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도 정부도 찬성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왜 국회서 잠자나?
정치인도 정부도 찬성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왜 국회서 잠자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4.27 18:30
  • 수정 2023.04.27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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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년째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건설업 산재사망 비중은 높아져
노조, 처벌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확실히 하자는 예방법
29일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하라"는 구호와 함께 2020년 산재사망 건설노동자 458인의 합동위령제를 진행했다. 건설노동자의 장비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br>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020년 산재사망 건설노동자 458인의 합동위령제를 진행했다. 건설노동자의 장비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4월 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인 4월 29일은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로 38명의 건설노동자가 유명을 달리한 날이다. 올해는 참사 3주기다. 한국 사회는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건설산업에서 산재와 그로 인한 사망이 많이 일어난다.

여전히 많은 건설업 산재사망
건설안전특별법은 국회 계류 중

해외 비교에서도 한국의 건설노동자 사망률은 높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OECD 회원국 건설산업 사고사망십만인율(2016-2017)’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건설노동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25.45명으로 일본 6.59명, 미국 9.03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건설노동자 사망 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최근을 살펴보면 2018년 485명, 2019년 428명, 2020년 458명, 2021년 417명, 2022년 341명으로 2022년에는 다행히도 꽤나 줄었으나, 하루에 1명의 건설노동자가 죽는 수준이다. 전체 산업에서 건설 산업 산재사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49.9%, 2019년 50.1%, 2020년 51.9%, 2021년 50.4%, 2022년 53%로 오히려 늘고 있다.

산재 사고와 산재사망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법률안으로 건설현장에 특화된 법안인 ‘건설안전특별법’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은 2020년 9월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2021년 6월에 재발의됐으나 만 3년 가깝게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 과정에서 적정공사기간과 적정공사비를 제공하도록 해 건설산업 산재의 큰 원인으로 꼽히는 ‘저가 낙찰’과 ‘빨리빨리’가 만든 이윤 보장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데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발주-설계-시공-감리’라는 건설 전 단계에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해 건설현장 산재를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이 처음 발의된 당시의 배경과 사회적 상황을 보면 통과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20년 4월 당시 문재인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건설안전혁신방안’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명시했다. 그러던 중 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가 발생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여론이 형성됐다. 건설현장 재해예방을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법안 마련 국토교통부 노사전정 TF도 구성된 바 있다. 그렇게 그해 9월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이 넘어온 다섯 가지 고비

왜 아직 계류 중일까. 계류되는 과정에서 건설현장 산재사망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2021년 5월 광주 학산빌딩 철거현장 붕괴 참사, 2022년 1월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참사, 2022년 2월 성남 판교 건물 신축공사 현장 엘리베이터 설치 노동자 추락 사망.

계류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 계류 과정에서 주요 장면을 노동조합의 눈으로 되짚어봤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쓴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에게 기억에 남는 다섯 장면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1.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2020년 4월 29일 일하던 건설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가 건설안전특별법을 사회적으로 쟁점화시켰기 때문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사회적 공분으로 건설현장 안전 문제에 여론이 집중된 시기였다. 당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분향소를 차리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렸다.

#2.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의 업역 다툼

건설산업연맹은 부처 간 갈등이 제정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 가장 안타까운 지점으로 봤다.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되면 국토교통부 소관 법이 되는데, 고용노동부에서 맡고 있는 산업 안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발의 후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건설현장 노동자의 안전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되면 노동자의 범위가 확대 적용돼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과의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와 사고 예방은 건축물과 건축현장 시설물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므로 국토부의 관리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노동조합은 건설업계의 반대가 아닌 부처 간 업역 다툼이라는 이외의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건설산업연맹은 부처 간 다툼을 봉합하고 법안 재발의가 가능하도록 청와대 1인 시위 등 청와대 압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3. 건설안전특별법 공청회

제정법이었기 때문에 공청회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그러나 공청회에 건설안전특별법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노동조합이 초대받지 못했다. 건설업계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건설산업연맹은 하는 수 없이 노동계 추천 변호사와 전문가를 공청회에 참석시키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4. 의원실 압박 투쟁

건설안전특별법을 다루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간사였던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 면담을 진행했다. 건설산업연맹은 면담을 통해 건설안전특별법 안건 상정 논의 입장을 확인했다.

#5. 11월 22일 상경투쟁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4만여 명이 2022년 11월 22일 여의대로에서 대규모 투쟁을 벌였다. 건설안전특별법 즉각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이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고, 제정 입장을 확인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법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조속히 입법 추진에 나설 것”이라 했다.

다섯 가지 장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건설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난항을 겪었다는 것, 법안 제정의 최적 시기에 부처 간 조율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입법부가 실질적으로 관심이 있냐는 문제 제기다. 정치인들의 여러 차례 약속에도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 되레 문턱까지 오르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최근 국회 일정이 돌아가는 중에 건설안전특별법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세 사기라는 부동산 이슈가 있긴 하지만, 모든 안건이 부동산 일변도인 게 문제다.

지난 5월 12일 오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현수막 앞에는 건설노동자의 상징 헬멧과 보호 신발 더미가 놓여있고, 그 위에 추모를 위해 국화꽃을 울렸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obrplus.co.kr
지난 2020년 5월 12일 오후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추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현수막 앞에는 건설노동자의 상징 헬멧과 보호 신발 더미가 놓여있고, 그 위에 추모를 위해 국화꽃을 울렸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obrplus.co.kr

산안법과 중복되는 이중 처벌 아니다
해외서도 건설업만을 위한 안전법 있어

한편 일각에서는 건설안전특별법이 이중 처벌이라는 내용적 여건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앞서 다섯 가지 장면과 같은 외부적 여건 이외의 문제라는 것이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오해라고 했다. “2021년 6월 재발의를 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 문제는 모두 해소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공청회에서 이중 처벌 이야기가 나왔는데, 건설업계는 구체적인 이중 처벌 요소가 무엇인지 말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으니 불필요하지 않냐는 제기에 대해서는 “건설업은 제조업과 같은 일반 산업과 다른 게 사업기획-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활동 전 과정에 걸쳐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며 “발주자부터 모든 건설주체에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 책무를 부여하는 게 건설안전특별법”이라 반박했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는 시공업체 CEO 처벌 중심이어서 모든 건설의 기획과 재정을 쥐고 있는 발주처까지 안전 책임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 중 하나인 적정공사기간과 적정공사비 책정은 기존 ‘공공 건설공사의 공사기간 산정기준’을 준용할 수 있어 적정이라는 말은 모호한 것이 아닌 기준이 있다는 게 건설산업연맹의 입장이다.

유럽연합과 영국에서는 기존 공장법 기반의 노동 안전 제도가 건설공사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건설업만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했다. 유럽연합은 ‘한시적 유동적 건설현장의 안전보건관리지침’을 마련했고, 영국도 이를 준수하기 위해 CDM(The 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Regulations) 1994를 제정했다. CDM의 핵심은 발주자에게 안전한 공사수행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부여하고, 발주자를 보좌하는 안전전문가를 직접 선임해 제반 의무 사항을 지원·감독하게 하는 것이다. 발주자의 주요 책무는 △안전전문가 지명 △안전 역량 있는 수급자 선정 △적정 공사기간 보장 △안전 공사 위한 제반 여건 제공 등이다.

예방에 무게 둔 건설안전특별법

건설안전특별법은 처벌법이 아니다. 예방에 무게를 둔 법이다. 송주현 정책실장은 “건설업은 유독 발주자의 권한이 막강하니 발주자에게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해 선제적으로 산재 사고를 예방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후적 처벌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니라 건설 공사를 위해서 각 주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적정 공사기간과 비용이 산정돼야 한다는 기획 단계서부터의 주의를 요구하는 법안인 셈이다. 오히려 건설업계 입장에서 적정 공사기간과 비용이 보장되면 좋으니 반겨야 한다는 게 건설산업연맹의 생각이다.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 세부 이행계획’에도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 내용이 반영돼 있다. ‘발주·시공·감리자 등 주체별 책무를 강화하고, 건설 전 과정(설계-시공-준공)에 걸쳐 총괄 지원하는 전단기관 육성’이라 돼 있다. 국토교통부도 법안 제정에 찬성 입장을 냈다는 게 건설산업연맹의 주장이다. 건설산업연맹은 “2022년 9월 국토부 건설정책국장 및 관련 부서장과 건설산업연맹 노정교섭에서 건설정책국장은 제정 찬성이며 입법 노력을 하겠다고 답변했다”며 “또, 2022년 11월 21일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촉구 국회 토론회에서 건설안전과장은 제정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입법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정치인들도 정부도, 행정 부처들도 찬성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