노동자 눈물 닦아주는 ‘자원봉사’ 나선 김성중 전 노사정위원장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K씨(57)는 인천에 있는 한 기업에 전화를 했다. 외국인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씨는 ‘감히’ 사장을 찾지는 못하고 여성 경리사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젊은 목소리여서 얘기가 통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대뜸 “아저씨가 뭔데요?” 한다. “여기서 자원봉사 하는 사람입니다” 했더니 이번에는 “안 주면 어쩔건데요”란다. 법률상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자 마지막 한마디가 돌아왔다. “아저씨나 잘 하세요.”

‘수모’를 당한 K씨는 한동안 진정을 못했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K씨가 연신 “아휴, 아휴” 하자 상담팀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우리는 날마다 그래요”라면서 웃어 넘기라고 했다.

이 K씨는 체불임금 문제 등을 관리감독하는 노동부의 차관을 지내고, 장관급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성중 씨다. 김성중 전 위원장의 현재 위치는 경리사원에게도 ‘면박’을 당하는 ‘자원봉사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반역자 될 수 없어 봉사한다”

김 전 위원장은 요즘 일주일에 사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로 출근한다. 이 곳은 외국인 노동자 지원활동으로 유명한 김해성 목사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집,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다문화복지센터 등도 함께 있다.

상임 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배식을 하고 상담을 하는 등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보수도 없다. 32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장관급 직위까지 올랐던 김 전 위원장은 왜 거기 있는 것일까?

김 전 위원장은 “국가에 대한 반역자가 될 수 없어서”라고 설명하고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국가에서 나에게 월급 줘서 먹고 살았고, 외국 가서 공부도 하고 왔고,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고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내 인적자본을 사회가 쓰도록 해야지 지금부터 쉬어버리면 이건 반역자 같아요.”

그는 공직을 맡은 사람은 봉사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그와 인연이 깊다. 그가 고용정책실장이던 시절 고용허가제 입법을 주도했다. 그보다 이전에 그가 사무관이던 시절에는 인력송출 업무를 맡았다. 2만명을 훈련시켜 중동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 것이다. 외국에 우리 인력을 내보내는 일을 하다가, 다음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일을 한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는 “이만큼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이라면서 “외국 사람들을 우리나라의 이웃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웃으로 보지 않고 남으로 보고, 깔보고 멸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앞날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전 위원장은 “‘우리’라는 개념 속에 ‘나와 다른 이웃’의 개념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아니면 ‘남’이고, ‘남’은 적개시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걱정한다. “우리나라 발전에 밑바탕이 된 게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월남, 중동, 독일에 가서 노임을 벌어온 근로자들이고, 그것이 우리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들을 먹여 살릴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들어와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조금 있으면 군대에 갈 것이고, 또 생업을 가지고 경제의 주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아이들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한국인 의식을 갖고 있어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와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고 무지개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시찰’과 ‘근무’는 천양지차

전관예우 제대로 활용하기

‘아저씨나 잘 하세요’라는 면박으로 김성중 전 노사정위원장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인천의 퇴직금 체불 사례는 어떻게 됐을까.

김 전 위원장은 “전관예우를 활용했다”면서 웃었다. 사실 법률상으로도 명확하게 지불해야 할 퇴직금 문제는 근로감독관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문제다. 단지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그들이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이다.

김 전 위원장은 관할 지방청에 도움을 청했고, 문제는 즉시 해결됐다. 한정식집에서 일하던 중국 여성동포 사망사건도 ‘전관예우’의 힘을 빌었다. 산재보험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방식의 전관예우 활용은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가지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쓰고 있었다.

김성중 전 위원장은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노사정위원장직을 그만뒀다. 새정부 출범 이후 자기 사람 챙기기에 희생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퇴임식 후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은 그는 한달 동안 칩거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자원봉사를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내 슬픔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 많이 배우고, 많이 위안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이곳에서 그가 본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월급을 안 주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고 폭행하는 많은 사례들을 직접 봤다.

논현동 고시원 화재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 고시원도 못 가는 중국동포 여성의 사연이 접수됐다. 한정식집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는데 새벽에 성폭행을 하러 들어온 한국인 종업원을 피해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열흘 만에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여성은 10살짜리 정신지체 아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변을 당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보상은커녕 열흘 동안 입원한 기간의 치료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 외국인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당부한다. “당신들이 잘 하면 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다. 눈물을 안 흘리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직이다. 여기서는 그런 사람들을 사후에 처리해 주지만 눈물을 안 흘릴 수 있는 제도와 장치를 만드는 것이 당신들이 할 일이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장은 노동부 직원들이 한 달에 한 번은 현장으로 나가라고 조언한다. 그가 공직에 있던 시절 지금 자원봉사 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도 여러 차례 온 적이 있다. 명절을 맞아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시찰’ 하는 것과 ‘근무’하는 것은 천양지차”라고. 그래서 그는 직접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본부 외국인고용과에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일을 하고, 근로감독관들은 중소기업에 가서 일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체험을 해야지 눈으로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 전 위원장을 만나러 간 날 마침 ‘후배’ 한 사람이 자원봉사를 나왔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서부지사 김영손 보상부장이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자원봉사를 하기로 한 것. 김 부장은 “선배님과의 인연으로 나오게 됐는데, 와서 보니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숲을 떠나니까 숲이 보이더라”

역삼동과 구로동 연결한 무지개다리

김성중 전 위원장은 일주일에 엿새 일한다. 사흘은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나머지 사흘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일한다. 그곳에서도 역시 상임고문직을 맡았다. 로펌에서는 보수를 받는 고문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강남에서 벌어 가리봉에서 쓴다.

처음에 로펌에서 연락이 왔을 때 그가 내세운 조건은 ‘사건과 관련해 후배들에게 전화하거나 청탁하는 건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일과 관련해서는 ‘전관예우’를 내세우지만, 로펌 일과 관련해서는 단 한 차례도 후배들에게 연락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요즘 그는 역삼동과 구로동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놓은 일 때문에 기분이 좋다. 매주 한 차례씩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이 찾아와 법률상담을 해주고 어려운 사람은 공익소송도 대행한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의 통역을 담당하는 언어지원단 중 세 사람의 인건비를 태평양측이 대고 있다.

다른 로펌들도 공익활동에 많이 나섰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 전 위원장은 노사관계나 노정관계를 둘러싼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퇴임한 사람의 도리로 1년 동안은 일체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원칙’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조언을 들려줬다. “숲 속에 있을 때는 숲을 모릅니다. 그런데 숲을 떠나니까 숲이 좀 보입디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두 가지를 지키려고 했다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 두 가지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억강부약(抑强扶弱)’이었다. “내 의견과 반대되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말이 굉장히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역지사지를 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억강부약은 곧 균형감각이라고 설명한다. 한쪽이 너무 강하게 나가면 그것을 누르고, 약한 데는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노사관계에 제대로 투자를 안 한 결과가 많은 혼란과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가 꼽는 노사관계의 두 가지 편향은 ‘노조 만능주의’와 ‘노조 망사주의’였다. 노동조합 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만 만들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노조 만능주의’에 빠져 지나치게 ‘오버’를 했고, 사용자는 노조만 생기면 회시가 망한다는 ‘노조 망사주의’가 팽배해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억강부약을 해서 강한 데는 좀 억누르고 약한 데는 북돋워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노사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그는 또 노사정이 다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반자는 길을 같이 가는 사람, 즉 동행자라는 의미니까 모두가 동반자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동반자의 예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운전을 예로 들었다. “앞차가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또 약간 난폭운전을 할 수도 있지만 조금 참아주면 된다. 그런데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손가락질 하고, 빵빵 거리고 그랬다가는 조금 있다가 휴게소에서 다 만나게 될텐데 그 때 어떡할 거냐? 서로 얼굴 붉히고 싸울 건가? 그건 아니지 않나.”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행복한 ‘아저씨’ 김성중

김성중 전 위원장은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아저씨’로 불린단다. 희끗희끗한 머리 덕에 가끔은 ‘사장님’으로 불리는 호사도 누린다면서 웃는다. 관료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는 지금의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역할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일은 경기 침체로 줄어든 후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구촌사랑나눔 사업에 대해 일종의 ‘컨설팅’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정 경험을 살려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손보고 있다.

그는 오늘도 ‘아직 젊은’ 자신의 몸으로,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경험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그리고 소망한다. 후배들의 노력으로 그들이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기를.

▲ 상담을 받으러 온 스리랑카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사진 왼쪽부터) 이효정 상담팀 주임, 김성중 전 노사정위원장, 김혜경 자원봉사자, 신승훈 상담팀 직원, 김원경 상담팀 직원, 김영손 자원봉사자(근로복지공단 보상부장), 최병규 상담팀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