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결책, ‘노조탄압’ 말고 ‘폭넓은 단체협약 적용’
양극화 해결책, ‘노조탄압’ 말고 ‘폭넓은 단체협약 적용’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4.28 16:20
  • 수정 2023.04.28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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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초기업교섭 활성화 입법 청원운동 시작
‘사용자단체 범위 확대’, ‘공공부문 정부 교섭 법제화’ 등 요구
2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옥 12층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열린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 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운동 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핵심 과제로 밝힌 윤석열 정부에 무엇이 진정한 양극화 해법인지 가려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27일 열린 ‘초기업(산별)교섭 활성화 입법운동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마치 노동조합에 있는 것처럼 돌리고 부분근로자대표제를 추진하는 등, 노사관계를 파편화시키려 하고 있다”며 “단체협약 적용 범위가 넓은 나라일수록 노동 불평등이 낮다는 실태에 역행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기업별교섭을 극복해야 단체협약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며 ‘초기업교섭 활성화’를 꺼내 들었다. 노조법 개정을 성사시켜 초기업교섭을 제약하는 법·제도를 끊어낸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24일 관련 내용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록해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오는 5월 1일 노동자대회에선 참가 조합원에게 청원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다. 청원 성사 여부에 따라 초기업교섭 입법운동 동력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노조법 개정 요구안에 담은 내용은 되도록 많은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의 효과를 누리게 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한 요구 사안은 ▲사용자단체 범위 확대 ▲교섭창구단일화 폐지 ▲초기업 단체협약 확장 ▲공공부문 정부 교섭 법제화 ▲사용자 교섭의무 강화 등이다.

민주노총 노조법 개정 요구안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민주노총 노조법 개정 요구안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같은 산업, 같은 업종 노동자라면 동일한 단체협약을 적용받도록 하는 게 초기업교섭의 목적인 만큼, 초기업교섭이 활성화되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노동자도 단체협약을 적용받는다. 가령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열악한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산업단지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개선된다. 또 원·하청에 같은 단체협약을 적용하기 때문에 원-하청 노동자 간 격차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사용자단체 범위를 넓히면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의 경우 교섭 상대인 사용자가 특정된다. 단체교섭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단체교섭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단체교섭을 하려면 초기업교섭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특수고용노동자인 대리운전기사는 복수의 사용자(대리운전회사)로부터 콜을 받기 때문에, 어렵게 하나의 사용자와 교섭을 하더라도 수수료나 기타 노동조건이 정리되는 게 아니다. 초기업교섭으로 복수 사용자와 노동조건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폭넓은 단체협약 적용이 사회적 불평등을 낮춘다는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및 국내 연구기관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됐다. 그러나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 35개국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적용률은 14.8%(2019년 기준)로, OECD 평균(48.9%)에 한참 못 미친다. 초기업교섭이 한국 노동시장 양극화의 해법으로 주목받아 온 이유다.

안명자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장은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집단교섭은 2011년 학교장 교섭으로 출발해 2013년 각 시도교육청 교섭, 2017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섭까지 하면서 점차 임금과 처우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통일시켜 가고 있다”며 초기업교섭의 효과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중구조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현재 추진 중인 직무성과급제 등 노동 정책은 양극화 불평등에 어떤 긍정 영향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은정 정책국장은 “초기업교섭 제도 입법청원과 입법운동을 진행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진행하는 노사관계 정책에 맞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윤석열 정부는 올 상반기 안에 교섭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 계획을 낸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있지 않았지만, 그간의 노사관계 정책으로 미뤄볼 때 여러모로 노동조합 활동이나 산별노조 운동을 약화하는 방향에서 진행될 거로 생각한다”고 우려했다.